[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82) 虛實(허실) ⑤
발행일1965-01-31 [제456호, 4면]
집에 돌아와서 보니 아버지는 어딜 나가고 방은 비어 있었다. 요즘은 조금씩 기동을 하며 가까운데도 나다닐 수가 있었다. 손을 씻고 저녁밥을 지으려고 쌀을 씻고 있으니까, 아버지가 들어왔다.
『마침 돌아왔구나! 나하고 잠깐 가자!』
양부는 무언지 희망에 찬 얼굴로 말한다.
『어디요?』
『글쎄 따라 오너라!』
육감적으로 「바걸」한테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에
『밥을 지어야죠!』 하고 나는 갈 생각을 안 했다.
『잠깐 가자니깐!』
양부의 눈은 신경질적으로 움직인다. 할 수 없이 따라 나섰다.
『야, 옷 갈아입어라!』
흘낏 내 꼴을 보더니 양부는 말한다.
『어딘데요?』
『어서 옷 갈아입고 나오너라-』
『어때요!』
나는 버티었다. 양부의 눈은 위압적으로 나를 노려본다.
『못 사는 사람이 못 사는 사람답게 하고 있는데 어때요!』
나도 양부에게 지지 않게 반발을 했다.
『그럼 그대로 가자!』
양부는 시간이 바쁜 모양 같았다.
내가 예상한대로 양부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바걸」이 사는 집이었다. 그 집 방에 들어가니 머리를 중세기 구라파의 공주같이 높이 올리고 유행하는 「칼라」로 한복을 번들하게 입은 「바걸」 여자가 조금 촌스럽게 생겼지만 얼굴이 예쁜 내 또래의 여자와 앉아 있었다. 방바닥은 군데군데 세면 포장지로 땜질을 하여 마치 고약을 붙인 부스럼 자국같이 지저분했다.
양부는 「바걸」에 눈찌검을 한다. 이미 둘이서 타합이 된양 중세기 공주머리가 입을 연다.
백사장의 모래알 같이 재글재글 쉴사이 없이 쏟아지는 말은 나를 「바」로 유인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요악하면 이런 것이었다. 너의 얼굴은 매우 이국적이고 멋있게 생겼으니 손님의 인기를 끌 것이며 수입은 삼만원에서 잘하면 오만원까지 오를 것이다. 특히 내가 「마담」과도 친하니 뒤에서 잘 밀어줄 것이라고 한다. 너같은 얼굴로 구두닦이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아깝다는 결론이었다.
양부는 아무 말 않고 있었다.
구변 좋은 중세기 공주에게 맡긴 품이었다.
나는 이 때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방바닥과 그들의 의복을 비교했다. 그들의 의복과 방바닥꼴은 도저히 어울리지 않았다. 구두닦던 내 꼴이 그 방바닥에 가장 어울렸다. 말하자면 그들도 나같은 꼴로 그 방바닥에 앉아 있어야만 알맞을 것인데 그들은 공주같이 차리고 공주같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스」양 때문에 일부러 안 나가고 여태 기다렸어. 지금이라도 옷 갈아입고 같이 나가지! 조금도 걱정 말어 내가 뒤에 있으니깐… 얘도 오늘 처음 나가는데 어서 준비하지-』
중세기 머리가 언니다운 자세로 말한다.
『「바」같은데 나갈만한 자격이 있어야죠!』
나는 웃으며 일부러 수집은 척 했다.
『옷만 잘 입으면 눈에 확 뜨일텐데 뭘 그래…』
『구두닦이 해서 벌어 옷이나 해 입거던 그 때 나가죠』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 옷 빌려줄께. 내가 의상으로 얻을 수 있는 양장점도 있어!』
『그렇게 해라…』
양부는 속에 가시가 담긴 눈으로 나를 은근히 쏘아 보았다.
『남의 옷 빌렸다가 더럽히면 어떻게 해요. 외상 갖다 입었다가 못 갚으면 그것도 걱정이고, 싫어요. 아이 배고파, 밥을 해야지.』하며, 나는 혼자 그 방을 뛰쳐나왔다.
뒤따라 돌아온 양부는 나에게 아무 말도 안 했다.
저녁식사 때도 그는 말이 없었다. 떳떳지 못한 장소니 만큼 그도 강제로 나를 믿지는 못했다.
이튿날 나는 전날모양 구두닦이 목판을 들고 집을 나섰다.
그 날도 약 스무켤레의 구두를 닦았다. 이미 나는 사십 켤레의 구두를 닦아낸 솜씨를 가졌었다.
사람이 많은 명동으로 진출해 볼 생각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구두닦이 도구는 「보스톤, 빽」에 넣고, 차림은 그대로 하고 버스를 타고 명동으로 갔다.
빙 한 바퀴 돌아보았으나 적당한 장소가 없었다. 증권회사 부근에는 구두닦이 소년들이 의자들을 세워놓고 열을 지어 있었으나 그들에 끼어 들고 싶지는 않았다. 다시 슬슬 걷다가 한 양장점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최신 유행 「스타일」을 자랑하는 「마네킹」 인형들이 찬란하게 장식__ 윈도우 앞에 보스__」을 놓고 구두닦이 목판을 꺼냈다.
나는 옷 구경도 할 수 있고 양장점에 온 손님의 구두도 닦을 수 있으니 장소로서는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양장점에서 뭐라고 할 것 같았으나, 그 때는 그 때고 우선 벌여놓고 손님을 기다려 보았다. 걸상이 없어선지 손님이 선듯 붙지가 않는다.
양장점에는 조그마한 의자가 하나 있는데 그걸 빌렸으면 싶었다. 마침 주인인듯한 양장한 아주머니가 문 앞으로 나온다.
『주인 아주머니세요?』
나는 먼저 인사를 했다.
『가게 앞에서 무엇하는 거지?』
『구두닦인데요.』
『어마 얼굴이 예쁜 처녀가 구두닦이를 하나?』
『아주머니 구두 거저 닦아 드릴께요!』
『거저야 닦을 수 있나. 돈 낼테니 닦고서, 딴 데 가서 닦아 응.』
주인 「마담」은 검정 「하이힐」을 가지고 나왔다. 우선 나는 닦았다. 거반 다 닦았을 적에 양장점에 온 손님 여자가, 내 것도 좀 닦아 달라고 발을 내민다.
『양장점 의자 좀 잠깐 가지고 나오세요!』
나는 부탁했다.
손님 여자는 「마담」과 잘 아는 사이인양 말을 하고는 의자를 들고 나왔다. 그 여자가 구두를 다 닦고 막 일어서자, 지나던 신사 하나가,
『남자 구두도 닦나?』 하고 묻는다.
『예!』
신사는 여자가 앉았던 의자에 앉았다.
이 때 주인 아주머니가 돈을 가지고 나왔다가 상을 찡긋 하고 바라본다.
나는 일어서서 주인 아주머니 앞으로 가서 속삭였다.
『아주머니 좀 봐주세요. 신사는 구두 닦으면서 유행 「무드」를 눈에 익히고, 숙녀 손님은 제가 여기서 싸게 구두닦아 드릴테니깐 좋지 않을까요?』
주인 아주머니는 웃으며 반대는 안 했다.
그날 의자와 내 손이 쉴 사이가 없이 손님을 맞이했다. 저녁 때까지 마흔 켤레의 구두를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