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獨逸 RNS】 독일사회민주당(SPD)은 수년 전부터 가톨릭교회와의 관계개선을 시도해왔다. 그러나 거듭한 접근시도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동 사회당을 오는 가을 총선거에 있어 지지할 것인지는 대단히 의문시 된다. 교회지도자들과 단체들은 독일사회민주당이 그 전통적 사회주의 노선을 많이 수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맑스」주의를 완전히 탈피하였다고 보지 않으며 제반정책 특히 국내 교육문화정책에 있어 사회민주당이 집권하고 있는 주(州) 혹은 시(市)에 있어서의 투쟁의 시련을 잊을 수가 없다.
최근에 와서 비로소 알려진 바에 의하면 독일주교단의 의장인 「쾌른」의 프링스 추기경은 사회민주당 대표들을 접견해달라는 동 당 지도자들의 요청을 거부했다한다. 이같은 요청은 사회민주당의 5명의 대표들이 교황 바오로 6세께 한 알현에 있어 접견된 직후에 있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 지도자들과 언론기관은 사회민주당 대표들의 「바티깐」 방문을 회의적으로 논평했으며 교황이 그들을 접견한 것을 동 당의 「프로그람」과 정책에 대한 승인같이 해석하지 말도록 경고했다.
가을 총선거가 다가옴에 따라 사회민주당은 교회단체 특히 교회경영의 신문들을 비난하여 이들은 지치게 일방적으로 기독민주당(CDU)을 지지하며 사회민주당은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양 혹은 공격의 대상으로만 삼고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기독민주당계열의 사람들은 금년 총선거를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불안을 금치 못하고 있다.
반면 사회민주당은 대전 이후 처음으로 연방정부의 집권정당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같은 관망을 뒷받침하는 것으로는 그간의 서독 내 각 주(州) 및 지방선거전에서 여러 곳에서 사회민주당이 현저한 진출을 보이게 될 것을 들 수 있다.
지난 수 개월 동안만 해도 「살란드」(살地方)주에서 사회민주당은 최강(最强) 정당으로 승리했으며, 「헷센」 주에서는 그의 주도권을 더욱 확대시켰고, 「라인란드‧팔쯔」주에서는 집권당인 기독민주당에 거의 접근해있으며, 무엇보다도 서독 내에서 제일 큰 주인 「놀드라인‧베스트팔렌」에서 기독민주당을 패배시켜 최강당이 되어 있다.
콘라드‧아데나워의기 독일민주당은 1949년 이래 줄곳 집권당의 위치를 잃지않았으며 제4차 총선거였던 지난 총선거에서도(1961)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의 공적지지에도 불구하고 동 당은 1957년 이래 유지해온 절대다수 의석은 차지하지 못하였으며 497의석 중 421의석 즉 총수의 45.3을 기록함에 불과했다. 1957년 선거에서는 동 당은 2백70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사회민주당은 1961년 선거전에서 36.3의 지시를 획득할 수 있었고 190의석을 차지했다.
이것은 1957년에 비하여 21석의 증가를 기록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서독의 연방, 주, 혹은 지방선거전에 있어서 많은 가톨릭주교들은 집단적으로 혹은 개개인으로 『오직 그리스도교적 원리를 지지하는 입후보들에게만』 표를 던질 것을 신자들에게 강조해왔다.
이것은 물론 기독민주당(CDU)과 그의 「바바리아」지방의 자매당인 기독사회당(CSU)을 직접간접 지지하는 것이었다. 1959년 독일사회민주당은 교회와 종교에 대한 태도를 변경하여 새로운 정책을 채택하였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바드‧고데스벨그 선언」이라고 알려진 동 당의 수정 태도에 가톨릭지도자들은 그 당시나 오늘이나 대단히 회의적이다. 교회는 아직도 이 1959년의 사회민주당의 정책 「프로그람」을 기회주의적 태도 이상으로 보고있지 않다. 왜냐하면 상술한 교육문화정책 등에 있어 아직도 실천을 통한 구체적 증거를 사회민주당이 보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1863년에 창설되었으며 그 이념과 정강은 「맑스」주의에 입각해있었다. 그것은 영국의 노동당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독일사회민주당은 농후하게 반공산주의 노선을 걷게 됐으며 중도접근(中道接近) 정책을 표방하여 「맑스」주의적 극좌(極左) 선에서 이탈해갔다.
동 당의 당수는 서부 「벨르린」시장인 빌리‧브란트씨이고 그는 금년 총선거에서 기독민주당의 루드비히에르하르트(현서독수상)씨를 대적하여 수상직에 입후보하게 될 것이다.
독일의 기독민주당은 2차대전까지의 가톨릭정당이었던 「첸트룸」(ZENTRUM)의 유산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독일 프로테스탄 계통의 정치 세력과 맺은 형제적 「파트너쉽」을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