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敎會(한국교회)도 刷新(쇄신)해야
殉敎聖月(순교성월)에 反省(반성)해야 할 일들…
信仰生活(신앙생활) 무언지 모른 이 數多(수다)
救護物資(구호물자) 精神的(정신적) 頽敗(퇴패)를 招來(초래)
社會正義(사회정의) 가르치며 實踐(실천) 않고
이 달은 9월 우리의 훌륭하신 순교영웅들을 공경하며 그들의 위대한 신앙을 본받기에 힘쓰는 달이다.
그들의 순교사기를 읽어보면 우리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느 사적이 한구가지가 아니다. 정말 그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을 그대로 생활에 나타내셨다.
정말 신앙이란 성경 마두복음 13장 4절부터 46절의 비유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귀한 보화와 갑진 진주와 같은 것이다. 이 성경 말씀과 같이 우리가 이 보화와 진주같은 신앙을 보존하기 위하여는 우리의 가진바 모든 재산을 팔아야 한다. 이것을 우리 선조순교자들은 그대로 실천하셨다.
그들은 이 신앙을 보존하기 위하려 자기들의 가산을 버리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또 명예와 지위에 조금도 구애를 받지 않았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참다운 신앙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또한 믿는 형제간에 얼마나 진심으로 서로 사랑하고 도왔는가! 정말로 남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주의 말씀을 그대로 실현하셨다.
그렇게 진실한 신앙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주를 위하여 용맹히 고귀한 생명을 바쳐 천국의 영원한 복락을 쟁취하셨다.
이렇게 살았기 때문에 그들은 오늘 무한한 영광을 누리며 만민의 찬미를 받고 있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그당시의 그들의 환경과 조건을 오늘날 우리들의 것과 비교해본다면 그들은 너무도 불쌍했다. 외부적으로는 무서운 박해가 있었고 냇적으로는 미사참예 한번 고해성사 한번을 제데로 받을 수 없는 형편에 있었다.
또 그들 중의 태반이 아마 견진성사도 못받았을 것이며 또 성경책 한권 교리책 한권을 제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도 몇 없었을 것이다. 그저 교우들끼리 서로 교리를 배우고 가르쳐 주어 영세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은 참으로 살아있었다.
그런데 오늘 우리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보살펴보면 그당시 보다 모든 조건과 환경이 많이 좋아졌으니 신앙생활도 훨씬 나아야하겠는데 현실을 보면 오히려 못한감이 든다.
그렇다고 모든 신자가 다 신앙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훌륭한 신자도 많이 있다.
그러나 일부에는 신앙생활이 무엇이며 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전연 모르고 신앙생활을 계속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우선 교회유지(維持) 관계의 실례를 들어 말해보기로 하자. 부끄러운 일이지만 지금 많은 우리교회들이 구호물자가 없으면 교회를 유지해 나갈 수 없는 실정에 놓여있다. 왜냐하면 구호물자이 배급이 없으면 교무금을 전연 바치지 않는 신자가 많기 때문이다.
몇천명의 교우가 있는 본당에서 구호물자가 없으면 교회유지가 없으면 교회유지가 안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또 어떤 사람은 스스로 열심하고 지혜로운 신자로 자처하고 모든 교회의 애긍사업을 혼자서 독점하려고 교회내에서 추잡한 사건을 만들어 놓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원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애긍사업이란 불쌍한 사람을 도와서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힘을 주어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자는 것인데 애긍사업이 오히려 사람에게 나태와 기만성을 길러준다면 이와같은 애긍사업은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또 상당한 신앙을 가지고 있고 생활형편도 나쁘지 않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교회에 연보 한푼 안바치고 공것으로 훌륭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니 딱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들의 심중을 분석하여 보건데 대개가 『그것(구호물자) 있지 않느냐』하는 생각들이다. 참 인식부족도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다.
오늘 이와같은 현실하에서는 구호물자가 교회의 물질적인 건설을 했는지는 모르나 도리어 정신적으로는 확실히 말할 수 없는 퇴보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교회는 이 구호사업에 대항 재고해야할 중대한 기점에 서있다고 본다.
준법정신에 있어서도 역시 교회는 선도적 역할을 해야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교회라는 방대한 「빽」의 테두리 안에서 여러가지 불법행위가 자행되고 있다. 의리의 입장에서도 교회는 스스로 부끄러워할 바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실례를 들어 어떤 수도회에서는 자가용차를 두고 청빈을 지킨다는 수도자들이 대수롭지도 않는 일에 말단수도자들까지 기회만 있으면 차를 타고야 외출을 할 줄 알면서도 밤새도록 차를 몰고다니는 운전수에게는 제대로 살 수도 없는 임금을 주고도 조금도 마음에 가책을 안받는다.
교회는 정의를 가르치고 배우긴 해도 정의를 실천할 줄은 모른다.
지금 우리 한국에서는 정말 모든 사회악의 원천중에 하나가 불의한 임금지불문제이다. 그러나 교회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티끌만한 영향도 못주고 있다. 보라 우리 사업가중에 이런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 그 누가 있는가! 이러한 모든 사실을 놓고 볼 때에 오늘 한국 천주교회는 참다운 종교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 그러니 교회는 모든 오른것을 가지고 세상을 비추어 모든 잘못된 것을 바로 인도하는 것이 교회의 본연의 자세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무리 때문에 사랑에 메마르고 의리에서 빗나가 어두운 세상을 비치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세상에 끌려다니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순교선조들은 우리보다 배운 것이 적었어도 확실히 우리보다 훌륭한 그리스도의 정신을 그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다.
더 많이 배웠다는 우리가 그들 만 못한 것은 오늘의 교회가 무엇인가를 잘못 가르치고 잘못 배우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여기에는 급속도로 발전하는 물질문명과 거의 파탄상태에 있는 우리 한국 경제가 주는 영향이 클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복자들을 추모하며 다시 한번 자기를 반성할 기회가 왔다.
그러므로해서 「로마」에서는 위대한 선각자이신 선교황 요안 23세가 공의회를 개최하였고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공의회이 중개역할을 하시는 교회으뜸들의 철저한 인식과 신속하고 올바른 지도체계에 그 효과가 달려있는 것이다.
池學淳 神父(釜山 草場洞본당 主任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