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週(금주)의 聖人(성인)] 聖(성) 大(대) 그레고리오 1세
(교황, 학자 3월 12일)
발행일1965-03-07 [제461호, 2면]
성 그레고리오는 교회안에 끼친 영향 때문에 성 대 그레고리오라 불린다. 그는 34세의 약관에 「로마」 지사가 되었다. 세속의 높은 지위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그는 수도자가 되어 5백75년 경에는 교황의 사절로 「콘스탄티노플」에 파견된 일이 있었다. 다음에 그는 「로마」에 있는 성 안드레아 베네딕도 수도원을 지도했다.
5백90년에 교황에 선거되어 그는 15년 동안 교회를 다스렸다. 그의 활동은 여러 분야에서 실천했다. 그는 미사의 예절을 수정하고 일치시켰다. 오늘 우리가 「그레고리안」성가라고 부르는 전례적 노래 혹 평가(平歌=PLANUS CANTUS)의 규칙에 결정적인 영향을 그에게 부여해야 한다.
「그레고리안」성가는 처음에 교황성당에서 사용키 위해 편찬된 성가이다. 그것이 급속도로 서구 여러 나라에 보급되었다. 「그레고리안」성가라 불리는 모든 가곡이 그레고리오로부터 작곡 되었다. 단정할 수 없으나 그는 음악가로서 이 성가의 일부를 작곡했을 것이다.
그레고리오성가의 대부분은 그 이전 시대로 올라간다.
그러나 그레고리오 교황의 공적은 이러한 가곡을 세밀한 악곡의 규칙에 맞추어 편찬한 거기에 있다. 즉 선임자의 사업을 완성시켜 옛 「멜로디」를 음악의 규칙에 따르게 하고 이를 교회전례에 적합시켰다.
그는 많은 수도원 창설을 도와주었다. 그는 그 시대 사회 비참을 도우기 위해 교회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그의 전교사업으로- 특히 「칸타베리」의 성 아오스팅의 지도하에 영국에 수도자들을 파견했다- 또 그의 모든 외교 활동으로 교회 확장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6백4년에 별세했다. 성 그레고리오는 서구의 옛교회 대학자(암브로시오, 아오스팅, 예로니모, 대 그레고리오) 중 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