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64) 목걸이 ①
발행일1964-09-06 [제437호, 4면]
그후 며칠이 지난 날 저녁 무렵 나는 창가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레지」의 「오아시스」는 앉는 것이다.
다방 맞은 편에는 허름한 옛날 일본가옥이 그저 남아있는데 오륙명의 여자들이 나무판을 앞에 놓고 바느질을 하고 있다. 「재봉소」라고 종이 간판이 붙어있다. 『짜깁기 합니다.』라고도 쓰여있다. 지금까지는 재봉소의 존재에 대해서 무관심했었는데 이때 나는 재봉하는 여자들은 노상 앉아 있으니 다리를 좁은 틈에 뻗으며 주먹으로 정강이를 툭툭친다. 이윽고 허리를 또 친다. 뭐라고 옆에 있는 여자에게 말을 하는데 들리지는 않았다. 그 모양이 앉아있어서 편한 것이 아니라, 다리와 허리가 아프다고 하는 듯 하다.
저 여자들은 나와는 반대로 걷고 싶은 직업임을 나는 깨달았다. 충무로와 명동으로 통하는 골목길이 바로 눈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데, 짝지어 가는 남녀들이 많다.
옷을 잘 입고 오양이 반듯한 패들은 행복해 보엿다. 어울리지 않는 짝도 있고, 옷차림이 초라한 「아벡크」도 있었다. 그러나 무언지 그들에게는 희망이 있어 보였다. 이날 나는 어쩐지 몸이 노곤했다. 가끔 길 가는 사람의 얼굴이 둘로 짜개 졌다가 합친다. 무엇엔가 쫓기고 있는듯한 초조감이 나를 둘러싼다.
이때 「미스」박이 내 옆에 와서 그저께 새로 사입은 나의 곤색 「갸자 스카트」를 들여다 본다.
『나도 이런거 하나 사고싶은데, 얼마 주었어?』
어제까지 나에게 말도 잘 않던 「미스」박이 묻는다. 손님의 인기와 「마담」의 사랑이 나에게로 쏠리는 것을 시기하는 그는, 요즘 나를 적대시하는 태도가 노골적으로 나타나 있었다.
저 쪽에서 누그러지는 이상 나도 누그러지는 듯 하였으나, 속으로는 그를 골탕먹일 생각을 했다.
『이천원!』
정말은 구백원 주었는데 곱절을 불렀다.
『어마아!』
그의 커다란 입이 악어가 하품하듯이 벌어졌다.
『한 천원만 해도 기를 쓰고 사 입겠는데?』
고개가 실룩해진 그의 꼴이 처량해 보이길래,
『절말은 구백원이야 XX백화점에 가봐』
『「미스」양 입은거 참 좋아 보여! 나도 해입고 싶은데, 돈이 오백원 밖에 없거든! 「마담」은 내가 돈 꾸어달래면 안꾸어주지 않아? 「미스」양이 오백원만 꾸어서 날 주면, 월급때 갚을게』
나는 거절하는 말이 입 끝까지 나온 것을 도로 삼켰다. 애원하며 비는듯한 그 눈동자를 보니, 가엾은 생각이 은다.
『그래』
나는 승락하고 주방에서 사온 재료를 챙기고 있는 「마담」한테 가서 천원을 꾸어 달라고 말했다. 그제께 천원 꾸어 간 것이 있었지만 「마담」은 아무말 않고 오백원짜리 두장을 「빽」 속에서 내준다. 한장은 「미스」 박을 주고 한장은 내가 간직했다.
「미스」박이 오백원짜리 한장을 손에 쥐고 기뻐하던 얼굴은, 사진이라도 찍고 싶었다. 「스카트」 한벌에 대한 그의 희망은 그만큼 컸던 것이었다.
그는 나를 따라오기에 바빴던 것이다.
한 삼십분 후에 그는 「스카트」를 사와서 즉시 갈아입고 나왔다. 허리가 굵고 다리가 짧은 그에게는 별로 어울리지가 않았다.
옷이 날개라고 뒷모양은 훨씬 낫게 보였으나, 앞모양은 전보다 나아지지도 않았다.
남자 같이 투박하게 생긴 그의 얼굴에 섬세한 「갸자스카트」는 마치 가장행렬에 나온 여장한 남자 같았다.
그러나 「미스」박의 검은 얼굴에도 기쁨이 서리었다.
『나도 「미스」 양 같이 체격이 날씬하고 살결이 희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미스」 박도 자기 못난것을 비로소 시인하며 나를 부러워 한다. 이 순간 나는 공작새가 까치를 바라보듯이 「미스」박을 바라보았다.
까치는 「갸자스카트」 하나에 만족했지만 공작새는 목걸이가 하고 싶다.
목걸이를 사 줄듯하던 유전무의 돈주머니를 어떻게 하면 열게 할까? 그런 궁리를 은근히 하면서 창밖을 내다 보고 있을 때, 오래동안 못만나던 강숙이가 오륙명의 학우들과 함께 창 아래 길을 지나간다. 반가와서 이름을 부르려고 허리를 창밖으로 내밀다가 보니 그 속에는 춘자도 있었다. 춘자는 키가 늘씬해지고 얼굴도 이뻐졌다. 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춘자에게만은 다방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가 않았다.
생각하고 나니 그들은 이미 고교생들이었다. 그들은 무언지 재미있게 속삭이다가 웃으며 저편 모퉁이로 사라졌다.
그들이 살라진 거리를 나는 기차를 놓친 사람이 희멀건 「홈」을 바라보면 양퇴기라고 놀림받던 설음도 많았지만, 즐거웠던 장면도 「파노라마」 같이 머리를 스친다. 나는 이미 그 세계에서 떨어진 탈락자였다.
이때, 손님이 들어서는 기척이 났으나 나는 그대로 창가에 턱을 대고 앉아있었다.
『유전무 오셨어!』
「미스」박이 옆에 와서 귀에 대고 속삭인다.
보니, 저편 구석에 유전무가 혼자 앉아서 담배를 피어물고 있다.
여느때 같으면 일부러 자기가 앞질러 차 주문을 맡으러 가던 「미스」박이 나에게 양보하는 기색이다.
『아직 주문 안맡았어, 가봐!』
「미스」 박은 친절해 졌다. 학창기분을 떨고, 그의 앞으로 갔다. 우선 미소의 「서비스」를 보냈다. 그리고 그가 시킨 차를 나르고선 잠시 그의 앞에 서서 잡담을 했다. 그의 쌍거풀 진 조그만 눈이 야릇한 빛을 담고 내 얼굴을 오락가락 할 적에 나는 본대목으로 들어갔다.
『내일, 내 생일인데 선물하나 안해 주시겠어요?』
이것은 차를 나르는 동안에 궁리한 대사였다.
『선물 뭐가 좋아?』
나는 속으로 올다됐구나 생각하면서 유도작전을 썼다.
『일원짜리도 좋으니 성의의 선물이라면 아무거라도 좋아요!』
『갖고 싶은게 뭐야?』
『목걸이가 갖고 싶어요!』
『무슨 목걸이, 진주 목걸이』
나는 점점 무르익어가는 것을 느끼며 떨리는 마음으로 말했다.
『진주목걸이는 과하고 백금목걸이면 돼요!』
『백금 목걸이가 얼만데? 돈 없어!』
그러면서 유전무라는 사나이는 갑자기 사람을 비웃듯이 웃는다. 나는 순간 물벼락을 맞은 듯이 목이 선듯했다.
여자에게 녹진 녹진해 보이던 그의 인상과 웃음소리는 전혀 딴판이었다.
이날밤 나는 집에 좀 다녀온다고 말하고 옷보따리를 들고 다방을 나섰다. 유전무에게 당한 모욕감이 견딜 수 없고, 목걸이를 탐낸 내 자신이 협오스러웠다. 양부가 붙들면 그대로 집에 주저 앉을 작정이었다.
오는 길에 「케잌」 한상자를 사들고 돌아와 보니 양부는 수척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그의 머리 맡에는 한약 먹은 그릇이 놓여있다.
『어디 편찮으세요?』
『식욕이 없고, 기운이 없다.』
양부의 말에는 힘이 없었다.
양부는 무슨 약을 한제 먹으면 낫겠다고 하는데 돈 만원이 없다고 하며, 은근히 나에게 바라는 눈치였다. 아무런 저항을 느낄 수 없도록 된 양부를 보니 다소 가엾어 보인다.
나는 가진 돈을 툭툭 털어 천여원을 베개맡에 놓고 약값을 만들어 보겠다고 말하고 일어났다. 내가 그처럼 싫어하던 양부의 집이나마 그 그늘을 찾아왔더니 거기도 내가 있을 곳은 못되었다.
수치의 장소 다방으로 나는 올 때와 같이 힘없이 걸었다. 그러나 다방이 가까와 오자 나는 아까보다는 기운을 냈다. 본래 수치의 출생을 가진 내가 수치는 가려 무엇하느냐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진호의 얼굴이 몇번이고 안박을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