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85) 虛實(허실) ⑧
발행일1965-02-21 [제459호, 4면]
『구두 안 닦으세요?』
나는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을 담고 그에게 말했다.
『일어나세요』
『몇 켤레는 더 닦아야겠어요』
나는 반발을 하느라고 일어나려고 안 했다.
『적어도 내 동생의 과외 선생님이 길바닥에서 구두닦이를 하고 있어서야 되겠어요?』
그는 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과외 선생 자격 없지요? 오늘부터 가지 말까요?』
나는 여전히 웃음을 담고 말했다. 귀공자같이 생긴 그에게 어디까지나 천한 여자가 되려고 했다.
『왜 사람의 속을 썩히세요. 일어나요!』
그의 말은 제법 명령적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일어났다. 일부러 구두닦이 목판을 「보스톤빽」에 넣지 않고 옆구리에 들고 그와 같이 걸었다.
『그 속에 넣으시죠. 남의 눈에 뜨이지 않아요?』
그는 속이 비어서 푹꺼진 「보스톤빽」을 자기 손으로 열더니 구두닦이 목판을 넣는다.
길 가는 시선이 힐끔힐끔 우리를 바라보았다.
『귀공자께서 구두닦이 여자와 같이 다니시는건 덜 어울릴텐데요?』
이마 너머로 그를 보았다.
『아버지는 「미스」양이 구두닦이 하는걸 가만히 보고 있던가요?』
그는 분개한 어조로 말한다.
『아버지는 병 중에 계셔요.』
『내일부터는 구두닦이 그만 두세요. 구두닦이 수입만큼 과외 월사금을 올려 드릴테니까!』
『저의 구두닦이 수입이 얼만지 아세요 대학교수 월급과 같은걸요!』
이것은 농담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대학교수의 월급에는 층하가 여럿 있다지만 보통 만원에서 조금 넘는다고 들었다.
『구두닦이 벌이가 얼마나 되겠소? 그까짓 한 켤레 닦아야 오원인걸! 스므켤레 닦아야 백원밖에 더 되오? 한 달에 삼천원은 내가 보태드리겠어요.』
『내가 닦는건 십원인걸요. 하루에 마흔 켤레는 쉽게 닦는걸요.』
『……』
승우는 가만히 계산을 해보는 눈치었다.
『그럼 한 달에 만이천원꼴이 된단 말인가요?』
『그러길래 대학교수 월급이라고 그러지 않았어요.』
『………』
『… 만이천원을 더 저에게 주실 수 있겠어요?… 그렇게는 못하실거 아니야요. 이 세상은 돈이 임금님이야요. 옛날에는 임금님의 금관이 명령을 하였지만 지금은 돈이 명령하거든요. 어떻게 하든지 나는 돈을 벌고 싶어요.』
『「미스」양은 벌써 왜 그런 소리를 하오?』
『뭐가 잘못 되었어요?』
『여자란 좋은 결혼을 하면 행복한거야요. 꼴 모양 돌보지 않고 돈 벌러 나설건 아니지요.』
『나는 좋은 결혼할 자신이 없어요.』
『「미스」양은 내가 행복하게 해드릴테야요.』
승우는 으젓하고도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말한다.
『저와 결혼하시려구요?』
나는 웃으며 물었다.
『나는 진담으로 말하는데 왜 픽픽 웃으세요?』
『나는 귀공자님의 아내 될 자격이 없어요』
『내일부터라도 구두닦이를 그만두면 되는 거야요』
『그럼 하루에 사백원씩 주시겠어요?』
나는 일부러 그의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던졌다.
『………』
그는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매우 거북스럽게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불쾌한듯한 표정이 스쳤다.
『돈 돈 한다고 천히 생각마세요. 승우씨의 아버지는 이 세상에 나오실 때부터 돈보따리를 메고 오신건 아니겠죠. 돈 돈 돈 하고 돈을 쫓아다녔기 때문에 큰 집을 짓고 부자로 사시는게 아니겠어요』
승우는 힐끔 나를 보았다.
그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공중전화를 걸어 회사 자가용을 불렀다.
『구두닦이는 버스 타고 가겠어요.』
나는 그 곳을 떠나려고 했다.
『가만히 계셔요.』
그는 나의 팔을 붙들었다. 차가 오자 나를 먼저 태우고 그도 탔다.
무얼 생각하는지 한동안 그는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병환이기 때문에 「미스」양이 돈을 벌어야 할 입장은 알겠어요. 그러나 나의 양친에게는 구두닦이한단 말은 하지 마세요. 내 마음 아시겠지요.… 구두닦이 해서 벌던 돈은 내가 대겠어요.』
…『그렇지만 나는, 그저 돈을 받구싶지가 않아요.』
속으로는 굴러 떨어진 호박이라는 생각도 들었으나, 문득 탁 차주고 싶은 심술이 치받친다.
『나의 진심을 의심하세요?』
승우는 똑바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성난 표정이 거짓으로는 보이지가 않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꿈만 같았다.
『그럼 내일부터, 구두닦이 집어 치울까봐…』
나는 미소를 담고 말했다.
승우는 우리집 근처까지 차를 몰아 바래다주고 돌아갔다.
이날 저녁 나는 여느날보다 깨끗이 손을 씻고, 세수도 알뜰히 하고는 엷은 화장을 했다.
그리고 의복도 내가 가진 것 중에 제이 좋은 곤색 「스카트」에 아끼던 「세타」를 입었다. 머리에도 기름을 바르고 빗질을 했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부자집에서 자란 딸만 같았다. 승우의 그 성났던 얼굴은 어쩐지 나의 마음 속으로 들어 앉는 힘이 있었다. 진호의 자리가 뒤로 물러앉은듯 했다. 그러나, 진호의 자리는 어딘지 내 마음 한 모퉁이를 깊이 파고들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것을 나도 느꼈다. 물같이 흘러 가는 것, 그것이 인간의 마음인가? 적어도 내 마음은 그런 것만 같다.
그 날 저녁, 과외공부를 한층 열을 들여 가르치고 태도를 얌전하게 꾸미고 있었다.
(요 간사한 거야!)
나는 내 자신에게 욕했다.
『헐 수 있나. 부자집 며느리 자리가 굴러 떨어졌는데….』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과외가 끝나자 승우가 집 앞까지 바래다 주었다.
『구두닦이 나가지 않겠죠?』
승우는 우리 집 문전에서 다짐을 한다.
『네에, 안 나가요.』
나는 얌전하게 대답을 했다.
『내일이라도 생활비를 드릴깨.』
『아니, 일 없어요.』
나는 일부러 고개를 저었다. 미리 생각해둔 대답이었다.
『왜요?』
나는 웃기만 했다.
이튿날 과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승우는 봉투를 내 손에 쥐어준다. 어제 말하던 돈이었다.
『아직 이런거 받고 싶지 않아요.』
나는 웃으며 그의 호주머니에 도로 넣어 주었다. 돈에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하나의 시위였다.
그는 자꾸 받기를 권했으나 재삼 물리쳤다.
며칠이 지난날, 과외가 끝나자 승우는 집에 남고, 그의 어머니가 나를 따라나섰다. 집이나 좀 알겠다고 하더니, 가는 길에 그는 꼬작 꼬작 내 신변에 관해서 캐묻기 시작했다.
나의 출생에 대해서 질문이 나왔을 때, 어머니가 미국 여자라고 속였다.
『아버지가 아니구?… 말 들으니, 지금 외아버지는 양부라고 하던데?』
『아냐요. 친아버지야요…』
태연히 말했으나, 어쩐지 칼끝이 내 아픈데를 찌르는건만 같았다.
감추고 싸던 상처가 다치고 보니 무척 반발심이 또 쳐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