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66) 미스 박 ①
발행일1964-09-20 [제439호, 4면]
양부는 눈섭이 이마 위로 치솟을 만큼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미친년!』
일부러 나는 같은 대사를 되풀이 했다.
『복이 굴러 들어온걸 보고 왜 욕을 하니?』
『돈이면 제일이야요?』
『그럼? 돈 이외에 더 좋은 것이 뭐냐?』
이번에는 내가 눈을 치뜨고 양부의 얼굴을 말씀히 바라보았다.
이 순간 나는 양부의 얼굴이 바람 빠진 고무 공 같이 보였다.
『…나도 그런 자리를 하나 구해 보아야 겠어요!』
이렇게 말하며 양부의 기색을 엿보았다.
『내가 앓고 누워 있어 보니, 앞서는 건 돈이더라. 뭐니뭐니 해도 돈밖에 없다. 내가 돈 푼이나 있을 때는 친구들도 오더니 요새는 찾아오는 친구도 없다.』
집안에서는 캥캥하던 양부가 풀이 탁 죽어 말한다.
『…너 요새 교회에 다니냐?』
생각 난듯이 묻는다.
『아니요, 왜 물으세요?』
『예순시 천준지 믿는것도 쓸게 빠진 것이다. 그저 믿을건 돈밖에 없다. 하느님이 있다면 이럴때 우리에게 돈주머니나 던져주고 가야 할꺼 아니냐?』
『내가 하느님이래도 아버지 한테는 안주겠어요.』
『나야 안믿었으니까 할 수 없지만 너에겐 주어야 할거 아니냐?』
『내가 드린 돈 어서 난 줄 아세요. 하느님이 주신거야요.』
『거짓말 마라… 헌 고무신짝에 누더기를 걸치고 교회에 가는 사람도 있더라!』
『아버지, 주님은 돈은 갖다 던지지 않지만 앓는 사람 병은 낫게해주세요.』
『그러니 날더러 교회에 가란 말이냐?』
『아버지는 안가실테니까 내가 대신 교회에 갈테야요.』
『그것도 허튼 소리다. 병은 병원에서 나수는 거다. 병원에 가면 돈이드니 결국 병도 돈이 나수는다.』
『그렇게 좋은 돈, 왜 못벌으셨에요?』
『…………』
양부는 이에는 대답이 없이 담배 한대를 피어 물더니, 상을 찡그리며 금방, 재떨이에 부벼서 끈다.
『담배도 싫고나…』
양부는 혼자 중얼거리며 들어눕는다.
밤에 다방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번들하게 차린 오고 가는 행인들을 바라보며
『저 사람들은 무엇을 해서 도을 벌고 있을까?』
이런 흥미를 가졌다. 다방은 주방으로 통하는 뒷문이 따로 있는데, 목이 몹시 마르길래 주방문으로 먼저 뛰어 들었다. 물을 마시려고 「카운타」가 있는 창구 앞으로 가서 물 주전자를 들엇을 때 「미스」박이 「마담」에게 얘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마담」 모르시죠! 「미스」양은 금반지를 두개나 손님한테서 얻었다우. 누가 금반지를 그냥해주겠수? 다 뭐가 있었을거야요.…』
『누가 해주었니?』
「마담」이 묻는 소리다.
『한사람은 누군지 모르겠는데, 한사람은 「마담」하고 친하신 김선생이야요…』
『…………』
창구에서 보니 「마담」의 표정은 어두웠다.
『…오늘밤 집에 다녀온다고 갔지만 사실은 딴데 갔을거야요!』
「미스」박이 입주퉁이를 실룩거리며 중얼댄다.
『애햄!』
나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손에 들었던 빈 「그라스」를 「카운타」 창구앞에 일부러 소리나게 놓았다.
『아, 물맛있다!』
「그라스」에 물 한잔을 다시 가득히 부어 들이마셨다. 그 소리에 「미스」박은 깜짝 놀라 주방안을 들여다 본다.
『어마, 「미스」양, 언제 왔어?』
「미스」박의 감아작한 얼굴이 벌겋게 굳어진다.
『요댐부터 내 얘기 하려거든, 주방안을 들여다보고해!』
나는 툭 쏘아주며 「미스」박을 흘겨보았다.
『…나, 아… 아무 햬기 안했어, 「미스」양은 얼굴이 예뻐서 선물을 자주 받는다고 그랬어!』
『내가 집에 간다고 나가서 딴데 갈거라고 그랬지? 딴데가 어디야?』
『…그건 저어 혹시 영화구경이나 갔을거라고 말한거야!』
「미스」박은 눈을 껌벅거리며 변명하기가 바빴다.
『남의 일이 어쩌니 저쩌니 걱정하지 말고 자기 얼굴의 기미나 빼는게 어때?』
찻잔을 내미는 창구에 고개를 불쑥 내밀고 나는 크게 소리쳤다. 「미스」박은 멀거니 나를 보더니 픽 웃으며 돌아선다.
『사실 그런걸 그렇다고 했는데…. 그럼 자기가 그런 선물 안받으면 될 거 아니야!』
「미스」박은 입속에서 중얼거린다.
『뭐 어째? 뭐가 사실이야?』
나는 주방에서 「홀」로 뛰어나왔다.
『아니 왜들 이래 손님 계시는데-』
「홀」안에는 사오인의 객이 복판 자리에 앉아서 나와 「미스」박의 싸움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돈이 많은 귀부인이 돼서 필요치 않을지 모르나, 나는 가난해서 남의 선물을 바라며 산다. 그러니 어쩌란 말이냐?』
『언제 내가 귀부인이랬나?』
『귀부인 아니거든 코아래 대문, 닥치고 계셔!』
『그래도 나는 그런거 안바래.』
『그럼 역시 귀부인이군 그래! 귀부인님! 나같은 천한 여자하고 같이 계시기에 고단하시겠읍니다.』
손님 좌석에서 킥킬 웃음소리가 난다. 식모감에 알맞는 얼굴을 한 「미스」박과 귀부인이란 대조가 웃으웠던 모양이었다. 「마담」도 픽 웃으며 나의 귀에 대고 말 할게 있다고 하면서 저편으로 데리고 간다.
『「미스」박 따위 상대하지 말어…』
처음에는 내편을 드는 척 하더니 일장의 훈계를 한다.
『…처녀의 생명은 순결이니깐 선물 같은걸 함부로 받다가 몸 더럽히면 어떻게 하려구 그래! 언니나 아즈마니 같은 기분으로 말하는거야!』
『난 이미 순결하지 않아요!』
『…………』
「마담」의 눈이 뚫어지라고 나를 쏘아본다.
그 눈동자는 윗사람이 어린 사람을 걱정하여 놀란 표정이 아니라, 하나의 경쟁의식에 불타는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날밤 잠자리에서 「마담」을 속인 것이 통쾌했다. 「미스」박은 옆에서 두트한 입술을 붕어같이 딱 벌이고 남자같이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전포 종이에다 귀부인이라고 크게 써서 「미스」박 앞장구 이마에다 밥풀로 붙여놓고 나도 눈을 붙였다.
나는 나의 순결을 그다지 소중히 여길 생각은 없다. 그러나 막상 그런 위험이 오면 본능적으로 피했다.
그런 경우 반드시 진호의 얼굴이 머리에 스쳤다.
며칠후 「미스」박이 다방을 그만두었다.
그간 우리는 벙어리시늉을 했는데 떠날때 그가 나에게 한 작별의 말이 묘했다.
『여기 「마담」 요새 돈이 없어서 돈있는 영감 하나 물라고 애를 써…』
『그런 걱정마시고 어서 귀공자 만나 시집이나 가시지!』
『나도 그 생각이야!』
「미스」박은 샐쭉하며 떠났다. 나중에 「마담」말을 들으니, 손님한테 걸핏하면 반지 사내라 옷 해달라 해서 꼴같이 않은 수작 하길래 내쫓았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