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68) 生活(생활)과 意志(의지) ①
발행일1964-10-11 [제442호, 4면]
9월 중순으로 접어드니 갑자기 날씨는 서늘해지고 「비어 홀」도 쓸쓸해지기 시작했다.
「홀」사방에 비치했던 커다란 선풍기와 중앙에 축산(築山)을 해놓고 분수를 뿜게 하여 시원한 분위기를 돋구던 이곳 자랑거리도 을씨년스런 존재로 화했다.
손님들은 맥주보다 따끈한 찌개와 정종을 찾기 시작했다. 날씨가 가을과 여름의 과도기였으므로 손님의 발길은 바싹 줄어들었다.
10월로 접어드니 약간 손님이 불었다. 뚱보주인은 11월경에 「빠」로 전신할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미스」양, 「빠」되면 너 어떻게 허지?』
「미스」박이 하루는 묻는다.
『몰라, 그때 돼 보아야 알지-』
대충 그만둘 생각으로 있었으나 나의 수입에 매달려있는 병든 양부를 생각하고 애매하게 대답을 했다.
『주인이 맘이 좋으니, 우리 그대로 있자!』
「미스」박은 큰 비밀이나 속삭이듯이 내귀에 입을 대고 말한다.
다른 아이들의 동향은 대개는 그만둘 모양인데 그중 육칠명은 「미스」박과 같이 주저앉을 것이라 한다.
10월 하순이 되자 드디어 「비오홀」은 문을 닫고 「빠」로 전환할 내부수리로 들어갔다.
주인은 폐문을 선언하던 전날 살짝 나를 불러 계속해서 「빠」에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나만을 특별대우를 해주겠다고도 했다. 말을 들으니 「빠 걸」의 기본급료라는 건 보잘것 없는 것인데 두툼하게 주겠다는 말이었다. 「빠 걸」의 수입은 한달에 4·5만원까지도 오를 수 있다고 하며 「미스」박도 뚱보주인과 함께 나를 끈다.
나는 이세상에 태어나서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 내손으로 4·5만원이란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 매력같은 것을 느꼈다.
내부수리는 약 열흘간이 걸렷는데 그간 취직자리를 더듬어 보았으나 적당한데가 없었다. 다방은 오라는데가 있었으나, 먹고 2·3천원 받는걸로는 신에 안찬다. 물가는 오르고 내 용돈쓰기에도 빠듯한 돈으로 아버지의 약값과 생활비를 댈 깊이 없다 아버지와 틀려서 집을 나간 오빠는 부산서 자기 멋대로 결혼을 하여 서울과는 전혀 인연이 끊어져 있었다.
『나순아 나는 너 하나만을 믿는다. 앓고 있는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가지는 않겠지?…』
며칠전에 양부는 애원하는 얼굴로 그간 자기가 나에게 얼마나 애정으로써 대했는가를 라디오 「드라마」의 대삿조로 장황히 말한 적이 있다.
이미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은 말이었으나 이때만은 양부가 가엾어 보였다. 그렇다고 나는 양부에 대한 동정심으로 그의 옆을 떠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늘 나를 주어다 키운데 대해서, 너무도 그 은혜를 나에게 팔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가 은혜를 팔 수 있는 위치에 선 것에 승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나의 이 승리감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내가 쓰고 남은 돈은 양부의 약값을 댔다.
신장한 「빠」의 이름은 「파랑불」이었다.
「소 스톺」의 신호와 같은 연상이 들어 가보자 하는 마음에 개업 다음날 「빠」에 나갔다.
「미스」박은 내손을 잡아 끌며 뚱보 주인한테로 간다. 주인도 매우 기뻐한다. 개업초가 되어 손님은 별로 없었다. 「미스」박은 팔리지를 않았으나 나는 두번이나 손님에게 불리었다. 한군데서 2백원씩 「팁」을 주고 갔으니 4백원, 거기다 본래 술값에 끼어 「서비스」료가 백 이십원이 붙는 것이였으니 그것이 이백사십원 도합 육백 사십원의 수입이었다. 그 다음날은 천원 수입이 거뜬히 올랐다. 주인이 비밀로 고정급을 오천원 주겠다고 하였으니, 한달수입이 이럭저럭 사오만원 될 것이 내다보였다.
「미스」박은 그간 겨우 손님좌석에 한번 불리었는데 한푼도 「팁」을 받지 못했다.
『빌어먹을 자식들, 실컷 부려 먹고는 「팁」도 안주고 달아났어!』
「미스」박은 이렇게 말하며 침을 뱉았다. 사흘되던날 밤, 바람과 함께 찬비가 줄기차게 내렸다. 비때문에 「복스」의 절반은 비었고, 나도 겨우 두 좌석에 불리었을 뿐이었다.
갈적에 「비닐」우산을 사려고 문깐에서 머뭇거리고 있을때, 언젠가 모양, 진호가 또 우산을 들고 나타낫다.
진호는 아무말 않고 내앞으로 오더니 우산을 받쳐주며 걷는다.
『「아르바이트」하고 오는 길이야요?』
『음.』
『이맘때 파하나요?』
『아홉시에 일은 끝났어?』
『그럼 그동안 밖에서 기다리셨나요?』
『음.』
진호는 웃지도 않고 말한다. 비바람을 쏘이고, 오래 서 있던 탓인지 어깨를 움추리며 이따금 콧물을 닦는다.
『감기드셨나봐?』
『며칠전에 든 감기야?』
진호와 함께 합승을 타려고 정류장에서 기다렸으나, 통금시간을 앞둔 무렵이라, 승객이 폭주하여, 좀처럼 타기가 어려웠다.
「택시」도 붙들기가 어려워, 만원 「버스」에 부비고 올라탔다.
「버스」 안에서 진호는 일체 말이 없다가 「버스」에서 내려 우리집까지 바라다 주는 도중에 그의 입이 열린다.
『내일부터는 「파랑불」에 나가지 않겠다고 약속해요!』
예기했던 말이었으므로 나는 놀라지는 않았다.
『내가 원하는 자리는 이 사회에서 아무도 나에게 주려고 하지 않았으니 어떻게 해요! 「파랑불」이 나쁜지는 몰라도, 환영하는 곳은 그곳 뿐인걸요.』
『악의 손은 늘 가까운 곳에서 부르고 선의 손길은 그너머에 있는거야!』
『한사람의 노인이 먹지 못하고 약도 못쓰고 죽어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그럼 선인가요?』
『아버지의 얘긴가?』
『물론이죠!』
『내가 「미스」양의 취직자리를 부탁해 놨으니, 십중팔구 될꺼야, 그러니 내일부터 나가지 말어!』
진호의 말은 명령적이었다. 다는 명령적인 말을 본능으로 싫어했으나, 어쩐지 이때만은 진호의 말에 수그러졌다.
『어떤 곳이야요?』
『내일 알꺼야…』
나중에 안 일인데 진호는 내가 「비어 홀」에 나갈적부터 은근히 선배들을 찾아 다니며 나의 취직자리를 물색하고 있었다. 지금 그가 말한데는 그의 대학선배인 S라는 사람이 모 관서의 행정주사로 있는데 「타이피스트」로 거의 결정이 되는 단계에 이르고 있었다. 이력서도 자기가 「타이프」를 찍어 보름 전에 제출해 두었던 것이었다.
이튿날 오전에 S씨를 다방에서 만나 소개를 받았다.
S씨의 말을 들어보니 후보자가 많았는데 너무도 열심인 진호의 청이라 애를썼던 모양이었다.
『결제서류를 오늘 돌렸으니 내일은 될꺼요!』
S씨는 자신있게 말한다.
나는 진호를 꾹찌르며 점심이나 대접하자고 귓뜀을 했다.
진호가 그뜻을 전하니 S씨는 바쁜일이 있다고 하며 자리를 일어섰다.
숭글숭글하면서 어딘지 깨끗해보이는 사람이었다.
이튿날부터 나는 근무 명령을 받았다. 월급은 공무원령에 의하여 삼천몇백원이라고 하였다. 「빠」 수입의 나흘치 밖에 안되었으나 어쩐지 심신이 떳떳하고 나의 앞길에 희망이 엿보이는 새출발점에 선듯했다. 퇴근무렵에는 진호가 나타나서 그날 하루일을 물으며 둘이서 다방이나 빵집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진호는 그길로 「아르바이트」로 가고 나는 찌감치 집으로 돌아왔다.
밤중에 그가 집으로 돌아갈 적에는 꼭꼭 우리집에 들렀다. 그는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 소리를 듣고 나는 밖으로 나갔다.
양부는 내가 관청에 취직했단 말을 듣고 처음에는 좋아하더니 한달월급의 액수를 알자 그 표정은 시무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