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信徒(평신도) 눈에 비친 美國(미국) 겉 핥기錄(록) - 美國(미국) 가톨릭 안팎 (26) 봉쇄수도원
미국민식탁, 수도원이 맡아?
선풍기 없는 갈멜응접실 90도 더위
발행일1964-09-06 [제437호, 3면]
성인 나기가 힘든 미국이라 한다.
성인이 생기기엔 너무나 힘든 환락의 나라란 말인가?
미국은 확실히 물질 문명의 요지경 같은 나라다.
하지만 바깥모양만 훑어보고 성인이 탄생할 수 없는 나라라고 속단해서는 안된다.
미국에서 품질 좋고 인기 좋은 「버터」와 「치즈」 그리고 「햄」 등은 대부분 봉쇄수도원인 「켄터키」의 「켓세마니」 수도원에서 생산된다. 말하자면 미국민의 식탁을 장식해주는 부엌데기의 구실을 담당하는 셈이다. 보통 활동수도원이 아니고 한번 들어가면 죽는 날까지 나오지 못하게 되어있는 가장 규칙이 엄한 봉쇄수도원인 것이다.
미국인으로서는 성직자가 된다는 한가지 이유만으로도 존경을 받고 우대를 받는다. 우리 범인보다 많은 인간적인 희생을 지불해야 하고 또 우리들 죄까지도 보속해주며 사는 분이란데서 그같은 풍조가 생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물며 미국에서 봉쇄수도원에 들어가 노동과 기도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분에 있어서랴.
한국에서는 「갈멜」수녀원이 봉쇄수도원이고 남자를 위한 봉쇄수도원은 아직 없다.
「지상의 영화」를 미신(迷信)하지 않고 「영원한 복락」을 신앙하면서 자기의 생애를 완전히 천주대전에 바치고 사회와 담을 싸고 사는 「트라피스트」수도원이 미국안에 열다섯군데나 있다.
우리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희생의 마음이다. 보장된 사회생활마저 포기한 「트라피스트」 수사의 수가 2천6백명이나 된다.
더위는 90도를 오르내리는 날이었다. 「켄터키」주의 「루이빌」까지 오는 동안 피곤은 내 온몸에 노랗게 고여있었다. 「갈멜」수녀원엘 찾아갔다.
냉방장치는 고사하고 선풍기 조차 없는 응접실이 있다.
화씨 90도가 넘는 무더위가 그냥 그대로 머물러 있는 「갈멜」 봉쇄수도원의 응접실이었다.
땀을 주체 못하고 더위에 짜증을 낸 내 자신이 문득 부끄럽게 여겨졌다.
그들은 이같은 냉방장치 없는 집에서 산다는 것 부터가 미국인으로서는 커다란 희생이 아닐 수 없었다. 원장께 면회를 청했다. 나와 동행인, 이경재 신부님은 아려진 포장 앞에 섰다.
포장 저편에서 『한국에서 오신 분들을 만나게 되니 영광입니다.』하는 소리가 들린다.
예방한 뜻을 밝혔다.
『이 신부님은 미국에 언제 오셨어요? 신 선생은요? 가족은 어떻게 됩니까?』
서너명이 번갈아 말 상대를 해주는데 누가 원장이고 누가 평수년지 알 길이 없다. 포장친 곳을 향해 서로 정다운 말을 나누었다.
『수녀님이 몇분이나 계신가요?』
『네 현재 20명입니다.』
그들은 포장 저편에서 여행중인 우리들의 건강을 걱정해 주기도 하고, 언제 한국에 돌아가게 되느냐고 물어주기도 했다.
우리는 한국의 「갈멜」회의 발전상을 설명해 주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갈멜」수도원의 지원자들이 꽤 늘고 있죠』하고 슬그머니 자랑을 했다.
『우리도 지원자들이 늘어나서 지금 또 증축 중에 있어요』
지원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한국만의 자랑이 못되었다.
아마 「갈멜」회의 공통된 자랑거리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네 그러세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즐거운 여행이 되도록 기구하겠읍니다. 그런데 이 신부님! 저희들에게 강복 해주시겠어요?』
『네』
이 신부님은 가려진 포장 저편에 꿇어 앉은 수녀님들께 강복을 해주었다.
-마음으로 가난한자는 진복자로다. 천국이 저희의 것임이요-
나는 묵묵히 얼굴도 보지 못한 수녀님과의 면회를 마치고 나그네 길을 또 떠났다.
역시 미국에서도 훌륭한 성인 성녀가 나올 수 있는 소지(素地)가 얼마든지 있는 것 같이 여겨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