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63) 백금반지 ③
발행일1964-08-30 [제436호, 4면]
다방에 들어가니 진호는 가장 외진 구석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그의 앞에 앉는 즉시로 그의 입에 못을 박았다.
『난 설교들으러 온 사람은 아니니까 설교는 하지마세요.』
그러나 진호는 식힌 차를 맛있게 한모금 마시더니 차근 차근히 입을 연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방향을 옳게 잡아주기 위해서 충고하고 조언을 할 수는 있을거야!』
『그럼 내가 틀린 방향에 서있단 말인가요?』
『올바른 방향이라고는 할 수 없지…』
『나는 내가 그르다고 생각지 않아요.』
『미스양에게 반성의 힘을 주고저 나는 온거야!』
『무얼 반성하라는 거에요.』
『그 생활태도!』
『내 손을 보는걸 보니, 백금반지를 꼈다고 그러는군요?』
『왜 그런 것에 탐을 내요?』
『패물에 탐내는 것이 보통이지 안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요?』
『그까짓 손가락 사이의 장식물 하나때문에 자기자신을 그만큼 더럽혔다는 걸 생각해 보아야 해요』
『나야말로 진호씨에게 충고하고 싶어요. 그런 고리타분한 낡은 사고방식은 버리세요. 젊은 세대가 늙은이 같은 소리는 하지마세요.』
『옳은 말에는 노인이고 젊은이고 어린이고 가릴 필요가 없는 거야요.』
『그만두세요.』
나는 귀찮아서 일어섰더니 그는 지긋이 나를 바라보며 앉으라고 한다. 나는 저항하는 자세로 그대로 서있었다.
『한마디만 들으세요.』
나는 엉거주춤 앉앗다.
『…과거는 묻지 않겠어요…』
나는 문득 그런 제목의 영화가 생각이나서 픽 웃었다. 그러나 진호는 「호마이카」 탁자위에 시선을 견주고, 한마디 한마디의 단어를 끊어 읽듯이 말한다.
『…앞으로는 휘청거리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자신을 지키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세요.』
나는 대화를 끊기 위해서 할말을 먹음고 그냥 일어섰다.
내가 차값을 치를까 하다가 일부러 가냘픈 진호의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오도록 내버려 두었다.
다방은 T통으로 면한 한길인데 밖에 나오니 바로 그앞에 말쑥한 새나라차 한대가 무참히 옆구리가 일그러져 있고, 교통 순경과 구경군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트럭에 부딪쳤다고 한다. 진호는 상을 쨍그리고 유심히 일그러진 차체를 바라본다.
『충고 말씀은 잘 알았으니 앞으로는 다방에 찾아오지 마세요.』
나는 아랫길로 가는 어구에서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앞으로도 나는 다방에 갈테니 그런줄 알아요.』
나는 불쑥 화가 치밀었다.
『자기 일도 바쁠텐데 무엇땜에 남의 일에 상관을 하려고 드세요?』
『아까, 사고 일으킨 차를 보았지? …조금만 주의를 햇으면 저런 일은 안당했을거야. 나순이는 지금 충돌 직전의 저 차와 같은 위치에 있어! 나로서는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어요.』
진호의 눈은 진지하게 빛났으므로 나는 아무 댓구도 못했다.
그가 윗길로 걸어가는 것을 나는 잠시 서서 바라보았다. 퇴색한 양복바지에 헌 구두를 신고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가는 그의 뒷모양은 어딘지 초라해 보인다.
그의 정신이 고결한지는 몰라도 그의 옷 모습은 사류인생 밖에 안되었다. 그런 모양으로 다방에 들어오면 『어서오십시요』하는 인사말도 생각다가 하게된다. 아무리 못생겨도 돈이 있고, 권세가 있으면 대접을 받는다. 어떻게 그 돈을 받고, 어떻게 그 권세를 얻었던가를 세상은 묻지 않는다. 현재 돈과 권세가 있으면 그는 존경받고 가치있는 인간으로 쳐다보인다.
짧은 기간이나마 다방 「카운타」에 비친 세상은 그러한 것이었다.
나도 옷이라도 말쑥하게 입으면 한번 쳐다볼 것도 두번 쳐다본다.
남의 모양도 내 눈에 그러했다.
이것이 명동의 아침 저녁이었다.
남의 주목을 못끄는 존재, 그것은 무대에서 쫓겨난 배우나 다름 없었다. 누구나 자기가 무대의 멋진 배우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명동의 생활이요 서울의 생활인 듯이 나는 느껴진다.
다방에 돌아오자 나는 진호의 말 따위는 신장에 구르는 헌 고무신만큼이나 생각했다.
그후 나는 바가지 신사에게 또 백금 목걸이를 졸라 보았다.
이때 그는 나를 흘겨보며 응하지 않았다.
그것도 그럴것이 며칠전에 바가지 신사가 밤에 영화구경을 가자고 해서 아홉시쯤 같이 어느 개봉관에 간 일이 있는데 영화관을 나오자 그는 촐촐하니 무어나 먹자고 하면서 어느 여염집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보니 요리집이었다.
비단 보료를 아랫목에 깐 넓은 온돌방에 술상이 들어오자, 그는 나에게도 술을 권했다.
단맛에 정종을 한잔 훌쩍 마셨더니, 차츰 정신이 몽롱해졌다.
이상하게도 이때 자동차 사고난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던 진호의 시선이 아른거렸다.
이때 내몸에 휘감기는 감촉이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뿌리치고 요리점을 튀어나왔다.
『요 제비새끼야…』
바가지 신사는 나직히 말하며 나를 쏘아보았다.
『목걸이 하나 안사주실테야요?』
『나만 일방적으로 「서비스」하라는거지 싫다!』
바가지신사는 고개를 저으며 차값을 내고 일어선다.
『제가 왜 「서비스」를 안해요. 선생님한테는 제가 특별히 친절히 하고 있는데!』
『고작 친절? 유혹은 지가 먼저 해놓고서?』
『점잖으신 선생님이 그런 말씀도 하세요!』
이렇게 말하며 사고난 자동차가 머리를 스친다. 솔직히 말하자면 바가지 사장한테 백금반지를 얻어 낄 때 내리막길로 내 몸을 던질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것이 어쩜 이 불우한 내 출생에 대한 스스로의 분풀이도 되는듯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견딜 수 없는 고독을 그런데서 풀어보고도 싶었다. 물론 그것은 어둡고 불안한 길목이었다. 내 몸에 애껴 두어야 할 것을 느끼지 못하던 나였다.
진호의 뒷모습은 초라했으나 그의 시선은 그가 없는 사이에 나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진호가 그리운 생각이 들었다.
그날밤, 즉시로 만나고 싶다고 편지를 써서 이튿날 부쳤다.
며칠후 진호가 왔는데, 그간 앓았다고 하면서 안색이 창백했다.
까만 눈동자만은 전날과 다름 없는 빛이 잠겨 있었다. 이날 나는 바가지 신사 대신 윤전무라고 불리우는 나이 삼십가량 된 토건회사의 젊은 중역에게 특별 「서비스」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마담의 말을 들으면 일도 잘 하지만 놀기 좋아하고 방탕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나는 그에게 친절의 「서비스」로서 목걸이 하나를 얻어할 계획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진호가 와도 돌아보지도 않고 윤전무 앞에 가서 농담도 받고 잡담을 했다. 윤전무가 간 뒤에야 진호 앞으로 가서 별 얘기가 있는 것이 아니고 오래 안오길래 편지를 한거라고 간단히 말했다.
『다방 그만두고 집에 갈 생각은 없어…』
진호가 묻는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진호를 가까이 느끼면서 연극적인 지금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계속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