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6世(세) 聖下(성하) 回勅(회칙) 「그의 敎會(교회)」槪觀(개관) - 對話(대화)
救援(구원)의 對話(대화) 敎會(교회)의 使命(사명)
교회는 文明(문명)이 아니다 그러나 이를 促進(촉진)한다
【承前】 교황은 회칙 서두에서 『교회와 인류가 서로 만나고 알고 사랑하여야 함을』말하였다. 그리하여 교회와 인류의 이 대면(對面) 관계를 현대 통용어가 되어있는 「대화」로 표시하였다. 이 대화가 회칙 제4편을 이루고 있으며 그것은 바로 교회의 사명자체임을 밝히고 있다.
이와같은 관점에서 교황은 「대화」란 말을 단순히 「대화」라고만 쓰지않고 「구원(救援)의 대회」라고 표현하였다. 『이제 세계역사의 이 시점에 있어 가톨릭교회가 취하여야 할 셋째 태도는 교회가 인류에 대하여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제관계를 깊이 연구함에서 오는 태도이다 라는 말로 회칙 제4편은 사작된다.
■ 敎會와 現世
그러나 교황은 대화를 말하기 전에 『만일 교회가 항상 커가고 있는 그 자체에 대한 각성을 얻게 되고 또 그리스도께서 제시하시는 모습대로 지향하기를 노력한다면 그 결과는 교회는 그가 살고 있고 그가 접촉하고 있는 인간사회 환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된다.』라고 말하면서 세속이 지향하는 것과교회가 지향하는 것이 중극적으로 대립되어 있음을 먼저 밝혔다.
그리하여 복음정신과 대립되는 인간본위의(휴마니즘) 또는 이와 반대되는 비판주의를 비판하였다. 더 나아가 세속적인 삶과 그리스도교적인 인생관의 상극을 지적하면서 그리스도교적인 삶은 현실에서부터 세속의 그것과는 다르며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적인 인생은 성세를 통한 참된 재생(再生)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복음은 빛이요 쇄신이다. 이는 힘이요 재생이요 구원이다.』 이에 반하여 세속은 암흑과 죽음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교황은 『이와같은 구별은 분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교황이 이같은 구별을 먼저 확실히 밝혀둠은 교회는 그의 창립자인 그리스도가 세속에 속하지 않음과 같이 세속에 속하지 않음을 분명히 해두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와같은 교회의 분별하는 태도는 세상에 대한 『무관심에서나 위구에서도 아니요 그것은 세상을 경멸히 여김에서도 아니다.』 『교회가 그 자체를 인성에서 구별함은 그것은 인성에 적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체를 인간과 일치시키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의 전염병을 알았을 때에는 그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그 위험에서 보호한다. 그러나 그는 그 병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을 헌신적으로 바친다.』
따라서 교회가 자체를 세속과 구별하는 것도 세속을 보다 더 진실히 구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교회의 사명이요. 『그것이 복음전파의 의무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명령이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종도들에게 주신 위탁이다. 따라서 『신앙을 보존하는 태도만으로서는 부족하다.』
■ 「救援의 對話」의 必要性
교황은 여기서 교회가 질머진 인류구원의 사명을 강조하여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유업에 합치되는 의무는 이를 다른이들에게 전파하고 제시하고 고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교회는 그가 처(處)하여 있고 그가 일하고 있는 세계와 대화관계에 들어가야 한다. 교회는 할말이 있다. 교회는 전하여야 할 「메시지」를 가졌고 교회는 교류할 무엇을 가졌다. 더 나아가 교황은 『세계를 회두시키기 전일지라도 아니 세계를 회두시키기 위하여 우리는 세계와 만나야 하며 세계와 더불어 대화하여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천주 당신 성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하여금 세상을 죄로 단판하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세상이 저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기를 위하심이기』(요왕 3장 17절)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바오로 교황의 현대 세계에 대한 정신이 그의 선임 요안 23세의 그것을 바로 계승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敎會의 普遍性
『교회의 마음은 누구도 남으로 보지 않는다. 교회의 사목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스스로 자원하여 그렇게 되는 사람 외에는 교회는 아무도 원수로 보지 않는다. 「가톨릭」=보편적이라는 명칭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세계안에 일치와 사랑과 평화를 함양하는 위탁을 헛되이 교회가 맏은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모든 계급과 모든 층의 사람들을 위한 「메시지」를 가졌다. 아해들을 위하여 청년들을 위하여, 과학과 학문을 위하여, 노동세게와 모든 사회계급을 위하여, 예술인 정치인 위정자(爲政者)들을 위하여 교회는 전할 「메시지」를 가졌다. 그중에도 간나한 사람들, 추방되어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 병자와 고통중에 있는 사람들,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복음의 말을 교회는 가졌다.』고 교황은 간절히 말하고 있다.
교회가 세계와 더불어 할 대화는 따라서 명확하고 유순하고 신앙과 교육적 현명에 인도되어야 한다 하였다.
또 세계평화 발전과 복지에 이바지되는 것이라면,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의 기본권리와 의무를 확힙하기 위한 것이면(또 허용될 때에는) 국제연합의 의석을 「바티깐」은 차지할 수 있음을 시사하였다.
아뭏든 『인간의 영혼이 본연적으로 그리스도교적일 때』 교회는 누구에게도 우리의 관심을 표명하고 누구와도 이야기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교회는 문명이 아니다. 그러나 문명발전을 촉진시킨다.
■ 對話의 「서클」
회칙은 대화의 대상자를 나누어 세층의 「서클」로 보고있다. 무종교자를 포함하여 유일신교(唯一神敎)=주로 유태교와 회회교 기타 동양의 각종교들이 이루는 비그리스도교적 「서클」이 그 하나이고 다음은 더 가까이 가톨릭이 아닌 모든 그리스도교 세계, 끝으로 가톨릭 세계가 이루는 「서클」이다.
그러나 교황은 교회일치 또는 현대세계와의 대화에 관한 구체적인 것은 공의회에서 토의될 것이라고 다시 공의회 교부들의 역할의 중요성을 표명하였다.
■ 對話의 精神
『대화의 정신은 우의(友誼)이다 또는 보다더 봉사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대화가 비록 형제적인 사랑을 함양함이 목적이 되어있다 할지라도 합의와 일치를 위하여 가톨릭 교회가 천주께로부터 위탁받은 진리를 비롯하여 자연법에 속하는 윤리도덕의 기본원리 등을 왜곡, 포기 혹은 변경 할 수는 없으며 교황은 이 점을 강조하여 『나의 이 사도적 사명에 의해 우리는 우리가 고백하는 그리스도교의 바탕이 되는 신앙과 행동의 원리를 애매한 타협으로 희생시킬 수는 없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교회의 대회 목적이 인류에게 참된 생명의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서임을 거듭 천명하면서 현대세계의 불시태도 · 과학만능주의 등에 대한 경고를 발하였다.
■ 無神論 批判
그 가운데로 무신론을 심판하면서 『나는 무신론이 완전히 그릇된 주의임을 확신한다. 이 설은 인간에 기본적 부인할 수 없는 사상과 함치될 수 없으며 이는 세계의 합리적 질서를 그 본연적 바탕으로부터 박탈하고 있다. 이 주장은 인생에 해방을 주지않고 오히려 반대로 절망과 비관으로 이끄는 맹목적인 신조를 퍼뜨리고 있다.』고 하였다.
다시 계속하여 『이 설은 모든 사회체제를 그 뿌리에서부터 허물어 뜨리고 있고, 자유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생활하신 천주의 빛을 제거하려고 시도하는 허위(虛僞)에 찬 설이다.』고 했다. 그리하여 천주를 믿는 모든 종교인들은 이와같은 악마적 경향에 저항해 싸우는데 힘을 합쳐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 共産主義
특히 천주를 부인하고 교회를 박해하는 사상체계, 흔히 경제 사회정치 체제로 동일시 되어있는 이와같은 무신론적 사상체계중 제일 큰 것이 다름 아닌 바로 공산주의임을 밝혔다. 그러나 교황은 『우리가 그들 체제와 정권을 심판함은 그들이 사상과 행동에 있어 우리를 극단으로 반대하고 있음에 비할 바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그들과의 접촉을 시도한 교회의 선의가 오히려 악용되었고 「침묵의 교회」 박해는 가혹성이 가중되었음을 상기하였다.
나아가 오늘의 실정으로는 공산주의와의 대화란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는데도 극히 어렵고』 또 무의미 할 수 있음을 표명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교회가 하고자 하는 대화에서 『그와같은 「시스템」에 속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려는 어떤 선입견에 지배되어 있음이 아님을』 천명하여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가능하다.』 따라서 그들이 만일 진지한 태도를 가지게 된다면 그들과의 대화용의를 교회는 언제나 가졌음을 시사하였다.
여기서 교황은 공산체재하의 「침묵의 교회」가 오늘 아직도 어떠한 박해하에 있는지 애탄해함과 동시에 『그와같은 상태하에서 침묵과 신음과 인내와 사랑은 교회가 아직 바칠 수 있는 신앙증거이며 죽음도 이를 저지할 수 없다.』고 하였다. 교황은 무신론과 이에 속하는 사람들을 다만 심판하지만 않았다.
무신론적 체재를 믿는 그와같은 사람들의 마음 깊이에는 사회정의와 진보에 대한 동경이 있고 그들이 무신론이 멀어진 동기중에는 보다 더 값있게 보다 더 맑게 제시되었어야 할 천주의 진리가 우리의 탓으로 불완전하게 표시된 데서 일어난 반발도 있을 수 있음을 말하였다. 그리하여 교회는 그들과의 심리를 이해하고 연구함과 동시에 우리자신의 종교성을 정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