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年 7月 2日字 가톨릭時報에 發表된 바에 依하면 韓공烈 委員長主敎님 司會로 開催된 第3次 全國敎理委員會에서 聖書飜譯에 있어 現代語 使用 用語統一을 프로테스탄과 같이 할 것과 「天主」와 「하느님」 을 祈求中에 같이 쓸 것에 協議하고 公式許容을 主敎團에 提出했다. 그런데 이와같은 措置는 「하느님」이 純우리말이며 基督敎理一致에 有助하기 爲해서라고 하였다. 生覺컨대 이 問題에 對하여는 爲先 和合的 理念을 取함에 있어서도 가장 좋은 点을 發見하였다고 同感하는 바이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과에 있어서 外國語로 된 聖書中에 있는 人名 等에 對하여도 그 發音上 合議가 없는 以上 無音識的으로 多少間 發音이 다를 수가 있을 줄을 알면서도 그 發音이 不可함은 즉이 遺憾으로 여기었다. 一例를 든다면 「에와」(EVE)를 「이부」라 하고 「바오로」 (PAUL)를 「바올」이라고 하는 等과 같은 것이다. 그뜻에 있어서는 다를 수가 없을 것이나 發音이 不同한 關係로 第3者로서는 多少間 현혹되는 点이 不無일 것 같다.
「예호와(JEHOVAH)를 「天主」이니 「하느님」이니 하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일러 내려왓더냐 하면 韓國使臣이 中國北京에 往來하던 便으로 「天主實義」 「性理眞詮」 「七克」 등의 天主敎理에 관한 書冊이 國內에 들어왔엇다. 1777 丁酉年에 저 有名한 學者 權哲身 · 權日身 · 丁若銓 · 丁若鍾 · 丁若鏞 · 李承薰 · 李德祚 등 諸先生은 人生觀에 관한 哲理實義를 究하기 위하여 道儒佛仙敎 등의 書籍을 常時硏究하였다.
그러던 차에 上記한 天主實義 등의 天主敎理에 관한 書籍을 한번 入手하여 열람하매 비로소 天主存在, 萬物創造, 人生靈魂의 不死不滅 등 珍奇스러운 論理는 참으로 從來보던 許多한 書籍中에서는 보지 못하였던 것이 發見되었다. 當時 선비(文士)들은 무슨 큰 工夫를 하려할 시에는 고요한 山中에 있는 寺刹에 가서 外部와의 接觸을 完全廢止하고 全心全力 學門을 연구하던 慣習이 있던 時節이었다.
그러하므로 前記한 諸先生들은 天主敎理에 關한 天主實義 等의 書籍을 가지고 京畿道 여주郡 金沙面 下品里 鶯子山中에 있는 走魚寺(이 절은 大略 1850年頃 全部 헐리어 버렸으나 同 走魚寺趾에 그 溫突 놨던 자리와 廷邊에 石築 等 一部는 至今도 뚜렷하게 남아있음)에 가서 10有餘日間 不察晝夜하고 精誠을 다하여 徹底히 硏究한 結果 眞理인 것을 確實히 把握하고 直席에서부터 自發的으로 決心하고 天主敎를 信奉하였다.
뿐만 아니라 上下階級의 人士를 莫論하고 널리 傳敎까지 하여 信者가 多數增加하였으며 또는 한便으로는 無雙한 迫害를 當하였고 數多한 殉敎者를 내었다. 그리하여 自今 近2百年前부터 天主敎이니 天主이니 하는 稱號가 國內에 全部 傳播되어 내려오는 同時 天主敎會에 있어서 醒風血雨의 長久하였던 窘難時節은 즉이 가라앉게 되었다.
이러한 무렵 프로테스탄은 國內에 들어와서 大大的으로 宣敎를 하면서부터 「하느님」이라 하는 稱號를 널리 불리어 내려왔다.
그리하여 「天主」라 하면 依例히 가톨릭에서 부르는 稱號로 알고 「하느님」이라 하면 프로테스탄에서 부르는 稱號로 認識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天主」라는 뜻을 斷片的 文字대로 解釋한다면 「天」은 即 「하늘」이라는 것은 저 푸른 空間인데 萬物이 모두 그 속에 抱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至極히 넓은 곳이요 「主」는 「임금」 이라는 뜻으로서 그 版圖內에 總指揮할 權限이 있는 地位인지라 그런故로 「하늘에 계신 임금」이시라는 語義인 것이요 「하느님」이라는 뜻을 云한다면 「하느」는 하늘이라는 뜻인고로 上述한 天字에 說明하였음과 同一한 바이요 「님」은 上帶枋을 敬待키 위하여 使用하는 尊稱詞인 現由로서 「하늘에 계신 어른」이시라는 意味일 것이다.
그런故로 天主와 하느님은 本是 同一한 뜻인 것이다.
이러한 等 問題에 關하여 今回 全國敎理委員會에서 協議코저 하는 点에 對하여는 實로 贊同하며 歡迎하는 바이다. 오직 한가지를 進言코저 하는 바는 「하나님」이라고 호칭하기로 兩便이 十分 爛商協定하여주심을 切實히 要望하는 바이다.
그 理由를 든다면 그 한가지는 「하나」이라는 말(語)은 諸般 事物의 始初되는 基礎的位置에 있는 것을 云謂하는 것이요 다시 한가지는 顯微鏡으로도 發見키 어려운 微菌이나 原子와 같은 極히 작은 分子로부터 肉眼으로 어느程度 볼 수 있는 地球와 日, 月이며 其他 動植物과 至極히 높고 넓은 蒼空이며 또는 萬物中에 가장 尊貴한 天神과 사람까지를 다시 換言하면 눈에 보일 수 있는 모든 有形의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無形의 것을 莫論하고 全部創造하사 차지하시고 保存하시는 분이 곧 無始無終하시고 萬善萬德을 갖추신 다만 참 하나이신 全能天主 하나뿐이시라 그러하므로 우리의 至極히 低能한 頭腦로 簡單한 말로써 「예호와」를 呼稱함에는 從前과 같이 「天主」라고 하여 저 廣大無邊한 하늘에 계신 無所不能하신 大主宰란 듯을 표시하거나 또는 「하나님」이라 하여 全知全能하사 天上天下에 오직 하나신 萬王의 王이심을 表現코저 하는 所以인 것이다.
大抵 萬事를 不問하고 아무리 옳은 일일지라도 互相間 그 意見이 和合한 朽에라야 그 目的한 바가 順成되는 것이며 和合하려 함에는 双方의 意思가 合致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合致케 함에는 남이 내 뜻맞히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남의 뜻 맞추기로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참으로 互相間 겸虛한 생각으로써 順序, 境遇, 先後, 禮面, 派閥 또는 先入感, 優越感 等의 모든 觀念을 斷然 排擊하여야만 될 것이다. 이러한 趣意에서 今番에 가톨릭 全國敎理委員會에서는 現代語 統一 等을 프로테스탄과 같이 할 것과 天主와 하느님의 稱號를 함께 使用키로 한 意圖는 참으로 敬服하여 마지 않는 바이다.
同問題에 對하여는 프로테스탄 兄弟姉妹諸씨와 가톨릭 兄弟姉妹諸씨와가 똑같은 心情으로 이것을 協心實行함과 同時 아울러 요안 23洗 敎皇의 提議하신 敎會一致의 所願이 從速한 期限內에 成就되기 爲하여 彼此萬全을 期하여 주실 줄을 굳이 믿고 또한 懇曲히 바라는 바이다.
『和睦하는 이는 眞福者로다. 저들이 天主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임이오(마 5,8) 무릇 너더러 주여 주여 하는 이마다 다 天國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오직 하늘에 계신 내 聖父의 뜻대로 奉行하는 者 天國에 들어가리니』(마 7,21)
南相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