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丁若鍾의 「주교요지」 - 1801년 순교한 정약용의 형 정 아오스딩(약종)이 순교전에 지은 한국인의 손으로 된 최초의 교회서적이다. 길고도 모진 박해 속에서 전해오다가 1864년 목판본이 간행되었다. 한글판.
② 「대고상」 1915년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은다란에서 발견 어느 농가의 서속밭에서 나왔는데 엿장수에게 넘어가 영영 자취를 감출번 한 것을 한 교우가 찾아냈다고 한다.
③ 이 마두의 「천주실의」 - 중국선교에 가장 큰 공헌을 남긴이가 마테오 릿치 신부다. 그의 저술이 30여종, 태반이 종교서적이나 동양 일대에 가장 널리 퍼진 것이 천주실의다.
④ 「한불사전」 -1880년에 발간된 서구식방법에 의한 한국 최초의 사전이다. 프랑스 선교사들의 합동편찬인 이 서적은 1863년 불타버린 안주교이 원고를 이주교가 다른 선교사와 함께 정리 일본에서 출판한 것이다. 한국교회 출판사업은 1864년에 시작되었는데 금년이 꼭 1백주년이 된다. 박해로 인하여 출판사업은 1880-1886년 간은 일본에서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한불사전은 이때에 출간된 것인바 한국인쇄사상 의의가 크다.
⑤ 부여 흥산출토 「묵주」, 작년 부여 흥산에서 발굴된 색다른 묵주. 묵주에 십자가가 여럿 있음을 알 수 있다.
⑥ 성모동상 - 작년 11월, 박해 당시 피난처이던 충남 벼우군 흥산면 담촌리에서 발견된 것. 흥산본당 김 바오로 신부가 산간지개혁을 할 때 땅 속에서 여러기지 유물을 발견한 것 중 하나. ⑦ 「승정원일기초」-궁전의 일기라고 할 수 있는 승정원 일기에는 선열들의 순교와 수난이 여실히 기록되어 있다. ⑧ ▲ 「천주경교공과」-1864년 목판본, 1839년에 순교한 범 주교의 수정에 의해 출판, 오늘까지 계속됨. 4권4백1질로 되어 있는데 1881년 「요꼬하마」에서 활자인쇄본이 나왔다. ▲「성교리문답」- 중국본을 번역하여 그대로 사용하다가 1864년에 목판본이 나왔다. 19312년 조선주교회의 결의로 지금 사용하는 것이 나을때까지 쓰였다.
【韓國敎會史硏究所藏 사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