主敎會議(주교회의)에 바란다
神父=착한 牧者의 協力者 구실 못 해
諸般環境·條件未備 등으로
발행일1965-02-07 [제457호, 1면]
오는 2월 중순께 우리 한국의 모든 주교님들께서 회의를 가지시게 될 것이라고 한다. 토의하시게 될 문제 중에 「천주님의 백성」 그리고 모든 교우들이 걸어야만 할 「성화의 길」 「성직자」 이러한 제목들이 들어있는 것 같다. 생각컨데 「바티깐」 공의회에서 교회문제에 대해 반포된 헌장의 우리 한국의 실정에 비추어 보아서 이를 알맞게 실천에 옮겨보자는 것이 아닌가 싶다.
금번 「가톨릭시보」사에서 주교님들에게 바라는 말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펜을 들기를 몇 번인가 주저했다. 왜냐하면 주교님들께 감히 무슨 말씀을 드린다는 것은 당돌한 짓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허나 다음 순간 용기를 얻게된 것은 바로 교회헌장의 한 귀절이었던 것이다. 즉 『아랫 사람은 자기의 전문 지식, 권위에 따라 교회공익을 위해서 자기의견을 발표하는 것이 가하며 경우에 따라 한 가지 의무이기도 하다』라고, 여기에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한 신부의 입장에서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그것 뿐이니 이 점 이해를 바라면서 생각된 바를 적어보겠다.
우리 한국의 교회문제는 우선 성직자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주교님들께서 종도들의 계승자의 권한으로써 마치 착한 목자와 같이 천주님의 백성을 가르치고 지도하고 계시지만 이는 PRESBYTERIUM(司祭團)과 같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직접 교우들을 대하는 성직자는 곧 신부들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우리 한국의 실정을 생각해 볼 때 평신도들은 자기 위치를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이 때에 각 본당에서 천주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바로 신부인듯 하다.
신부 없이는 교우들의 성화 문제도 해결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이번 공의회에서도 주교님들의 위치를 강력히 세워놓고 평신도의 사명에 대해서도 진지한 토론을 해왔지만 신부의 위치에 대해서는 토의되었던 것을 아직 아무런 결론을 못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사제의 위치가 독특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우리 한국 교회 문제 중에 제일 긴급하고 제일 중요하고 또 제일 먼저 다루어져야 할 문제가 바로 신부들의 문제가 아닌가 본다. 따라서 아래와 같은 몇 가지를 주교님들께 말씀드리고 싶다.
첫째로 신부는 주교님과 친근히 지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신부들은 성의가 많다. 신부들은 죽기까지 천주님의 사업을 하려고 한다. 허나 신부들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신부들은 교회헌장 말씀 그대로의 주교님의 COLLABORATORES(힘든 일을 같이 하는 자)가 되고 싶다. 어떤 교구의 주교님께서는 토요일마다 주교관을 떠나 본당에 가셔서 거기서 고해성사를 주시고 또 주일미사에 강론을 하시고 영성체 해 주시고 그 본당의 여러 단체 회합에도 참석해 주신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루나 이틀을 그 본당 신부와 같이 실정을 듣고 보고 또 상의해 주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것은 한 가지 신기한 방법이라고 하겠지만 진지한 접촉과 상의 없이는 COLLABORATOR이 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 서로가 잘 이해하고 힘껏 협력하지 않는다면 전반적이며 실정에 알맞는 전교방책을 세우고 또 추진하는데 애로가 많을 것은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둘째로 우리 신부들이 맡은 사업을 완수할 수 있는 재료를 받고싶다. 신부들은 물질적인 문제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물질적인 기반을 기대하고 왔지만 이 물질적인 기반만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신부도 살아야하니까 그런 말을 하게되지만 이미 천주님께 바친 몸이라 천주님을 위해서 희생할 각오는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정신적인 양식과 영신적인 양식은 우리들에게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금년부터 신부들을 위한 잡지가 나온다는 것을 환영한다. 지금까지는 이렇다할 연구 재료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주교님들께서 몇 달 아니 몇 년 동안에 걸쳐 「로마」에서 연구하신 것을 간행물을 통해서 소식을 좀 들었지만 이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신부로서의 지식면에 있어서 우리는 굶주리고 있는 것이다. 영신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신부들에게 묵상재료도 없다싶이한 형편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공의회를 계기로 전례운동 일치운동 평신도의 운동 등의 여러 가지 운동을 하는데 우리 신부들은 떳떳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신학교 시절에 우리가 이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별로 연구해 보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다시 신학교에 들어갈수도 없고하니 우리의 부족되는 점을 강습회라던가 연구기관 등을 두어 다른 것으로 채울 수가 없을까 하는 것이다.
미안한 말씀일지 모르나 금년 정월 초하루부터 국어로 미사의 일부를 지내게 되는데 있어서 교우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신부들이 어쩔 줄을 몰라 쩔쩔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신부들에게 미리미리 강습을 시키든지 다른 방법을 쓰든지 해서 인식을 시켜주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실시할 날자는 박두해 있는데다가 새로된 책들은 각각 다르니 교우들을 지도하는 신부의 입장에서는 환멸을 안 느낄 수가 없었다. 전례운동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여러가지 운동을 실시함에 있어 신부들이 환멸을 느끼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요컨데 우리 신부들부터 많이 가르쳐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세째로 이외에 신부들에 관한 몇 가지 문제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지나 않을까 생각한다. 몇 가지 문제란
▲즉 ACTIO CATHOLICA(가톨릭운동) 지도신부 문제=마치 군인들을 위해서 종군신부의 제도를 마련해준 것과 같이 가각 특수한 분야에서 움직이고 있는 교우들을 위해서 더 많은 지도신부를 파견할 수가 없을까. 본당 신부들은 그러한 특수운동의 전문가가 아니다. 특히 대학생 문제는 긴급한 것 같다.
▲신부 「센타」 문제=작년에는 종군신부 「센타」를 마련하기로 결의를 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종군신부뿐만 아니라 집아신부들이 서울에 갔을 때 들릴 수 있는 「센타」를 건립할 수가 없을까. 지금까지 대부분의 신부들은 서울에 가게되면 여관에 유숙하지 않으면 안 될 실정에 놓여있다. 교구들의 재정 관계로 인하여 이런 사업을 추진할 수가 없다면 한 수도단체에 이것을 사업으로 부탁할 수가 없는 것일까.
▲신부를 위한 지도신부 문제=마치 신학교에서 영신지도 신부가 있듯이 또 하나의 사업으로 신부들을 영신적으로 지도하는 신부의 제도를 생각해 볼 수가 없을는지 현재 어떤 곳에서는 그러한 사업을 맡은 신부가 있고 겸하여 신학생 모집운동까지도 하고 있다 한다. 거기에서 나오는 유익한 점도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학교에서 수고하시는 신부 문제=아무런 전교활동을 해보지 못했던 신부가 신학생들을 지도한다는 것은 그 책임이 너무나 과중하지나 않을까 생각한다. 신학교의 교수는 전교 경험이 있는 분을 택하는 것이 모든 신부들에게 유익하지나 않을까 보는 것이다. 이외에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이상은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던 바를 말씀드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