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67) 미스 박 ②
발행일1964-09-27 [제440호, 4면]
그후 한 열흘 후, 늦은 오후에 「마담」이 외출하고 나가고 없는 틈에 「미스」박이 홀연 나타났다. 과히 좋은 천은 아니나 「원피스」도 새것을 입고 싸구려지만 녹색 구슬목걸이를 달고 「레지」때 보다 산듯한 몸차림이었다.
「커피」 한자을 청하며 구석 「복스」에 손님같이 앉는다. 그는 나와 다튼 과거사는 깨끗이 잊어버린듯이 명랑했다.
「커피」를 달라다준 나를 붙들어 앞에 앉히고 사방에 시선을 씰룩거리며 소근소근 귀속얘기를 한다.
『여기 「마담」은 영업이 잘 안되나 보지? 다방 팔려고 내놨다지?』
『나는 몰라!』
사실 몰랐다.
『「쿡」이 설탕을 많이 빼돌렸다면서? 그리고 요 앞에 새로 난 XX다방으로 손님이 다 쏠린다지?』
『그건 나도 알아!』
『「미스」양 어디로 가지?』
생각지도 않던 일이였기에 나는 잠시 어리둥절 했다.
『오라고 하는 다방이 있으니까 글루 가지 뭐! 「미스」박은 어떻게 그리 잘알아?』
『나야 이 다방 그만두어도 다 소식 듣고 있어, 「마담」이 얄밎게 굴더니 잘됐군!』
「미스」박은 남은 「커피」를 훌쩍 마시며 비죽이 웃었다.
『귀부인께서는 귀공자 만나셨나?』
『괘니 비꼬지 말어!』
『여기 있을 때 보다 세련돼 보이는데?』
눈화장을 짙게 해서 귀신같이 보엿지만 얼려댔다.
『이 「원피스」 품이 있지?』
「미스」박은 무릎을 쓰다듬으며 자랑삼아 말한다.
그저 전보다 조금 낫다뿐이지 굵직한 허리에 화려한 「칼라」는 오히려 천해 보였다.
『정말 품이 있는데』
속으로는 웃으면서 겉으로는 이렇게 말했다.
『이거 어디서 샀는지 가르쳐 줄까? 이런 천 파는데 서울 시내에 꼭 한군데 밖에 없어!』
「미스」박은 또 남의 눈을 피하듯이 동대문 시장, 아무데라고 자세히 일러준다.
그런 「칼라」에는 흥미가 없었으므로 표정은 듣는척 했으나 귀담아 듣지도 않았다.
『정말은 결혼하자는 남자도 있지만 맘에 들지 않아서 집어치우고 지금 돈벌이 하고 있어….』
『뭔데 그게?』
『한달에 이만원 수입이야….』
『나도 좀 소개 해줘…』
『「비어홀」이야』
『난 또 뭐라구?』
『손님들이 보통 「팁」을 백원씩 주고간다. 다섯패의 손님이면… 오백원이야 너는 얼굴이 양키여자 같으니까 손님이 많이 붙을꺼야!』
「미스」박은 「비어홀」 위치를 가르쳐 주며 출근 시간이 됐다면서 가버렷다. 처음에는 별로 구미가 땡기지 않았으나 오만원이란 금액이 차츰 유혹하는 힘이 있었다.
그후 며칠간 「마담」의 모양을 살피니, 「미스」박 말대로 다방은 팔려고 내 논것이 확실했다.
일주일 후에는 키가 후리한 딴 「마담」의 손에 넘어갔다. 새 「마담」은 나를 그저 있어달라고 말했으나, 나는 「미스」박이 있는 「비어홀」을 찾아갔다.
「미스」박이 주인에게 소개를 하니, 돼지상인 뚱뚱한 주인은 아래위로 나를 훑어 보더니 내일부터 나오라고 한다.
『수입이 이만원 된다길래 왓는데 정말인가요?』
주인에게 물었다.
『자기 솜씨에 달렸어, 「미스」양 같으면 문제 없을꺼야.』
이튿날 네시쯤 그 「비어홀」에 나갔다.
푸른 「유니폼」을 내주는데, 키가 작은 여자가 입던 것인양 내 몸에는 좀 작았다. 옷에는 이름대신 「남버」표가 달렸는데 25번이었다. 나에게는 바른쪽 구석에 네 사람씩 앉을 수 있는 두 「복스」가 할당되었다.
6시가 지나니, 비었던 「복스」들은 손님들이 거의 차기 시작했다. 나의 「복스」 두개에도 손님이 들어앉았다.
「서비스걸」들이 하는 것을 미리 눈여겨 보아두었다가 그대로 했다. 손님 앞에서서 잔이 비면 맥주를 따뤄주고 담배를 꺼내면 성냥불을 켜주고 더운듯하면 새 물수거을 가라주었다. 그리고 손님이 심심치 않게 대화의 상대도 되어주었다.
손님은 앉아있고 나는 서있는 것이 처음에는 쑥스러웠으나, 며칠 지나니 예사가 되었다. 서있는 것은 다방에서 훈련이 되어 아뭏지도 않았다.
보름후 수입을 계산해 보니 8천원 가량이 되었다. 「톱」은 3번인데 만이천원 가량 되었다. 그간 나에게도 단골 손님이 생겨 한달째에 가서는 3번과 맞서게 되었다. 가련하게도 「미스」박의 한달수입은 우리의 혈흘치 수입밖에 되징 ㅏㄶ았다.
그대신 저녁에 돌아갈때면 합승값을 가끔 내주었다.
양부에게는 구태여 말하지 않았으니, 그는 그저 다방에 나가는줄만 알고 있었다.
『「레지」월급이 올랐니?』
비교적 자주 돈을 갖다 주는 것을 보고 양부는 묻는다.
『네에……』
나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하루는 공교롭게도 아버지의 친구 뚱보사장이 몇사람의 친구와 함께 바로 내가 맡은 「복스」로 와서 자리를 잡았다. 숨지 않고 그의 앞으로 나갔다. 그는 깜짝 놀란다. 그들은 무슨 용담이 있는지 나의 존재는 거의 무시하고 얘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미구에 아버지의 귀에 들어갈 것을 나는 각오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 아버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복순이에게 물었더니 뚱보사장이 다녀갔는데 「비어홀」 얘기를 하더라는 것이다. 양부는 그만두게할 용기가 없는 모양이었다.
「비어홀」에는 사립대학에 적을 둔 학생도 몇있는데 3번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하루는 「비어홀」로 출근을 하니까 「비어홀」이 있는 골목 어구에서 3번이 웬학생 「타잎」의 청년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심코 그 옆을 지나려다가 흘끗 보니 진호였다. 3번과 진호는 같은 대학이며 진호는 나를 보러온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여기 있을걸 아셨어요?』
『다방에 가니 그만두었다고 하길래 집을 찾아갔었지!』
『누가 가르쳐주어요?』
『식모 처녀가!』
3번은 슬그머니 피해서 들어가고 진호와 둘이서 남았다.
『나는 「미스」양이 걱정이야.』
진호는 무겁게 입을 연다.
『무엇이 걱정이란 말이야요?』
지호의 표정에 무언지 호감을 느끼며 가볍게 응했다.
『유혹이 많은 곳으로 차츰 미끌어져 들어가는 건만 같군!』
『「아르바이트」하는 여대생도 있는걸요』
『딴 사람에 대해서는 걱정할 사람이 따로 있을테니, 나는 상관안해!…』
『나도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요?』
『아버지는 아시면서 왜 가만이 계셔?』
진호는 분개한 표정을 한다.
『아버지는 병중이라 기력이 없으세요.』
『말 한마디 할 기력이 없단 말야?』
지호의 말이 구수한 한편, 나는 또 반발하고 싶었다.
『그럼 병든 아버지와 내가 고스란히 마주보고 앉아서 굶어죽으란 말이야요?』
『…좀 더 티없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할 수도 있지 않아?』
『여기서는 한달 수입이 2만원은 되어요. 고교도 못나온 우리에게 누가 그만한 월급을 주겠에요. 그만해주세요!』
진호는 무거운 표정을 하고 서 있을뿐이다. 양부의 침묵에 비해 진호의 찡그린 얼굴에 나를 위하는 한가닥의 진실을 보는듯 했다.
『내가 허룩하게 보이지만, 속은 단단하니 걱정 마세요!』
나는 일찌기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말을 진호에게 나직히 말하며 웃었다.
그날 열한시에 필하고 집에 가려고 옷을 갈아 입고 나오니 지가 촉촉히 내리고 있었다.
머리에 손수건을 쓰고 골목을 다름질로 나오다보니, 어구에 진호가 「비닐」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
『어서 들어와요 비 맞겠소!』
진호는 이렇게 말하며 날름 내 머리위에 우산을 받쳐준다. 그는 일부러 마중나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