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70) 生活(생활)과 意志(의지) ③
발행일1964-10-25 [제444호, 4면]
그날 직처을 쫓겨난 나는 한동안 정처없이 거리를 헤메었다. 진호가 있는 병원으로 가볼까 하다가 어느 극장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이류 내지 삼류관이라 요금이 싸길래 표를 사서 들어갔다. 영화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태양 아래에서 들어선 영화관 내부는 검정일색으로 시야를 분가할 수 가 없다.
안내 「걸」도 없어서 봉사가 더듬듯이 아무데고 모서리의 빈의자에 앉았다.
영화를 보는 동안이나마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영화는 한시간 쯤 후에 끝나고 일부 손님이 일어서고 새손님들이 들어앉는다.
주일도 아닌데 대낮에 영화관에 앉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나는 유심히 바라보았다. 개중에는 일요일을 못놀고 공교롭게 오늘이 휴일인 직장을 가진 사람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 대부분은 할일이 없고 직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그 잉여 정력을 영화관 어둠 속에서 소모시키고 있는건만 같았다. 혹은 무거운 시름을 영화관 속에 가지고 들어와서 잠시나마 잊고 싶은 위치의 사람들로 보인다. 또 어떻게 보면 그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감상하고 있고, 나만이 시름을 안고 들어선 인간 같이도 느껴진다.
나는 다시 불이 꺼지기만 기다렸다. 못보았던 전반이 다 나왔건만, 일어서지 않고, 이미 본 후반을 다시 보고는 밖으로 나왔다. 짧은 가을 해도 아직 저물지를 않고, 한길의 햇빛은 눈이 부시었다. 일부러 시간을 지우기 위해서 천천히 병원까지 걸었다.
옆으로 누워서 책을 보고 있던 진호는 빠른 시간에 나타난 나를 반가와 하는 한편, 어쩐 일이냐고 묻는다. 아침에 일어난 일을 그대로 전했다.
진호는 끝까지 듣더니 아무말 않고 잠시 생각는 얼굴이었다.
『도장은 안찍었죠?』
진호가 묻는다.
『잘못도 없는데 사직을 강요하는 법이 어디 잇어요. 새로운 국장이란 사람 보았는데 임금님 같이 놀아나던군요. 복도를 활개치듯 다니며 과장에게도 호령, 수위에게도 소리를 지르고 직원들 보고도 악을 쓰고 야단이야요.』
『국장이 자기 사람을 넣기 위해서 탈없는 사람을 밀어낸다는 건 좀 심한데? 「티오」를 느리도록 노력해 볼일이지!』
진호는 혼잣말 비슷이 중얼거린다.
미온적인 진호의 비판에 나는 불만을 느꼈다.
『국장이 갈릴적마다 제멋대로 사람을 갈아 넣으면 붙어있을 사람이 없지 않아요. 같이 있는 여직원들도 불안스럽다고 소근대던데요.』
『국장이 책임자니 헐수 없지. 「미스」양이 운이 나빴어. 그런 국장이 들어왓다는 것이 재수가 없었어!』
나는 속이 끓어 오르는 마음으로 진호를 다시 바라보았다.
『사람을 그만두게 할 때는 그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꺼 아냐요? 국장이면 뭐야요. 자기도 나라의 공부원 아냐요? 직위가 얕은 사람도 공무원은 일반인데, 자기 아는 사람을 넣자고 잘못도 없는 사람을 내쫓는게 잘하는 짓인가요?』
『…S씨를 만나서 자세한 얘기를 알아보겠어…』
『S씨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분은 퍽 미안해 하는 얼굴을 하였어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 진호는 다짐하듯이 말한다.
『그곳을 그만두게 되더라도 또다시 「빠」같은데는 나가지 않겠다고 약속해요?』
『「빽」없는 나같은 인간에게 누가 취직을 시켜주겠어요. 하늘의 별따기로 취직이 겨우 되고 보니, 한달만에 「빽」있는 딴 사람이 밀고 들어오니 우리같은건 갈데가 없지 않아요. 나는 「비어홀」이니 「빠」니 하는 것이 이세상에 왜있나 했더니, 남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갈데없는 여자들을 위해서 있나봐요.』
『「미스」양! 마음을 허트리면 안돼!』
『이런일을 당하고 마음이 고을사람이 어디 있어요. 바보 아닌 이상!』
마침 진호의 어머니가 왔기에 우리의 얘기는 중단이 되고 어머니는 오래있을 기색이므로 병원을 나섰다.
집에 돌아와서 양부에게는 아무말도 안했다. 이튿날 아침 여느때보다 늦게 집을 나서니 양부가 늦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적당히 대답을 하고 밖에 나왔으나 갈데가 없었다.
영화관에 들어가기도 아직 시간이 일렀고, 음악감상실에 가서 두어시간 시간을 보냈다. 감상실을 나오면서 심심한 김에 간판을 바라보았다. 「사색의 전당 · 명곡의 세계」라고 파란 목각 글자가 눈에 뜨인다.
「갈데없는 사람의 대합실」이라고나 써 붙이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낡은 「필름」을 싼 요금으로 상영하는 S관으로 들어갔다. 다섯시 지나, 퇴근 시간 무렵에 그곳을 나섰다.
병원으로 가니 진호는 며칠전 모양 벽에 걸린 성모님 「카드」를 향하여 손에 묵주를 끼고 침대위에서 기구를 하고 있었다.
일부러 「또어」를 절컥 닫고 들어섰다.
「백」보다 무력한 기구에 대해서 별로 존엄한 기분을 낼 수가 없었다.
진호는 문소리에는 돌아보지도 않고, 꽤 오랫동안 기구를 계속하다가 이쪽을 보았다.
이미 시들은 잉크병의 꽃을 멀거니 바라보며 나는 옆이 낡은 의자에 앉아있었다.
『「미스」양!』
진호는 밝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실망할건 없어. 오늘 내가 S씨를 찾아가 보았는데….』
『밖에 나가셨어요?』
『지방이를 짚고 살살 걸었어!』
진호의 얼굴에는 무엇인가 희망에 차있었다.
『S씨는 지금 「미스」양이 도장을 안찍어, 서류의 정리가 안되어 입장이 퍽 난처하다니, 내일이라도 가서 도장을 찍어요. 오다가 「아르바이트」하는 공장에 들렀더랬어, 「미스」양의 취직이 그곳에 됐어, 의료기구를 만들고 일부 약품도 만드는 공장인데, 「미스」양은 물건을 싸는 포장일을 하게 되었어?』
『그럼 직공이군요…』
『나도 직공으로 일하고 있지 않아…』
『거기도 국장인지 무슨장인지가 갈리면 사표내라는거 아냐요?』
『그렇지 않아! 나도 오늘 저녁에 퇴원을 하고, 내일부터는 학교도 나가고 공장에도 나갈 생각이야!』
『치료는 끝났나요?』
『병원에서는 한 열흘 더 입원하는 것이 조다고 하지만, 내 형편에 그렇게 할 수 있어?』
『치료비는 공장에서 내주는거 아냐요?』
『그건 그렇지만, 오래 누워있으면 공부도 미찌고 경제면에서도 손해니깐…』
이렇게 말하며 진호는 매우 밝은 표정이란 묘했다.
어두운 내 마음에 그 빛갈이 반사한다.
나도 어느듯 잊어버렸던 미소를 내 입가에 느꼈다.
『지금 나는 「미스」양의 취직이 뜻밖에 빨리 된 것을 주님께 감사했어…』
『진호씨의 덕분이지 주님의 덕분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아요?』
『주님의 은혜지요!』
『좋은 일만은 주님의 덕분인가요?』
『물론이죠』
『그럼, 이유없이 직장을 쫓아낸 사람의 책임이지 「미스」양의 잘못은 아니야요 「미스」양은 잘못이 없었으니 밝은 얼굴을 해요?』
진호는 이렇게 말하며 퇴원할 준비를 했다. 나는 다리가 부자유한 그를 도와 짐을 꾸렸다. 이때 지금까지 인생의 한구석에 미려사는 것 같이 보이던 약한 진호가 무언지 그 약한 속에 질긴 것을 가진 사람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