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72) 生活(생활)과 意志(의지) ⑤
발행일1964-11-08 [제446호, 4면]
양부는 그에게 나를 인사시켰다.
『강필주입니다.』
사나이는 좀 쉰 목소리로 자기 소개를 한다.
『차 드려라!』
양부는 넉넉한 집안의 어른 같은 표정으로 말한다. 나는 일어서서 밖으로 나왔다.
근자의 우리집은 「커피」나 홍차가 있을 형편이 아니었으나 양부는 그 없는 돈에 「커피」만은 떨어뜨리지를 않았다. 그는 자기의 궁한 것을 남에게 감추려는 허세(虛勢)만은 늘 지니고 있었다.
물을 끓여 「커피」를 타면서 속으로 양부를 비웃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손님의 정체(正體)가 무엇인가 궁금하기도 했다. 「커피」는 전에도 윗질에 속하는 손님에게만 내는 버릇이 양부에게 있다.
(나의 결혼대상자가 아닐까?)
이런 예감이 머리를 스친다. 나는 혼자 입을 비죽 내밀었다. 밝은 이마와 흰자위 눈이 싫었다.
「커피」잔을 들여놓고 나오려고 하니까,
『왜 두잔만 가지고 왔니? 네 것도 가지고 와서 앉아 있거라…』
한다. 말은 부드러웠으나 그 눈은 명령적이었다.
『같이 드십시다…』
강이란 사나이도 웃으며 말한다. 입은 웃는데, 그 눈은 웃지않는 얼굴이었다. 일단 밖으로 나와서 또한 잔의 「커피」를 넣어 방으로 들어섰다.
사나이가 누구인가 하는 호기심이 나를 끌었다.
양부와 강씨의 오고가는 얘기는 무슨 사연인지 잘 몰랐으니, 강씨가 무슨 건축자재를 만드는 공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게되었다. 사나이는 말마디 마다 힐긋힐긋 나를 바라보았다.
얘기가 진행됨에 따라 건축자재라는 것은 「타일」인 것도 알게 되었다.
품질이 일산보다 우수하며 건축재료상회에서 주문이 쇠도하여 물건이 딸리며, 앞으로 공장시설을 크게 확충하여 대량생신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점을, 사나이는 예의 쉰목소리로 자신있게 말하고 있었다.
『현재 직공이 삼십명가량이 있는데 앞으로 오백명의 직공으로 일할 큰 시설을 곧 가질 준비가 거반 다 되어 있읍니다. 저는 지금가지 자기가 한번 목적하고 계획세운 일이 그대로 안된 적이라고는 없읍니다. 관상을 보았더니 수년안으로 천명의 직공이 일하는 큰 공장의 주인이 되어 돈더미위에 올라 앉겠다고 하더군요. 관상 무시 못합니다 안그러세요? 핫핫핫…』
사나이는 이 말을 하는 동안에 네번이나 흰자위 눈을 나에게로 던졌다.
『암, 무시 못하고 말구요. 내가 수년전에 점을 쳤더니 상처하고 혼자가 되겠다고 하지않아? 그후 사업은 잘 안될거라고 하더니 과연 하는 일마다 재미를 못보았지 뭐야. 그런데 일전에 용헌 사주쟁이가 있다길래 가서 보았더니 내년에는 귀인(貴人)을 만나 재물복이 있으리라고 하더군!
양부는 이렇게 말하며 주름진 눈까풀에 희망을 담고 웃는다.
『제가 장차 양선생을 우리 회사 부사장으로 모시겠읍니다. 남자가 그까짓 사업처 하나로 만족할 수야 있읍니까? 저는 또 딴 사업을 시작하고 「타일」공장은 아주 양선생에게 맡겨도 좋습니다. 저는 일구이언(一口二言)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한마디 한 것은 무엇이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저의 특색입니다!』
사나이는 이때도 그 시선이 두번이나 내 얼굴 위를 오락가락했다.
나는 은근히 사나이의 옷차림을 하나 하나 뜯어 보았다. 「와이샤쓰」는 눈같이 희고 「넥타이」는 화려했다.
「카우스」 단추는 금인지 도금인지 몰라도 금빛이 났다. 양복도 새로 해 입은 양 구김살 없이 반듯했다. 양말은 「넥타이」 모양 붉은 색이 깃들여 좀 야하게 보였으나 역시 고급품인듯 했다. 그러나 그 잘 입은 옷차림이 그의 두리번 거리는 눈동자와 함께 어딘지 안정감이 없어 보였다.
이때 문밖에서 자동차 「크락숀」 소리가 울렸다.
『차가 왔으니 가 보아야겠읍니다.』
사나이는 일어섰다.
『회사 찬가요?』
양부는 물었다.
『네에.』
나도 양부와 함께 문밖까지 따라 나왔다. 차가 데리러 온 걸 보니 이때마는 나도 그가 조금 높으게 보였다.
차는 자 「넘버」가 달린 물쑥한 찦차였다.
그가 떠난 뒤, 집에 들어 오기가 바쁘게 양부는 자기 앞에 나를 끌어 앉힌다.
『어떠냐, 그사람?』
양부는 좀처럼 집안에서 볼 수 없는 미소를 담고 멀거니 바라본다.
『뭐가요?』
나는 시침을 떼고 반문했다.
『너도 봤지? 그 자가용 그리고 우리 얘기도 옆에서 들었지?』
『아버지를 부사장 시켜준다니, 고마운 사람이군요? 근데 무엇땜에 그 사람이 아버지 한테 그처럼 선심을 쓰지요?』
『공장을 ㄴ럽히는데 돈이 조금 부족하다는 거다. 그래서 내가 그 돈을 대기로 했다.』
『아버지가 웬 돈이 있어요?』
『이집 전셋돈 빼면 팔만원 나오지 않느냐? 변두리에 가면 한 이만원 주고 한칸방을 얻을 수 있다 하니 그렇게 할 생각이다.』
『육만원을 투자한단 말인가요?』
『그래!』
『자가용까지 가진 사람이 그까짓 돈 육만원이 없나요?』
『말들으니 재산은 모두 7·8백만원 된다더라, 사업이란 돈이 깔리기 쉬운거라, 단돈 만원이 아쉬울 때도 있는 법이다. 너는 그거 모른다! 그리고 내 생각은 말이다…』
양부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눈시울에 담고 무릎을 닦아낸다.
『그 사람이 아직 총각이다. 너하고 혼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럼 너도 그까짓 직장생활 안해도 된다. 자가용 타고 백화점이나 다니는 호강스런 몸이 된단 말이다!』
자가용과 백화점은 아닌게 아니라 지남철과 같이 끄는 힘이 없지 않아 있다.
이때 진호의 까만눈동자가 머리에 크게 스친다.
(진호에게 자가용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 않으면 강이란 사나이가 진호와 같은 눈동자를 왜 갖지 못했는가가 한이된다.
『아직 강의 뜻은 들어보지 않았으나 내가 가만히 눈치를 보니 강의 눈이 너한테로 많이 쏠리던구나? 내일 저녁 일곱시에 우리집에 또 오기로 했으니 시간 안에 일찌기 돌아오너라!』
『………』
『응?』
양부는 대답없는 나에게 다짐을 준다.
『네에…』
나는 소리 안나게 혀만 움직였다.
그날밤 나는 잠자리에서 방황하는 내 마음을 스스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방 창구에서 본 세상, 「비어홀」 창구에서 본 세상, 그리고 관청 의료기구 제조 회사의 문턱에서 본 세상은 모두 첫째 돈이었다. 어디를 가나 돈의 힘이 제일 강했다.
첫인상이 싫던 강이란 사람도 사장이고 찦차가 있다니까 그의 가치가 별안간 높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튿날 저녁 여섯시에 종로 어느 다방에서 진호와 만날 약속이 되어있었다. 아침에 여느때 모양 출근 하듯이 집을 나섰다. 여섯시까지는 할일 없는 시간이었다. 또 싸구려 영화환게 들어가서 다섯시까지 같은걸 세번이나 보고 밖으로 나왔다. 다방에 가서 앉아있으니 여섯시 정각에 진호가 나타났다.
7시까지 집에 돌아가려면 삼십분 이내에 일어나야 한다. 어언간 이십분이 흘렀다. 이때까지도 나는 나의 이사를 결정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