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上聖路巡禮(지상성로순례)] 십자가의 길은 생명의 길
주여 저 가난한 자 안에 당신 수난의 모습을 보게 하소서
그들을 멸시한 저를 책하소서
발행일1965-03-07 [제461호, 3면]
■ 제5처 시몬이 예수를 도와 십자가를 지다
『시몬‧시레네오라하는 사람이 농막에로부터 돌아올 새 그 길로 지나가는 것을 강박하여 하여금 예수의 십자가를 지게 하니라』(말구 15장 21절)
주여 이제까지는 남을 도우신 당신이 아니었읍니까? 병자를 낫게 하시고 굶주린 자를 배부르게 하시고 죽은 자를 부활시키신 당신이 아니었읍니까? 바다의 폭풍우조차 당신 한 말씀에 금시 순종하지 않았읍니까?
당신의 이 위대하심은 어디있읍니까? 그 왕자적(王者的) 위엄(威嚴)은 어디있읍니까? 어찌하여 당신은 이렇듯이 비참한 노예의 모습으로까지 떨어졌읍니까? 왜 이렇게 처참히 홀로 수난의 길을 가시게 됐읍니까? 당신을 도울 수 있는 벗들은 어디갔읍니까? 생사를 같이 하겠다던 그들은 어찌 되었읍니까?
시몬이 당신을 도왔읍니다. 그러나 강압되어서였읍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읍니다.
그는 일터에서 돌아오는 배고프고 피곤한 몸이었읍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당신 옆을 따르는 그 살기 등등한 군인이나 「바리서이」 중 누구를 도우라는 것이었다면 그는 순히 따랐을 것입니다. 지위와 권세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노예와 같이 참혹히 피땀에 젖은 당신은? …시몬은 당신을 모릅니다.
그의 논에는 지금의 당신은 한 사형수에 불과합니다. 멸시와 저주의 대상이실뿐입니다. 따라서 당신을 도우라는데는 저항치 않을 수 없었읍니다. 배고프고 피곤해서만이 아닙니다. 수치이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함께 사형수로 취급될 것 같은 두려움에서 입니다.
주여 어찌하여 당신은 이같이 만인의 치욕이 되셨읍니까? 어찌하여 천주이신 당신이 한 비천한 인간의 존경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십니까?
주여 이것이 세정(世情)입니다. 저도 시몬과 다를 바 없읍니다. 시회적인 존경과 인정을 받는 인사(人士)들, 귀부인 차림의 숙녀들에겐 저는 퍽 친절합니다.
예의를 깍듯이 차리고 상냥히 대합니다.
이들의 청이라면 때로는 바쁜 시간도 없는 돈도 아끼지 않읍니다. 피로를 무릅쓰고 동분서주 합니다.
그러나 주여 당신이 제게 주신 사람들, 형제와 같이 특별히 사랑하라고 부탁하신 사람들, 그들은 저를 피곤케 합니다. 이들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겐 저는 염증을 느낄뿐입니다. 생각만해도 제게 구차한 존재들입니다. 하물며 그들을 위한 시간과 돈과 마음의 여유가 있으리 없읍니다. 주여 저는 이같이 당신 가난한 형제들을 멸시해왔읍니다. 거지들이니까 천대하였읍니다. 저는 그들을 독립된 인격자 같이는 취급치 않았읍니다. 빈곤, 질병, 실업, 인간과 사회비참을 상징하는 「카테고리」(部顃)에 불과했읍니다. 좋은 의미로 비인격적인 배급제 구호대상자들이었읍니다. 그러나 저의 사랑의 대상은 아니었읍니다. 간혹 그들을 도왔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가심에 못이겨 버리듯 내던져 준 것이었읍니다. 한 인간이 같은 인간을 형제가 형제를 도우는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러나 주여! 당신은 바로 이같은 사람들을 사랑함은 당신을 사랑함 같다 하셨읍니다. 이것은 사람들을 박대함은 당신을 박대함과 같다하셨읍니다. 당신은 그들 하나 하나를 형제라 부르셨읍니다.(마테오 25장 31-46절)
주여 나를 책하소서! 세상 풍정과 양의를 따라 당신과 형제를 천대한 이 죄인을 책하소서!
또 내 어두운 마음의 눈을 열어주소서! 그리하여 이 가난하고 병들고 천대받는 이들안에 당신을 보게 하소서! 그들이 나의 형제이고 이 시대의 구원의 십자가를 지고가는 당신의 표상임을 알게 하소서! 누구에게 보다 바로 이들 안에 오늘의 당신교회 모습이 더 절실히 반영되고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
■ 제6처 성부 베로니까 예수의 얼굴의 피땀을 씻다
주여, 베로니까의 용기와 사랑이 저를 깊이 감동케 합니다. 미움과 저주와 멸시, 형리들의 행폭한 채찍, 이런 삼엄한 가운데 고독히 버려진 당신 얼굴의 피땀을 누가 그렇게 감히 나아가 닦을 수 있겠읍니까?
그러나 그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당신 살아의 위대하심입니다. 보통 인간이면 하찮은 고통만으로도 남의 친절을 친절로 갚기란 힘든 것입니다. 하물며 당신과 같이 그 기진한 상태에서겠읍니까? 그러나 당신은 그 죽기보다 더한 그 큰 괴로움 중에 베로니까의 사랑을 사랑으로 보답하셨읍니다. 베로니까는 그 수건에만이겠읍니까? 그녀의 마음 깊이 그녀의 존재 깊이까지 당신 수난의 모습을 새겨 받았읍니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구원이었습니다.
위대하신 주의 마음이여! 굳세면서 그지없이 부드러운 마음이여! 주여 당신 홀로만이 삶의 질고와 죽음의 고난 가운데도 균형을 잃지 않는 광대한 사랑의 주인공이십니다.
주여 제게도 이 마음의 넓이를 주소서! 이 마음의 사랑과 이 마음의 자유를 주소서! 저는 육신의 적은 고통에도 곧 마음까지 피로를 느낍니다. 주위의 사람들, 그들의 친절까지도 귀찮아만 합니다.
성세때 당신은 제 영혼에도 깊이 당신 모습을 새겨주셨읍니다. 그러나 저의 삶은 당신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었읍니다.
사랑과 진실과 용기의 부족으로 오히려 찢어진 당신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당신께 되려 욕되게만 하였습니다.
주여 당신의 현존을 어둡게 한 이 눈을 이 부정한 마음을, 이 안일만을 찾는 육신을 용서하소서! 피땀에 젖은 당신 모습을 새긴 베로니까의 성포(聖布)가 저의 생활경신의 지표(指標)되게 하소서! 쇄신을 구하는 오늘의 교회가 그것을 거울과 기치(旗幟)로 삶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이신 당신을 참되이 반영하는 영혼, 생명이신 당신을 참되이 드러내는 교회되게 하소서!
『예수의 죽으심과 고난을 언제나 우리 몸에 지니나니 이는 예수의 생명으로 하여금 우리 몸에도 또한 나타나기를 위함이니라』(코린토후서 4장 1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