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主(천주)와 하느님 같이 쓰자
全國敎理委員會(전국교리위원회) 提案(제안)
발행일1964-09-06 [제437호, 4면]
【承傳】 이상으로 볼 때 우리는 먼저 中國宣敎師로서의 마테오 릿치가 그 民族文化를 토대로 傳敎한 傳敎精神에 고마움을 느끼고 둘째로 그가 그리스도敎의 神槪念을 「하늘」 思想을 中心으로 表現한 명석한 머리에 감탄을 아까지 않는 바이다.
만일 마테오 릿치의 反對者들이 「天主」라는 말이 「史記」의 封禪書에 나오는 八神 即 天主, 地主, 兵主, 陰主, 陽主, 月主, 日主, 四時主 中의 한 雜神의 名稱인줄을 알았더면 그리고 「宋書」의 呵稱도 못쓰게 하였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기야 中國의 「하늘」 思想이 神話的이고 自然崇拜的인 要素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어느나라 말이고 그리스도敎의 神槪念을 完全하게 表現하는 말이 있겠는가. 天主께서 모이세에게 당신 自身을 啓示할 때에는 人間言語로는 表現할 수가 없어서 『나는 있는 바 그 자로다』하시지 않았던가.
그리스도敎 思想에서 天主의 이름이 라틴어의 「데우스」로 定着하기 까지는 舊約時代부터 허다한 호칭을 남겨놓은 후의 일이다. 우선 舊約에 나오는 이름 엘로아(創世의 神), 에호와(聖父들의 神), 엘(太祖들의 神), 야웨(모이세에게 啓示된 神) 등은 셈族, 시리아族의 原始宗敎에서 온 명칭들이고 우리가 지금 쓰고있는 라틴어 「데우스」는 희랍 · 로마 神話文學에서 온 말이다.
語源的으로 보면 「데우스」는 희랍어 「데이보스」에서 온 것으로 「데이보스」는 在天上의 最敬의 對象者로서 높고 밝은 者란 뜻이다.
이러한 者는 희랍神話의 第一神 「제우스」이다. 中國 天思想의 「天顯也, 在上高顯也」라 한 槪念과 合致함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敎는 희랍 · 로마文化를 完全히 흡수하여 자기것으로 한데 그 歷史的偉大性이 있고 敎理內容의 世界性이 있는 것이다.
■ 「天主」를 버리자는 것 아니다
그리스도敎의 土着化 問題가 傳敎精神의 絶對的 要請으로 되어 있는 오늘날, 中國의 傳敎가 「天主論爭」으로 始發하였다는 事實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 福音이 처음 傳道될 때 「天主」라는 中國的 用語가 適否適을 論議할 사이도 없이 無條件 收入되었다는 것은 當時의 時代的 文化背景으로 보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하겠지만 우리나라 傳敎가 처음부터 첫 걸음을 헛 짚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神槪念의 表現問題와 祭祀問題 등을 民族文化를 中心으로 하는 傳敎精神으로 解決하였던들 그리스도敎가 「西學」 「邪學」의 낙인을 찍히지는 않았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은 過去는 지나가쏘 우리에게는 미래만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晩時之嘆이 있지만 이제라도 이 문제는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天主」란 말이 儒敎思想에서 볼 때 썩 잘 된 말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外來語라 하더라도 우리가 近 2百年동안 同化하여 우리들의 마음 속에 스며들고 있다. 그런고로 기리 간직할만한 歷史的 價値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왜 이 문제가 일어나게 되었나 하는 것은 決코 無視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문제는 그리스도敎의 民族文化로에 흡수하는 것이 敎會發展에 不可避한 條件임을 一線 傳敎神父들, 信者들이 절실하게 느끼게 된데서부터 나왔다고 본다.
우리가 2百年동안 「天主」란 말을 써왓지만 이 말이 社會에 먹혀지지 않고 있는 것은 再考해 보아야 할 일이 아니겟는가. 『天主敎는 다른 宗敎나 民族信仰과는 다르다.』는 特異性을 우리는 너무 主張해 왔다. 그러나 이때문에 「獨善的」 「排他的」이라는 빈축을 샀고 스스로 門戶를 초래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스도敎가 西洋에서 民族言語로 그 絶對神을 表現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의 民族言語에서 絶對神의 表現을 찾아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느님」도 같이 쓰자는 것
「하느님」이란 말이 글로 나타나기는 世宗大王의 한글을 制創한 以後의 일이겠지만 그 思想은 우리 民族이 생기면서부터 民族과 함께 자라온 말이겠다.
어느 民族이고 자기 民族의 偉大함을 드러내기 위하여 神話는 거의 다 「하늘」에서 일어난다.
「하늘」 이 낸 民族이란 自負心을 갖기 위해서다. 우리 民族도 「하늘」이 낸 民族이다. 檀君神話를 비롯해서 韓國的 宗敎들이 「天道敎」 「天理敎」 「待天敎」 등 하늘 天字를 따고 있는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하느님」이란 말의 語源을 硏究한 분들의 意見에 의하면 「__」(白=明), 「한」(大) 「하나」 등 여러가지 說이 있으나 語音의 變遷으로 볼 때 「하날」(天)에서 온 것은 古語硏究家들의 一致된 學說이다.
檀君神話는 그 說話가 「하늘」을 中心으로 되어 있는데서 우리 民族文化가 世界性을 지니고 있는 價値를 찾아 볼 수 있다. 이 神話에는 희랍神話의 第一神 「제우스」에 해당하는 天帝 桓因이 그 아들 天帝子 桓雄을 弘益人間의 適地 太白에 내려 보냈고, 桓雄은 神女인 웅녀와 合하여 檀君을 낳아, 檀君은 阿斯達에 入都하여 開國하니 이를 朝鮮이라 號하였다는 說話가 있다.
이 홍직씨는 「桓」字는 우리 말의 「하늘」, 「하날님」(天)을 佛家의 비슷한 槪念인 帝釋桓因(四天王과 三十二天을 통솔하는 佛神으로 代置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렸다. (국사상의 제문제 제1집, 31페이지). 事實이야 어찌됐건 간에 우리 民族이 古來로 「하늘」을 信奉하는 正統的인 原詩信仰을 가졌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하느님」이란 개념은 民族의 歷史와 더불어 國民生活 속에서 세련되어 哲學과 神學의 課程을 거치지 않고도 「唯一한 人格神」을 그대로 表現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하느님」은 人間이 生死禍福을 걸고 우러러 처다보는 存在로 생각해 온 것이 우리 民族의 生活感情 그대로다.
丁若鍾은 우리나라 최초의 敎理書 「주교요지」에서 「하느님」에 대한 이와같은 민중의 느낌에 호소하면서 천주존재를 증명하려고 하였다. 『무릇 사람이 하늘을 우르러 보매 그 위에 임자계신줄을 아는 고로 질통, 고난을 당하면 앙천 축수하여 면하기를 바라고 번개와 우뢰를 만나면 자기 죄악을 생각하고 마음이 놀랍고 송구하니 만일 천상에 임자 아니 계시면 어찌 사람마다 마음이 이러하리오.』 그리고 1869年에 佛人神父 에일 드브레의 「싸인」으로 原稿만을 써놓고 出版되지 못한 「佛韓辭典」(福者 顯揚會 圖書館 所藏)에도 佛語의 DIEU를 「텬쥬, 하느님」으로 번역하였고 오늘날 一般社會나 우리말 사전, 기타 學界에 쓰는 뜻도 「하느님」은 그리스도敎의 絶對神을 말하고 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 結語
이상 논술한 바로 볼 때 이번 全國 敎理委員會에서 「天主와 하느님을 兼用하자」는 提案은 傳敎의 時代的 要請의 한 發露라고 할 수 있다. 勿論 「하느님」을 씀으로써 實踐上의 지엽적인 문제도 있겠고 感情上의 氣分問題도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일단 本質的인 문제를 해결해 놓고 나서 지엽적인 것이나 기분문제는 점차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줄 안다. 그리고 「하느님」으로 하느냐 「하나님」으로 하느냐의 문제도 꺼낼 수 있지만 그리 중요한 문제라고는 보지 않는다.
다만 한가지 「넌센스」를 지적하면서 이 글을 맺는다. 우리말 사전을 펴보면 「하느님」은 『인간을 초월한 절대자로서 우주를 창조하소 주재하며…』로 규정되어 있고, 「하나님」은 『기독교 「프로테스탄」에서 전통하는 唯一神』으로 「천주」는 佛敎의 神으로도 天主敎의 『만선 만덕을 갖춘 神』으로도 되어있다.
기독교의 神 天主敎의 神이 『인간을 초월한 절대자』인 하느님과 다른 神으로 우리는 信奉하고 있는 것일까.
『형제들아, 나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권하노니 다 합심하여 말하며 너희중에 분열이 있게 하지 말고 오직 한 정신과 한 의견에 온전히 일치할 지니라.』(코린토 전 1장 1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