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會出版(교회출판)과 自家辯(자가변)
발행일1965-02-21 [제459호, 4면]
■ 讀書慾의 貧困과 가톨릭 出版文化의 低水準 / 崔奭浩 神父(가톨릭출판 사장)
讀書와 宗敎
우리나라에서는 교회나 세속사회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독서나 문장이라고 하면 그것은 어느 특수층의 전유물(專有物)이며 일종의 사치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문화적 후진성의 소산으로 여기에 간과할 수 없는 중대한 과제가 대두된다.
독서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어떤 사람의 사상을 문장으로 기룍표현해 놓은 것이다. 그러면 또 사상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진」과 「선」과 「미」에 대하여 실생활에 비추어 특유한 내용을 파악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선미는 어떤 특유층에만 필요한 것인가? 문인이나 철학 전공자에게만 필요하고 일반 민중에게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인가? 여기서 그렇다고 수긍한다면 그것이 「넌센스」인 것을 알아차리고 누구나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자명한 원리가 우리들의 실생활에서는 여지 없이 왜곡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종교에는 열중하지마는 독서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교우가 있다면 그는 얼마나 어리석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진리는 신봉하지마는 진리를 탐(探)하는 일에는 전혀 등한합니다.』 그의 말을 바꾸어 놓으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韓國 信者들의 讀書熱 貧困
한국 교우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영세한 후 장시일이 지난 사람, 특히 지식인도 더웅기나 교회서적은 도무지 읽지도 않을 뿐 아니라 어디서 무슨 책이 나오는지도 모르고 있는 사람이 허다한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잘라서 말하면 진리의 탐구욕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영세는 어떻게 하였는가? 여기서 우리는 큰 의문에 부닥친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괴이한 교우가 우리 교회에는 너무도 많음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영세자도 많지마는 냉담자도 많이 나는 것이 우리 한국인 것이다.
敎會出版은 왜 低調한가
교회출판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저조한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독자층의 수요가 너무도 미약한데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독서욕을 자극하여 출판사에서 능동적으로 보급시키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느 정도의 독서욕을 전제로 하고 가능한 일이다. 시발점인 독서욕이 전무상태라면 그것은 속수무책인 것이다. 교회출판의 저조의 가장 큰 원인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교회출판도 상행위의 과정을 밟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수요가 미약한데서 활발한 작용이 생길 수는 없는 것이다.
結論
가톨릭출판물 보급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이 과제를 진지하게 논의해 보는 것은 매우 의의 깊은 일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대하고도 간명한 일을 각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독서는 종교활동의 핵심인 까닭에 교회출판이 부진하다며는 그 나라는 아무리 영세자가 배출되어도 그것은 내용 없는 진리의 행동으로 조금도 기뻐할 일이 아니라는 슬픈 사실이다.
■ 돈이 없어 못 사 보는 敎會刊行物 / 鄭鎭奭 神父(천주교중앙협의회 총무)
매년 한 번씩 「출판물 보급주일」을 맞이하는데 이것이 한낱 구호에 그치지 않기 위해 어떤 근본 대책이 마련되어야 되겠다는 것이 절실한 소망이다.
우리가 믿는 계시의 원천은 「성경」과 「성전」이다. 성세 받은 사람은 누구나 다 아는 이 말을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지극히 쑥스러운 일이다. 우리 신앙의 바탕은 「성경」과 「성전」에 있다! 그런데 「성경」을 손에 쥐고 있지 않는 이른바 가톨릭 신자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 성교회의 공식 기관지들은 「성전」을 전해주며 강론을 보충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런데 성교회의 공식 기관지를 전혀 보지 않는 소위 천주교 신자가 얼마나 많은가?
평소에 느끼고 있던바 몇 가지를 적는 바이다. 혹시 어떤 이의 비위에 거슬리는 대목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있는 사실을 감히 당돌하게 그대로 적는 바이다.
성직자
성서 보급자 자선 사업의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하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간절히 부탁드린다. 사도의 첫 사명은 「가르치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내가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노니 대개 삼일 동안에 나와 한 가지로 있으되 먹을 것이 없음이로다.』(마태오 15.32)
우리 「스승」께서는 먼저 「가르치시고」 난 다음 「빵을 주셨고 병자를 낫게 하셨다.」
통계표에 나타난 「자선사업」 실적과 「성서 보급 기관」 실적과를 곰곰히 대조해 보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경향잡지」 보급에 관한 것이지만 어떤 신부님들의 이동 때 「잡지 부수」가 그 「신부님들」과 함께 변동하는 실례도 있다.
신자
돈이 없어서 성서를 사 볼 수 없다는 핑계를 대지 말라. 「경향잡지」는 한 달에 단지 「십원」이요, 「가톨릭시보」는 한 달에 겨우 「이십원」이다. 한 달에 담배 한 갑 값도 못 되는 돈으로 영혼의 양식을 사 먹지 ㅇ낳고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건전한 신앙을 보존할 수 있을는지 극히 의심스럽다. 「천국은 강포한 자만이」 차지할 것이다.
출판협회
무계획적이고 무질서하고 분산적이고 정력 낭비적인 출판물을 통솔 지휘하는 어떤 기구가 설치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와 아울러 출판 실무자들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기관도 고려되었으면 좋겠다.
교회인쇄소
현재 교회 인쇄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성서를 보다 충실하게, 보다 싸게, 보다 아름답게 출판하기 위해서 교회 각 출판사가 실질적으로 계획대로 이용할 수 있는 인쇄소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구태여 새로운 인쇄소의 설치를 바란다기보다는 지금 있는 것일지라도 지금보다는 좀 더 실질적으로 전국 교회 출판물 인쇄소의 구실을 담당하게 되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 「매스·콤」이란 司牧에 異質的인것? / Y記
『연애, 정치가(政治街)의 두시이야기나 국가정책, 일반신문의 사회면거리 심지어는 강도, 살인기사를 보도하면 「가톨릭시보」도 읽을까?』 먼지투성이 시골길을 달리는 콩나물 시루같은 「버스」 안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새벽 다섯시에 기상해서 온종일을 다니다가 모기가 「웽웽」 대는 여관방에서 밤 12시가 될무렵 잠자리에 누워서도 이 문제를 골돌히 생각해 보기도 했다.
가톨릭시보 보급 「구걸행각」 길에서의 일이다.
설익은 풋감을 먹음은듯한 표정으로 문 밖에 세워둔채 인색한 몇 분 동안에 내의(來意)를 털어놓고 가라는 식의 대접을 받을 때 더욱 더 한국 가톨릭출판물의 서야할 땅을 더듬어 보게 된다.
출판물 보급을 성화같이 조르는 것이 과연 본당 운영을 골돌히 생각하는데 방해가 되고 교무금 징수에 차질을 주는 것이기만 할까? 아직도 독자들의 관심을 끌만큼 훌륭해지지 못한 것이 한국 가톨릭의 출판물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임이 출판물 제작자에게만 있는 것일까?
공의회는 74개의 중대문제를 의제로 당초에 상정하고도 부족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17개로 줄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 왜 「공의회의 난산(難産)」이란 논평을 받으면서까지 제2회기에서 「전례헌장」에 이어 「매스·콤에 관한 율열」(본지 제1면 동 율열 참조)을 가결 선포했을까?
독자와 돈과 유능한 편집진용만 있으면 훌륭한 출판물이 나올 수 있다는 방정식은 상식이다. 그러나 이 방정식이 쉽게 풀리지 않는데에 한국 가톨릭 출판사업의 고충이 있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 도우라』고 가르치면서 수없는 「의무」를 강조하면서 스스로는 실천하는 마당에서 인색하다. 천리길을 왔으니(사실 대구서 전국 10개 교구 중 태반이 그렇다) 『다만 열부라도 더 봐주십사』고 애원한다. 하기야 10부라면 한 달 구독료 불과 2백원이니 노고나 여비에 비길 수 없다.
『한 부라도 더 봐주시면 연 60만원의 적자를 6천분지1 감소시킵니다. 아니 「시보사」가 얼마를 적자보든 신부님 혼자서 벅찬 본당 일을 하는통에 소홀히 한 것을 이 신문이 조금이라도 보충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가히 설교조요, 강박(?)이요, 애원의 뒤범벅이다. 『물론 신부님을 신문장수 앞자비로 삼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같은 행각이 어차피 졸속(拙速)을 면치 못할 것도 사실이다. 본당간 거리가 60리서 1백50리가 되는 곳이 허다하다. 3·4개 본당 3·4백리를 하루에 돌리면 「버스」 정류소로 단거리 경주(競走)식으로 뛰기에 더 정신을 쓰기가 쉽기 때문이다.
정작 「신문구독 구걸행각기」를 쓰려니 「김삿갓」이 생각난다. 정처가 있고 행랑(行浪)할 시일이 한정된 것이 방랑성에서나 낭망적 운치에서 김삿갓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비슷한 것이 있다.
산더미같이 노적한 볏단 위의 이슬이 보름달 빛을 이고 반짝이는 시골길을 걷노라면 김삿갓이 아닐지언정 시정(詩情)에 젖을 수 있고 「구걸」의 사명도 잊는다.
혹은 허허 넓은 들녘 저 멀리 푸른 옷을 두른 고색이 창연한 붉은 벽돌집, 불란서 신부들이 지은 시골성당의 영상(映像)이 땅속으로 기여들듯한 초가집과는 대조적으로 「노스탈직」한 이국정취(異國情趣)를 일깨우고 만산(滿山)에 한솜씨로 뿌린듯 주홍빛의 가을바다는 지쳐버린 길손을 휘여감듯 빨아들일 듯하다.
9월도 하순께의 일이었다. 철늦은 비에 불어난 개울을 허술히 건너다가 그만 윗도리까지 몽땅 적시고도 화가 나지 않았다.
신부님 사랑방 앞까지 와서 「노크」를 못하고 멈추어야 할 때가 있었다. 허름한 옷차림의 구걸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럴 때는 으례 내방(來訪)의 서론이 끝날 때까지는 또 어떤 구걸군인가라고 경계를 받는다.
이 정도는 약과다. 『대구 가톨릭시보사서 온 사람입니다. 신부님을 뵈올 수 있읍니까』고 복사를 거쳐 청을 드린다. 『미사 후 식사를 하고나니 배가 앞아서 좀 쉬시겠다』고 면회 거절을 당한다.
벌써 몇 번을 겪은 끝이라 무장부터 단단히 해도 막상 당하면 속사포같은 억양된 목소리는 『아! 대구서 천리길을 왔는데 잠깐이라도 만나야겠다』고 튀어나온다. 『너희 조상들이 나를 시험해보려 하였도다.』하신 말씀을 묵상해야 할 때가 이 때다. 『나의 교황관과 목장, 그 모든 것을 바쳐 값어치 있는 교회출판물을 해야겠다』고 하신 비오 10세 교황님의 예지(예智)하고는 너무나 차이가 심하다.
(좀 미안한 말씀이나?) 신부님, 회장님들을 개몽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착각할 때마저 있다. 교회출판물의 의의를 ABC부터 뇌까리는 앵무새가 돼야하기 때문이다. 『뉴스보도를 통해서 진리와 지식을 공급하고 가톨릭 신앙생활 전반을 올바르게 인도하는데 도움이 됩니다』고.
본당 신부나 회장들의 이해 그리고 마음의 준비나 성의만 있으면 최소한 1백부 보급은 가능한 것을 지금도 확신한다.
신자가 아닌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런 말을 한다. 『가톨릭시보야 보급이나 수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지! 모든 신자들이 가정마다 읽을테니. 발행부수가 굉장하겠군. 60만 신자니 말이야』 『누가 백명의 우군(友軍)이고 누가 한 명의 용맹한 적(敵)』일까? 거의 같은 환경 사정 아래서 A와 B본당의 구독부수가 심하게 다른 곳이 있다. 『신문 내용이 참 좋아졌어요. 나는 이제 한 주일이 지루할 정도니…』라 신다. 그러나 『그런대로 읽히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고 반문하면 「20원도 큰 돈」이라고 금시 난색해한다. 바로 이웃본당 신부의 『돈 20원이 사실 보급부진의 원인이 될 수야 없지』와는 퍽 대조적이다. 『예, 공의회다, 주교님들 사목방침이다가 「시보」 아니고선 우리가 어떻게 속속들이 그리고 그렇게 빨리 알 수 있어요. 이웃 본당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교황님이 성지순례를 하고 인도방문서 빈곤구제를 이야기하고…. 그래서 나는 받기가 바쁘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속이 후련하지요』 이렇게 말한 독자들의 인사는 출장을 거듭하면서 늘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초롱불빛이 침침한 골방이지만 장작불을 뜨뜻하게 지펴줄테니 푹쉬고 가라면서 『그 아무게한테 권하면 꼭 한 부는 볼꺼야』하고 손을 꼽아 보이던 신부께는 아쉬운 정을 억제하고 갈 길이 바빠 하직을 했다.
몇 번이고 만류를 하다가 이해를 하시고 그러면 잠간만 기다리라면서 건너방엘 부리나케 갔다 나온다.
『이것 아무 것도 아니지만…』 입속말로 지꺼리며 굳이 손에 쥐어주던 것. 전기불 없는 이런 시골서는 귀할 법한 「아리랑」 두 갑과 돈 2백원이었다.
발거름은 가벼워졌다.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서서 배웅해주는 인정을 가슴에 안고 시골 밤길을 걷는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한동안을 계속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