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을 이 겨레 위해 바친 을사년에 온 선교사들
대전서 閔榮在 주재기자 記
발행일1965-02-14 [제458호, 3면]
지금으로부터 만 60년 전인 1905년, 을사년 6월29일 프랑스의 「빠리」 대신학교에서 사제로 서품된 새신부 두 분이 어깨를 나란히하고 수륙만리 이역땅 한국 인천에 10월10일 도착했다.
그들은 100년이란 긴 세월을 간단 없는 모진 박해와 피의 투쟁으로 「신교의 자유」란 비싸고도 고귀한 것을 쟁취하는 선봉장이었고 한국 성교회의 개척사도인 빠리외방전교회원의 새 세대(世代) 역군이었다.
그로부터 60년 후인 오늘 1965년의 을사년을 맞아 젊은 청춘을 검은 수단 속에 고스란히 불사르고 이 나라 이민족의 마음에 천주 성신의 궁전을 짓기에 각고(刻苦)한 그들, 지금은 백발이 성성한 두 신부가 바로 빠리 외방전교회 한국지부 경리부장인 베드루 지(池士元) 신부와 강경본당 쥴.베르몽(睦世榮) 신부이다.
■ 池士元 神父
성직자 양성에 주력한 원예사 종부받아
길러낸 방인신부들 이젠 같이 늙어
곤충 채집해서 신학교에 「가스」등 달아
병상에서 해동하면 「마늘」 가꿀 꿈꾸고
세 칸 남짓한 방(빠리외전 한국지부 내) 간소한 책상 위에 신공책이 두 셋, 동쪽에 침대가 있고 남쪽을 향하여 오후 한 때를 쉬고 있는 지신부님은 지난 12월 노환으로 종부성사까지 받았다. 내방(來訪)의 뜻을 고하니 백발이 성성한 노장 지신부님은 안경 너머로 자애로운 눈을 감으며 이외로 또렷또렷한 음성과 연대를 짚어가며 지난 60년간의 회고사를 구한말(舊韓末)의 을사년부터 말씀하신다.
오늘의 성직자의 「모자리」가 된 용산신학교(1906-1914)에서의 신부 양성부터…
그러나 이 때 길러낸 신부들이 모두 자기와 같이 오늘날 늙은 신부들이 되었다고. 또한 당시 신학생들로 하여금 수천 종의 곤충 채집을 시켜 이를 기금으로 동 신학교에 처음으로 「가스」등(아세치린 등)을 켜게 하였다고 하며 지금도 늙은 제자 신부들이 정전(停電)이 되면 지신부를 모셔와야 한다고 하여 전기과학에 대하여도 조예가 깊었음을 암시하여 준다. 가장 기뻤던 일은 역시 1914년 강원도의 「용소막」(新林本堂)에 성당을 새로 짓고 용산신학교로부터 「가스」등을 옮기고 일선에서 전교하였을 때라고 하며(1914-1926) 원예(園藝)에도 권위이신 지신부님은 현재도 동 지부 내에 수백 본의 장미를 기르고 있으며 한국의 풍토에는 「마늘」이 좋다고하며 해동과 더불어 손수 마늘을 심어 가꾸시겠다고 한다.
그 후 한국 성교회의 견고한 기초를 세우고 발전의 터전을 마련키 위해 1928에서 1942년까지 소신학교 또는 대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시고 후에는 교장신부로써 성직자 양성에 주력하신 지신부님은 1950년 공주본당 재임시 6·25 동란을 맞아 제대 위 높이 모신 성모상을 인민군이 파괴는 못하고 총으로 쏜 흔적을 보았을 때가 가장 가슴 아팠다고 한다.
금년 6월18일로써 83회의 탄신을 맞이하는 지신부님이 하루 속히 쾌유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며 또한 지신부님도 일반 교우들의 많은 기구를 바란다고 하였다.
■ 睦世榮 神父
한국땅의 흙되길 다짐하며 오신 후
귀국 한 번도 않고 12일은 생일
인민군도 못 잡아간 덕 높은 할아버지
가는 곳마다 심은 나무 이젠 고목
금년 2월12일로써 84회의 탄신을 맞이하는 목신부님이 스물다섯살의 청춘으로 이 땅을 디뎠을 때는 역시 앞서간 선배들이 목숨을 바친 붉은 피자국이 아직 마르지 않았던 1905년 을사년 10월10일이다.
『한국 땅의 흙이 되겠다』는 영웅적인 기상으로 고국 산천과 이별한 목신부님은 그 후 60년간 그 결심은 변치 않아 한 번도 고국을 다니_간 일이 없다.
민족의 비애인 6·25동란 때 호남지방 일대를 침입한 공산괴뢰군도 덕이 높은 이 할아버지를 잡아갈 죄목을 만들지 못했다. 그들은 신부 하나를 죽이며는 국군 1개 사단을 전멸시킨 훈장을 받는다고까지 했지만 괴뢰들도 우물우물 하다가 오히려 감화를 받고 되돌아 갔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반세기 이상을 전남·경남·충남 등지의 일선에서 사람 낚는 어부로서 젊은 열정을 백발이 성성한 오늘까지 고스란히 쏟았으며 마산 완월성당을 석조로 신축하고 성지여중고를 개축하고 강경본당을 신축한 목신부님은 노익장 식물학에도 조예가 깊다. 가는 곳마다 심어논 화초는 오늘날 고목(古木)이 되고 여러가지 식물로 만든 산약(山藥)은 교우들뿐만 아니라 외인들간에도 이름이 높아 영혼의 병은 물론 육신의 병도 잘 고친다고 한다.
평범한 60년간의 성직 생활 그러나 천주의 사절로서 빠리외방전교회 신부들간에 천주의 진노를 막는 피뢰침의 작용을 목신부님이 하여준다고도 한다.
우리는 이 두 분 신부님께 감사하고 우리 각자의 신앙생활 속에 그 분들의 사랑을 아로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