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테스탄 修道院(수도원) 訪問記(방문기)
가톨릭 巡禮者(순례자)도 찾는 一致(일치) 기도의 場所(장소)
「프로테스탄티즘」이…………
共同生活(공동생활)서 빛찾아
修士中(수사중)엔 牧師(목사)도, 韓國(한국) 위해서도 祈禱(기도)
발행일1965-03-07 [제461호, 4면]
【承前】「때제」에는 단지 여덟 수사만이 목사이다.
한편 그들은 여러 교파에서 와있다.
또한 현 회원 가운데는 불란서, 서서, 화란, 독일, 정말, 미국 출신들이 있는데 그들 역시 여러 교파에 속하고 있다. 이렇게 「때제」는 「프로데스탄티즘」의 「이미지」 이기도 하다. 즉 그것은 오로지 한 교회 한 나라의 반영이 아니다.
「때제」수도원의 그 본보기로서의 가치는 오늘날 비상히 증대되었다.
공동체의 생활을 「리드미칼」하게하는 아침저녁의 「성무일도」 사이에 자기가 맡은 일로써 각자가 모든 이의 생계를 부담한다. 이 프로테스탄 수사들에 대해서 또한 그들의 한없는 희열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들의 청빈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인가?
규칙대로 「그리스도자신」 처럼 대접받는 지나가는 손님은 다음에 그것을 잘 느끼게 된다.
경리 다니엘 수사와의 흉금을 털어논 형제적인 긴 회화에서 나는 그것을 더 잘 느낄 수가 있었다.
우리들의 회화 가운데는 섭리(攝理)란 말이 자주 오르내렸다.
나처럼 그들의 식탁에서 식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이는 이 형제들이 매우 검소하게 먹는 것을 볼 것이다. 또 이미 일년 전부터 그들은 술을 마시지 않고 다만 불란서 보통 음료수만 마신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고 또 그것을 말해야겠다. 치리의 일부가 무서운 홍수에 침수되었을 때 이곳 수도회는 그곳의 가톨릭 주교에게 선물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가질 것이 없고 팔 것도 없어서 그들의 식탁에 있는 술을 드리기로 작정했다. 「때제」의 수사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증여품(贈與品)도 받지 않는 절대적인 법을 만들었다. 그들의 노동으로써 생계를 유지해야만 한다. 예산이 어려우면 음식의 몫을 줄여야 한다. 이런 것은 가끔 있을 수 있다.
이곳에서 그들의 가장 완전한 뜻에서 이해되고 실천되는 접대의 의무는 가장 감동을 주는 일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또한 모든 것은 미소로써 된다.
1969년 9월의 읍명한 대담(對談) 이외에도 몇년 전부터 많은 대담이 있었는데 거기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참여했다. 1962년 바오로 6세 교황이 「빨레스띠나」를 여행했을 때 많은 화제에 올랐던 아데나고라스 총주교는 「때제」에 정교(正敎) 「센타」를 건립키로 결정했다. 「콘스탄티노풀」 총주교와 「때제」의 원장사이에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원장과 부원장 맑스 뮤리안 수사는 공의회 모든 회기에 요안 23세와 바오로 6세로부터 「옵서버」로 초대되었다.
매년 모든 종파의 순례자들이 혹은 단순한 방문자로 혹 나처럼 불란서 주교단장의 한 사람인 알셀모 주교의 지도하에 「쁘라도」의 사제들과 함께 피정을 하기 위해 「때제」에 온다. 모든 이가 이곳은 감지할 수 있을 만큼 성신이 크게 입기운을 불어 일으키는 곳임을 알기 때문이다.
새성당이 건립되었다. 여러 그리스도 교파의 예배가 여기서 거행된다. 특히 이 교회의 지하실은 가톨릭신자들을 위해 보류되어 있다. 거기엔 항상 성체가 모셔져 있고 한 프로테스탄 수사가 성체보존과 함께 성체 현존을 알리는 성체불 기름을 공급하는 책임자이다. 이 큰 성당은 그리스도신자들의 일치와 화목을 위한 순례지이다.
누구든지 그 성당을 방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는 수리(修理) 관계상 여름에만 쓸 수 있었다. 「때제」의 형제들은 가톨릭신자들을 특별히 끌어들이기 위해 결코 애쓰지 않는다는 그 점을 나는 강조하고 싶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왔다. 모든 공동체는 자기들을 위해 가능한 유일한 길은 가톨릭교회로 돌아가는 것이었다는 것을 확고히 그러나 부드럽게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때제」에서 슛즈 목사와 긴 「인터뷰」를 마치고 나온 한 젊은 가톨릭신자를 만났다. 그는 교회에 대한 심한 반항심을 가지고 즉 프로테스탄이 되고 다음에 이 수도원에 들어갈 의사를 가지고 여기 온 것이다. 나는 명랑해진 그를 보았다. 그는 원장목사의 추천서를 가지고 「트라피스트」에 들어갔다.
아마 어떤 이는 말할 것이다. 그들은 변장한 가톨릭이라고! 천만에 절대로 아니다.
그들은 프로테스탄이요, 프로테스탄이기를 원하고 프로테스탄이라 선언한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 또한 성신의 유일한 광명 아래서 그들은 인간의 사랑 속에서 세상에서 천주께로 가는 길이 무엇인지를 찾는 자들이다. 우리는 이 크나큰 성실과 이 폭넓은 시야에 감동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것은 오해나 비판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천주가 그들과 함께 계시고, 또한 아무것도 그들 위에 마련하신 성신의 계획을 따르기에 방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참된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의 얼굴 모습은 그들 마음속에 왕례하고 있는 평화를 반영하고 있다. 나는 그들 가운데서 그들과 함께 지난 이 여드레 동안 얼마나 여러번 그것을 느꼈는지 모른다. 이 8일 간은 참으로 나의 사제생활에 획기적인 한 주일 이었다.
여기선 전례로부터 사회학적 대담에 이르기까지 또 종교개혁에서 생긴 이 수사들의 성소에 이르기까지 단한가지의 목적만이 있을 뿐이다.
즉 교회일치를 위해 끊임없이 일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 거의 어디서 든지 「로마」가 이 수도원을 인정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로제 슛즈와 그의 부원장 맑스‧튜리안은 가끔 「바티깐」에 간다. 비오 12세, 요안 23세, 바오로 6세는 그들을 여러 번 접견했다.
슛즈 목사는 그의 서재에서 나를 맞아 오랫동안 담화했다. 벽에는 큰 세계지도가 결려있다. 나는 그에게 한국을 가리켜주었다. 그는 한국을 위해 그들의 수도회가 기구해 줄 것을 나에게 약속했다. 「때제」의 규율에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록 갈려져 있더라도 그 모든 이에게 이웃으로서의 사랑을 쉽게 표명함과 동시에 그리스도 신자들의 분열의 「스캔달」에 편들지 마라. 그리고 그리스도신비체의일치를 위해 열성을 가져라』 우리 한국의 가톨릭신자 여러분 이 일치에 대한 필요성을 참으로 납득하는가? 그것이 빨리 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