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83) 虛實(허실) ⑥
발행일1965-02-07 [제457호, 4면]
양장점 주인의 호의로 그 후 나는 그 자리에서 구두닦이를 계속했다. 적을 때는 서른 켤레, 보통 사십켤레를 닦았다.
저녁 무렵이 되면 손이 까마귀 날개쭉지같이 가매지고, 허리는 앞으로 뼈가 휘인 것 같이 뻑적지근했다. 그러나 그날 번 돈을 헤어볼 적에는 즐거웠다.
어느날 양장점 「마담」이 『조렇게 예쁜 얼굴로 구두닦이 하기는 너무 아까워! 양장학원이나 졸업하고 우리 양장점에 와서 일하면 어때?』하고 말한다.
『양장점 점원 월급이 얼마에요?』
『솜씨에 달렸지』
『가령 저같이 양장점에서 배우고 갓나오면요?』
『삼사천원 주지!』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구두닦이 수입만 못한걸요.』
『일이 더럽지 않아?』
『그런거 안 가려요. 돈만 많이 벌었으면 좋겠어요!』
주인은 크게 웃으며 들어가버렸다.
따는 구두 닦는 남자들마다, 내 얼굴을 자세히 보고는 왜 하필 그런 얼굴로 구두닦이를 하느냐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구두닦이 하는 얼굴이 따로 있나요. 궁하면 하는거죠.』
『좋은데 취직시켜 줄까?』
이렇게 얼리는 사람도 가끔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일수록 의복 차림이 허수룩했다.
(꼴 보니 남 소개하긴 틀렸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어디냐고 물어보면 「바」니 식당이니 회사니 그밖에 흐리멍덩했다.
『나는 이 직업에 만족하니, 딴 구두닦이들이나 소개해주세요』하고 상대하지 않았다.
『그 부드러운 손이 아깝구먼!』
진정 동정하는 시선으로 내 손을 내려다 보는 지긋한 나이의 신사도 있었다.
『값을 올릴까? 예쁜 처녀한테 구두닦이고 오원이 뭐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구두닦이를 시작한지도 한 열흘 되던 날이었다. 집에는 양부가 옛날에 사다논 자루가 긴 좋은 옷솔이 하나 있었다. 그것을 「보스톤·빽」 손에 넣고 나와서 구두 닦은 뒤에는 손님의 양복도 말끔히 털어주었다.
『「써비스」가 특별하군?』
『그대신 요금이 좀 비싸요. 십원이야요!』
대개는 웃으며 십원을 내고 갔다. 하루 수입은 갑자기 배로 불었다. 한 번 닦던 사람은 비싸다고 안 닦으면 어떻게 허나, 은근히 걱정을 하였더니 별로 손님이 줄지도 않았다.
나는 백원 주고 조그만 둥근 의자도 하나 사서 양장점의 의자는 돌려주었다.
구두닦이로 앉아서 보는 세상은 다방 「카운타」에서 보던 때와는 사뭇 달랐다. 다방에는 저마다 사장인데 거리에서는 그 사람의 직업을 알 도리가 없었다. 구두 하나로서 판단하는 수밖에 없었다. 직업상 자연 시선을 지나가는 남녀의 구두로만 쏠리었다.
먼지가 더덕이진 생활에 지친 구두도 있고 유리같이 매끈히 닦은 구두도 있다. 구두는 반짝거리는데 잔뜩 찡그리고 가는 여인상도 있다. 구두보다 얼굴이나 펴고 다녔으면 싶다.
마침 멋진 「하이힐」 하나가 내 앞에 와서 멎었다. 구두 닦을 사람인가 하고 쳐다보았더니 회색 「코-트」를 입은 여인이 나에게는 등을 보이고 말숙한 젊은 남자와 함께 「윈도우」를 들여다 보더니 양장점으로 들어선다.
그 옆 모습이 낯이 익기에 양장점 안으로 들여다 보았더니, 우리 동리에 사는 「바걸」 공주였다. 「시멘트」 방바닥에 앉아서 지내는 여자같지 않게 의연한 자세로 「윈도우」에 내놓은 「밍크오바」를 가리키고 있었다.
『부부는 아닐테고, 애인인가?』
나는 호기심으로 들여다보니, 밤색 「밍크오바」를 맞추는 모양이었다. 남자는 자색빛 안경을 쓰고 흰 「마후라」에 「소흐트」 모를 썼는데 삼십 남짓해 보이는 「헨삼보이」였다.
나는 눈이 땡그레졌다. 그 값을 내가 아는데 이만원이었다.
치수를 재고나자 남자는 계약금으로 돈 오천원을 가벼운 태도로 해서 내놓는다.
「바걸」은 나를 몰라보고 남자와 함께 국립극장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문득 부러운 정이 들었다. (나도 「바아」에 나가볼걸 그랬다?)
어찌보면 명동거리는 행운이 떼굴떼굴 굴러다니는 것만도 같다.
갑자기 십원짜리 구두닦이가 신이 안 난다.
저녁무렵에 목판을 챙기고 일어서려고 하니, 아까 낮에 우리 동리 공주와 함께 들어서던 그 남자가 양장점으로 들어선다.
나는 주인에게 인사하러 따라 들어갔다.
『아까 「밍크오바」 맞출 때 약조금 오천원 드렸지요?』
색안경 신사는 이렇게 말하며 영수증을 꺼낸다.
『네에…』
주인 아주머니도 손님의 말을 기다렸다.
『급히 돈 쓸 데가 생겨서 그러니 삼천원만 돌려 주세요. 이따 곧 갖다 드리죠…』
주인 아주머니는 별로 반갑지 않은 얼굴로 금고에서 삼천원을 꺼내서 내주고는 영수증을 갈아썼다.
사나이가 나가고 나자, 주인 「마담」은 픽 웃으며,
『어떤 년이 또 하나 속았구나….』하고 중얼거렸다.
『야아, 아까 그 밤색 「밍크오바」 재단 안 했지?.』
주인 아주머니는 재단사보고 묻는다.
『아직 안 했어요.』
『하지마아』
『아니 왜 맞춘 옷을 재단 안 해요? 약조금이 적어서요?』 나는 물었다.
『건달이야. 저런 것들이 있다…』
「마담」은 입을 비죽하며 자세한 이야기를 안 했다.
며칠 후 우리 동리 공주님이 「하이힐」 소리를 다바닥 거리며 양장점으로 들어선다.
『「밍크오바」 「가봉」하러 왔는데요?』
공주는 뽐내며 말했다.
『남자분 오셔서 약조금 도루 찾아가셨는데요?』
『아니, 약조금을 도루 찾아가다니요?』
공주는 얼굴이 푸르락 노르락해진다.
공주는 한동안 얼떨떨하더니 상기한 얼구로 양장점을 나섰다.
『멀쩡한 도둑놈일세…』
공주는 분에 못이겨 입술을 떨며 혼자 중얼거리며 갔다.
나중에 주인 아주머니한테 들으니 아까 그 「소호트」모 쓴 사나이는 그러한 상습범이라고 한다. 「밍크오바」로 여자를 낚아서는 목적을 달하고는 뒤로 약조금을 도로 찾아간다는 것이다.
나는 「보스톤·빽」을 들고 명동을 떠나면서 다시 한 번 말숙하고 휘황찬란한 양장점 「윈도우」를 돌아다 보았다.
그리고 얼굴이 푸르락 노르락해지며 사라지던 공주의 얼굴도 구두닦이 덕분에 나는 명동 일류 양장점의 「밍크오바」의 희극을 알았다. 혼자 소리나게 웃으며 걸었다.
「버스」를 내려 가난한 집들이 늘어붙은 언덕길을 오르니 눈 아래로 거리와 주택의 불빛이 내려다 보였다.
겉으로는 알 수 없는 행복과 불행을 담고 있을 저 불빛들- 진호가 공부책을 펴고 있을 가난한 그의 불빛은 어느 것인가 하고 찾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