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空間(공간)
발행일1964-09-13 [제438호, 4면]
자연의 공간은 삼차원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이 안에서 일정한 질서를 지키고 있다. 공간이 있기 때문에 만물은 있고 생존하고 일하며 움직인다.
종교적 공간도 질서없이 서있지는 않는다. 먼저 종교적 공간은 신앙의 신비에서 생기는 것이다. 교회는 동서로 즉 해뜨는 곳에서 해지는 곳에까지 다다른다.
태양이신 그리스도는 베드루의 배를 조금도 떠나지 않고 비추시며 인도하신다.
따라서 우리 영혼은 항시 예수님께로 향도되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예수님의 바라보심 밑에서 예수님을 우러러보며 우리가 하는 일거일동은 영원한 가치를 갖게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종교의 가치이며 참된 종교는 언제나 영원으로 통하는 길이며 영원은 바로 그의 생명이기도 하다.
성경을 읽기 위해서 우리는 미사책을 제대 왼쪽에서 바른쪽으로, 즉 제대기 동쪽으로 향해 있으니 남쪽에서 북쪽으로 옮겨놓고 있다. 이런 태도는 의심없이 지중해를 거쳐 서양 각지에 복음이 전파된 사실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역사적인 이런뜻 보다도 더 깊은 뜻을 찾아보기로 하자. 남쪽은 휘황찬란한 빛의 왕국이며 푸른 하늘의 상징이지만 북쪽은 춥고도 침침한 들판과 하늘의 시야만이 전개되는 곳이다. 복음은 광명의 나라에서 오고 그리스도 당신은 어두운 가운데 빛나는 빛이시다. 우리가 당신을 우러러 보기를 진심으로 원할 때 당신은 우리 앞을 가로막는 암담한 구름을 뚫고 마주 오신다.
그러나 거룩한 공산의 가장 중요한 방향은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상승과 위에서 밑으로 내려오는 하강의 방향이다. 제물을 준비하는 사제는 빵과 포도주를 위로 올려 바친다.
사제의 눈과 손은 저속한 사회를 떠받치면서 높은데 계시는 천주님께로 향한다.
『무한한 성덕은 드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사제가 강복할 때는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신자들의 머리 위에 손을 내려얹는다. 밑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왔다갔다 하는 연직선은 영혼과 그의 원의, 기구, 희생 등이 올라가는 길이며 천주님과 그의 성총, 은혜, 성사성총 등이 내려오는 길이다.
항상 솟아 오르는 태양이신 그리스도께로 신자들의 시선은 향하며 그 안에 파묻힌다. 도 그리스도께서는 천주님의 힘센 광명을 우리 마음속 깊은 곳으로 발사하신다. 이는 바로 영혼의 위대한 상승이며 천주님의 존엄한 하강이다.
삼라만상은 어두운 북쪽에서 광명을 찾아 남쪽으로 향하고 있으며 영혼은 천주님의 로고스 안에 빛나는 광명, 빛을 주고 뜨겁게 하는 마음에서부터 솟아나는 그리스도의 광명을 찾아 위로 상승하고 있다.
상승은 한마디로 영혼의 움직임인 것이다. 원의하고 괴로와하고 기구하며 자기 자신의 비천의 밑바닥에서부터 가장 높으신 천주께로 향해 뛰어오르는 것은 바로 영혼의 생명이며 이 생명의 줄기찬 움직임을 우리는 매일 아침 미사 때 『수르숨 꼬르다』란 말마디로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천주님께서는 이 움직임의 보답으로 성총과 강복과 성사의 은전을 내려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