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린 妄想(망상)에 回答(회답)준 「지상의 平和(평화)」 國際會談(국제회담)
共産國家(공산국가) 代表(대표)도 參席(참석) 支持(지지)
平和(평화)의 바탕「眞理(진리)‧사랑‧自由(자유)」確認(확인)
具體的(구체적) 結論(결론) 못 얻고 解散(해산)했으나 熱望(열망)은 높아
요안 23世(세)의 呼訴(호소) 反應度(반응도)는 뚜렷해
【RNS 本社綜合】「얄타」 회담시 교회를 하나의 현세적 권력기구(權力機構)로 밖에 보지못한 스탈린은 『교황은 대체 몇 개사단(師團)이나 되는 병력을 가지고 있느냐?』고 질문함으로 얼마전에 작고(作故)한 처칠 경(卿)으로 하여금 고소(苦笑)를 금치 못하게 했다.
어쩌면 스탈린은 세계정복을 위해서는 종국의 적(敵)은 교회이고 따라서 교황과의 일전(一戰)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같이 거만한 질문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스탈린의 이 질문은 지난 2월 17일~20일사이에 전세계 20여 국으로부터 모여든 2천명이 넘는 세계 정치‧사상‧종교계 지도자들이 「뉴욕」 국제연합의 사당에서 고(故) 요안 23세 교황의 회칙 「지상의 평화」가 제시한 평화의 원리를 탐색하게 됨으로써 부분적인 해답을 받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제도 연구센타」 주최로 소련 기타 공산진영 대표들까지 포함한 세계의 지도적 인물들을 망라한 이 4일 간의 평화의 길__
탐색 국제회의 중 스탈린의 이름은 단 한번 밖에 언급되지 않았으며 그나마도 그것은 그를 결망하는 뜻에서였기 때문이다.
이 국제회의는 세계 각국의 평화에 대한 염원을 강력히 표시하는 것이었음과 동시에 그것을 보장하고 있는 오늘날의 기계주의적 방법이 얼마나 부적당한지를 공공연히 승인하는 것이었다. 2년 가까운 준비를 통해 계획된 동 회의에서는 약 70명의 저명인사들이 연설 혹은 토론에 참여함으로 요안 교황의 회칙이 제의한 평화원리를 토대로 오늘 세계의 중요 문제들은 다루었다.
토의된 주요 문제들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독일 문제, ▲각국의 주권(主權)과 장래에 있을 세계통치권위와의 관계, ▲국제법의 관할▲저개발국가 경제원조, 그 원조의 목적과 양식 ▲평화공존의 한계점 ▲군사적 대립과 그 결과 및 사회정치체제 변경의 「메카니즘」등이었다.
연설 및 발언자들의 명단 역시 대단히 인상적인 것으로서 국제연합 사무총장, 동 총회 의장을 비롯하여 미국 부통령, 벨기정부 부수상, 이태리와 이스라엘의 수상대리, 2명의 국제재판소판사, 미국 대법원장, 전(前) 콜롬비아 대통령, 4명의 미국상원의원, 저명한 신학자 파울‧힐리히, 「노벨」상 수상자이며 원자력학자인 리너스‧포울링, 「프라우다」지(紙) 부편집장 이노젬스템, 폴랜드 공산당 중앙위원, 유고슬라비아 국회외무분과위원회 여성위원, 그밖에 죠지‧E‧케난, 인도의 판디트 여사, 헨리‧루스씨 등을 비롯한 쟁쟁한 전직 혹은 현역의 교관들이었다.
17일 저녁, 때마침 「유엔」기구의 존속여부가 문제시되고 있는 시간에 동 회의 개회식은 역시 「유엔」 총회회의실에서 개최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유엔」사무총장 우‧탄트씨, 동 총회의장 알레스‧퀘손‧새키씨, 미국 부통령 H‧험프리씨 등은 요안 교황의 평화교리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연설을 하였다. 그 다음날 「프라우다」지(紙)의 부편집장 N‧N‧이노젬프템씨는 요안 교황의 평화호소가 소련 내에서 좋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이 자리에 3명의 소련정부 대표가 참석해 있는 것으로도 증명된다고 말하였다.
의제가 산적해있었던 만큼 회의결과 전체를 총괄적으로 평가하기는 힘들다. 뿐만아니라 회칙이 제시하는 원리를 정확히 설명해줄 수 있는 권위자가 없었던데서 발언자들은 회칙을 각각 자기주장의 뒷받침으로 인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실 동 회의를 주최한 「민주주의제도 연구센타」 측의 대표자인 로버트‧M‧허친스씨가 개회사에 있어 토론의 「테마」는 정치도 종교도 아니라고 강조한 것은 이같은 혼란의 적지않은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요안 교황께서도 이를 목격하신다면 필연코 과이(怪異) 한 것을 바탕으로 한 토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결과 폴랜드 공산당 이론가인 아담‧샤프 박사가 『회칙「지상의 평화」가 권장하는 정신의 핵심은 수락하나 그것의 전제되는 원리는 거부한다』고 말하였을 때도 아무런 직접적인 반박이 없었다.
회칙은 물론 과오와 그 과오 안에 서있는 인간을 구별하고 이념과 그 이념에서 연역된 경제체제를 구별하고 있다.
또한 회칙은 신자와 불신자들 간에 상호 신뢰를 토대로 한 대화와 협상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회칙 「지상의 평화」는 평화를 지향하는 일체의 발전이 진리와 정의와 사랑과 자유에 대한 진지한 정신에 입각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하여 현실은 전 콜롬비아대통령 A‧L‧카말고씨가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듯이 『세계 과_수 지역에 있어 인권에 대한 존중이 결핍되어 있고 여러 정부들은 그들의 권력의 안정을 바로 이 가공할 현상 위에 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소련대표 이노젬스템씨는 그의 발언을 통해 여전한 서방세계 공격을 퇴풀이하면서 독일 평화조약, 핵무기금지, 전면군축 등 지금은 우리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물로토프의 임불을 외우고 있었다. 동시에 「프라우다」지 편집장으로서 문화교류, 과학면의협력, 무역관계확장 등을 제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소련 외교정책에도 「맑스」주의에도 평화공존을 위태롭게 하는 요소는 없다. 왜냐하면 「맑스」주의자들은 단호히 일체의 혁명수출(輸出)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계속하여 긴장이 야기되는 원인은 외부세력이 「반(反) 혁명」을 강요하기 때문이며 콩고, 큐바, 동남아세아의 사태발전이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여하튼 그는 세계 여론의 동정을 구하는 눈치였으며 무의식중에도 6억의 중공인민이 뿜어내는 뜨거운 입김을 목덜미에 느끼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동 회의 중 가장 구체적인 토의는 발바라‧워드 여사가 사회한미개발지구 원조문제회의였다.
아프리카 나이제리아의 「유엔」 수석대표 S‧아데보씨는 회칙 「지상의 평화」에 그 논거를 두면서 모든 원조는 원조대상국의 참된 요구, 현실의 염원, 합법적 독립주권을 존경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 주장은 불란서 대표 R‧뷔로씨의 지지를 받았으며 그는 수혜국(受惠國)의 자율적인 문화발전을 역석하여 원조국이 자체의 생활 및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것 같은 「문화적 식민주의」 및 「신형(新型) 사회식민주의」는 배격돼야 한다고 말하였다. 또 이어 회칙이 제의하는 힘이 아니고 보편적 합의를 토대로 하여 세계 공동선을 목적하고 추진하는 능률적인 세계기구설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스라엘의 수상대리 압바‧에반씨의 발언은 동 회의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었는데 그는 전세계 모든 국가의 수뇌들은 「유엔」 기구 밖에서 일주일 간의 회합을 가져 그들 자국의 문제가 아니고 전인류의 당면한 문제를 토의하라고 제의했다. 그리하여 세계빈곤 및 문맹(文盲) 퇴치, 미개발 지구의 개발, 인구문제, 수익의 공평한 분배, 평화유지와 세계공동선을 위한 권위있는 세계적 초국가 기구실정 등을 초국가 기구설정 등을 그 의제로 제의했다.
동 국제회의는 구체적인 견론을 얻지 못한채 해산되었다.
따라서 어떠한 결실을 가져올지 아직은 의문이다.
그러나 여기 간과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요안 교황의 평화호소가 전 세계 정치‧사상‧종교지도자들의 귀에 헛되이 들리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환언하면 모든 인간이 선의와 사랑을 토대로 하나의 인류공동체를 세우는데만 참된 「지상의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누구나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