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회는 지난 10월 중순경에 작은 그러나 아주 간과할 수는 없는 풍랑을 겪었다. 외부세계에는 하나의 위기같이 와전도 되었던 것인데 그 어느것이었던지 소위 진보적인 10수명의 추기경들이 손빨리 또한 단호한 태도를 취하게 됨으로써 이제는 오해도 해소되고 어떤 의미의 풍랑도 진정된 셈이다.
문제의 발단은 「그리스도교일치국」에서 접수한 공의회 사무총장 팰리치 대주교가 쓴 두 통의 서한이었는데 이 서한들이 말하는 것은 공의회 토론시에도 진보적인 경향의 다수교부들과 보수적인 경향이 소수 교부들 사이에 적지않은 의견대립이 있었던 「대유태인」 및 「종교자유」에 관한 두 선언문 내용의 수정을 요청한 것이었다.
「유태인」에 관한 것은 「교회일치의안」에 부록으로 두기보다 「교회의안」에 삽입시켜 선언문 형식을 취하지 않고 짧게 언급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 그 하나였고 다른 하나의 편지는 「종교자유」 선언문 내용 수정을 위해 「일치국」 및 「신학위원회」 쌍방에서 선출한 4명 위원회를 구성할 것과 그 4명으로서 도밍고 회원인 브라운 추기경, 동회 총장 팰난데즈 신부, 불란서 「불즈」의 러페브르 추기경 및 교황의 신학고문인 「밀라노」신학교 교장 꼴롬보 주교를 추천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중 러페브르 추기경을 제외한 3명은 보수파의 중진들로 알려져있다. 이제 문제가 해결된 오늘에 와서는 이같은 제의가 그 자체로서는 일리가 없는 바 아니라고 시인하고 있다.
특히 유태인에 관한 것은 유태민족이 구약의 선민일때 그들에 대한 말을 교회일치의안에서 하는 것보다는 교회의안에서 함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외에 유태인 선언문 발표를 맹렬히 반대하는 「아랍」 계통국가들의 지나친 정치적인 오해 및 그것에서 유발될 수 있는 중동각국의 교회사정의 분리 등을 방지할 수 있다는데 적지않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당시 이 소식이 전파되었을 때에는 이것은 보수적인 교부들이 공의회 석상에서는 지지를 받지못한 그들 주장을 다른 길로써 관철시키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자아냈으며 무엇보다도 그 의도여하를 떠나 공의회 회의 절차를 무시하였다는데 진보적인 교부들은 매우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중에서도 독일 출신 프링스 추기경은 즉시(10월 11일) 동지적인 10수명의 추기경들을 그의 「로마」 숙소로 초빙하여 긴급회의를 가짐과 동시 교황 바오로 6세께 친히 상소함으로써 이에 대한 엄중한 항의를 제출하였다.
이 상소문에 서명한 이들은 프링스 추기경 외에 되프너(독일) 쾌니히(오지리) 리에날(불란서) 러페브르(불란서) 알프링(화란) 럴까로(이태리) 마이여(미국) 릿터(미국) 헨리꽤즈(치리 쉬넨스(벨기) 추기경들이다.
쉬넨스 추기경은 주말에 「브룻셀」로 돌아가 있었는데 이 소식을 받고 급거 「로마」로 다시 돌아왔다.
이들은 동시에 이 상소문을 통하여 이미 통과된 주교 공동성에 관한 한 조항, 즉 『주교들이 공동체로서 교황과의 일치안에 최상의 온전한 사목권을 가진다』는 구절 중에서 「온전한」이라는 말한마디를 「주교직 및 교구행정관례 공의회위원회」 위원장인 마렐라 추기경이 삭제할 뜻을 가졌다는 풍설에 대하여도 함께 항의 하였으며 또한 「교회와 현대세계」에 대한 제13의안을 신중히 다루기 위하여 공의회 제4회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진언을 겸하여 하였다.
공의회 일부교부들 특히 보수계 주교들은 공의회를 되도록이면 제3회기로써 끝마치기 위하여 회의진행을 서둘고 있는데 다수 교부들은 이에반하여 제13의안이 가진 중대성에 비추어 이를 충분히 검토해야 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제4회기는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 추기경들이 교황과 회담한 결과에 대하여는 공식발표는 없으나 확실한 소식에 의하면 교황은 이상 소문을 전달한 추기경들을 만날때까지 그와같은 사태진전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며 교황은 교부들의 중의를 따라 행할 것이라고 확약함과 동시 회의 절차를 무시한 그와같은 처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엄중 시달하였다. (RNS · NC=편집실 綜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