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를 만들어 성지에 기증한 류인협 할아버지는 “의미 있는 일을 하라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지팡이를 만들어 나누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큰 사고를 당하고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하느님이 저를 살려주신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지팡이를 만들기 시작했죠.”
대전교구 해미국제성지(전담 한광석 마리아 요셉 신부)에는 특별한 기증품이 있다. 신자가 손수 만든 지팡이다. 기도하는 데 꼭 필요하진 않지만 순례객들을 위한 따뜻한 배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이 물건은 해미본당 신자 류인협(요한 세례자·81) 할아버지가 기증한 것이다.
성지에서 7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류 할아버지의 집. 작은 마당 한켠에는 나무 막대가 가득 걸려있다.
“나무도 해오고, 완성된 지팡이도 보내야 하는데 전동 휠체어가 제구실을 못해 걱정입니다.”
요 며칠 지팡이를 만들 나무를 구하지 못했다는 류 할아버지의 표정은 근심으로 가득했다. 오전에 공공근로를 하고 돌아오면 오후에는 지팡이 만드는 일에 몰두한다는 류 할아버지. 고령에다 몸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그는 지팡이 만드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4년 전쯤, 해미읍성의 풀을 뽑는 공공근로를 하다가 7m 높이에서 떨어져 대퇴부가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큰 수술을 겨우 마치고 퇴원은 할 수 있게 됐지만 낮은 계단조차 내려오기 어려운 몸이 됐죠.”
지팡이를 짚고 어렵게 걸음을 내딛으며 몸이 불편한 분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 류 할아버지는 걷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지팡이를 만들어서 나눠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목수 일을 오래 했던 그가 잘하는 일이 나무를 다루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부터 만들기 시작한 지팡이는 어느새 200개가 넘었다. 류 할아버지는 일주일에 두 번, 산에서 나무를 구해와 다듬고 말려 지팡이를 만든다. 키가 작은 사람을 생각해 길이도 달리하고, 잡기 편하도록 손잡이 만드는 과정에도 정성을 들인다. 몸은 고되지만 지팡이를 만들면서 마음속 기쁨은 커져갔다.
“하느님께서 제 목숨을 살려주신 것은 뜻있는 일을 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나누며 하느님이 다시 주신 시간을 쓰고 싶습니다.”
해미국제성지에 기증한 지팡이는 150여 개. 지팡이를 성지로 보낸 것은 지팡이가 좀 더 의미 있게 쓰였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제가 주면 한낱 나무깽이로 보이겠지만 신부님이 주시면 보물로 보일 거 아니에요? 그래서 신부님께 나눠주라고 한 것이죠.”
해미국제성지에 온 신자들이 하느님께 감사하고, 누군가가 내어준 지팡이를 보고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류 할아버지는 오늘도 지팡이를 만든다.
1년 넘게 지팡이를 만들고 있는 류 할아버지에게는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이제는 좀 더 실용적이고 예쁜 지팡이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죽기 전까지 열심히 지팡이를 만들어 나눌 것입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