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73) 구오봐디스 ①
발행일1964-11-15 [제447호, 4면]
진호는 보고 싶던 영화 「구오봐디스」를 어느영화관에서 하고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한다.
『글쎄요?…』
나는 망서렸다.
『… 할일이 없어서 오늘은 진종일 영화관에서 영화만 보다가 나온걸요…』
이렇게 대답을 하였으나, 사실은 영화에 진력이 난 것도 아니었다. 「미스터」강이 집에 올 일곱시라는 시간이 신경에 걸리었다.
『보통 영화와 다르니 꼭 보아 둘 필요가 있어…』
진호는 그 영화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열심히 가기를 권한다.
『…그리스도교가 언제 어떻게 해서 서구문명(西歐文明)의 정신적인 석가레 기둥이 되었나 하는, 역사적인 배경을 이 영화에서 볼 수 있어요.
로마제국은 희랍 · 로마의 사상을 기둥으로 번성했는데 차츰 내부에서 부패되기 시작했고 민심은 떠나가고 원성이 높아지자 드디어 멸망직전에 이르렀는데 그때 민중의 마음에 빛갈을 던져준 것이 바로 그리스도 정신이지…』
듣는척 하였지만 속으로는 「미스터」강이 자가용을 몰고 우리집 문전에 도착했을 것을 생각하였다. 시간은 정각 일곱시였다.
「구오봐디스」는 라틴어로 주여, 어디로 가는거요? 라는 뜻인데 나는 이말을 늘 방황하는 내 마음 위에 던지지요』
진호는 어조를 낮추어 스스로 맘속에 새기듯이 조용히 말한다.
『진호씨도 방황 할 때가 있나요?』
나는 약간 놀라며 물었다.
『난들 별 수 있어요, 약한 인간인데….』
진호는 어딘지 좀 쓸쓸한 표정이 되어 말한다.
『나는 진호씨를 그리스도 교리책에서, 톡 튀어 나온 사람인줄로만 알았는데?』
진호는 웃지않고 오히려 이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강하게 졌는다.
『방황한다면 고민이 있다는 뜻이겠죠? 어떠한 고민이야요』
나는 짓궂게 그의 속을 캐보고 싶었다.
『여러가지 있지요………』
진호는 찌꺼기가 식어 남은 찻잔에 시선을 떨어뜨리고 말이 없다.
『다리의 부상?』
『…솔직히 말하면 그것도 있지만….』
『그밖에 또 무어야요?』
『일일이 그것을 어찌 다 얘기할 수 있어?… 하루 하루가 방황에 가득차 있는걸…』
진호는 커다랗게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본다.
『지금까지의 진호씨는 마음에 고민같은 걸 담아두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는데?』
『…하루에 세번은 「구오봐디스」를 찾지요.』
나는 나대로 「구오봐디스」란 말이 오락가락했다.
(진호와 더불어 있을 것인가? 「미스터」강이 와 있을 집으로 갈 것인가?)
눈앞에 있는 진호와 집에 와 있을 「미스터」 강의 얼굴이 머리속에서 거미줄 같이 뒤엉킨다. 오금이 들먹거리지만 진호를 버리고 집으로 뛰어갈 결단성도 나지 않는다.
『「구오봐다스」나 보러 가지? 내일부터는 또 짬이 없는데…』
진호는 「카운타」 앞으로 가서 차값을 치르고 절둑거리며 먼저 밖에 나와서 기다리는 내 앞으로 왔다.
반쯤은 집으로 끌리는 마음을 안은채 나는 진호를 따라 걸었다.
『XX관까지는 꽤 먼데, 타고 갑시다!』
진호의 다리가 힘이 들어 보이길래 말했다.
『버스나 합승을 타도 내려서 한참 걸어야 하니, 걸읍시다. 한 이십분 도정인데…』
『「택시」를 부릅시다. 삼십원이면 갈텐데!』
『그럴 필요가 없어, 분에 맞도록 걸읍시다!』
진호는 「택시」를 붙들려고 하는 나를 제지하며 걷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절룩거리는 진호와 나를 한번 볼 걸 두번 본다.
나는 그의 느린 걸음에 맞추기 위해서 천천히 걸어야 했다.
이때 매우 타산적인 생각이 내 머리를 왕래했다. 앞으로 진호의 다리가 영영 병신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며 그런 사람과 구태여 사랑을 약속하고 결혼에까지 이를 필요가 있을까?
『구오봐디스?』
나는 스스로 물었다.
한편으로는 진호가 가엾기도 하다. 그런대로 어느듯, 우리는 영화관 앞에 왔다.
XX관은 지정좌석제라 지정석이 다 팔리어 다음 회까지 기다려야 했다.
『오늘은 이대로 헤어집시다…』
『…친구 하낙 입원하고 있는데 매우 중태야요. 오늘 사실은 문병을 가려고 하였는데 「미스」양과의 약속 때문에 못갔어요. 우리는 내일도 모래도 만날 기회가 있지만 병자에게는 당장 찾아 줄 사람이 필요할꺼야요. 표가 다 팔린것도 그 병든 친구를 문병가라는 뜻인가봐…』
진호는 정색으로 말한다.
『가보세요, 그럼…』
진호는 거기서 버스를 타고 대학병원으로 가고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나는 나대로 「미스터」 강에게로 나를 몰아치는 운명같은 것을 느꼈다.
집에 돌아오니 과연 어제 그 자가용 「찦」차가 문전에 닿아 있었다. 인기척을 하며 들어서니 양부가 곧 나와서 안방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안방에 들어서니 「미스터」 강은 벌떡 일어나서 인사를 한다. 양복은 진한 곤색, 「넥타이」도 어제와 다른 것을 매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니? 「미스터」 강이 「드라이브」나 하자는데 빨리 저녁부터 먹어라!』
양부가 이렇게 말하자 『저녁식사는 저도 아직 안햇는데 밖에 나가서 같이 하지요! 양식을 좋아하나요 왜식을 좋아하나요? 역시 양식이겠죠?』
「미스터」 강은 넘겨짚는다.
『………』
나는 대답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그의 쉰 목소리와 동물적인 시선이 야하게 보였으나 오랫동안 입에 대 보지 못한 서양요리에는 매력을 느꼈다.
양부는 옷을 입으려고 일어섰다가
『나는 몸이 좀 불편하고 저녁도 먹었으니 둘이만 다녀오는 것이 어때?』 하며 도로 앉는다.
『그럼 저희들만 가죠!』
「미스터」 강은 서슴치 않고 대답한다.
『그렇게 해라!』
양부는 나직히 나에게 말한다.
「찦」차와 양요리에 끌리어 나는 「미스터」 강을 따라 집을 나섰다.
그는 나를 먼저 태우고 운전대에 앉지를 않고 내 옆에 와서 앉았다.
차중에서 그는 자기 사업에 대해서는 얘기를 하였는데 어제 듣건 것과 비슷했다.
『…지금은 내가 혼자 있으니까 허룸한 데에 아무데나 하숙하고 있지만, 결혼한다면, 한 오십평짜리 이층양옥을 지어 신혼주택으로 할 생각인데 「미스」양 생각에는 좁지 않을까요?』
나는 집 평수에 대해서는 별로 지식이 없었으므로 오십평이 얼마만한 넓이인지 짐작이 안갔다.
『오십평이면 지금 우리집만한가요?』
『그거 다섯배는 되지요!』
『어머아!』
나는 놀랐다.
『좁지 않을까요?』
「미스터」 강은 거듭 묻는다.
『글쎄요? 대궐 같은 큰 집에 살기를 원하는 여자라면 좁겠지만 우리 같으면 배만 되어도 좋겠어요!』
『「미스」 양은 적어도 오십평은 되는 집에 살아야 하죠, 그건 진리입니다.』
내 상식으로는 이런 때 진리(眞理)란 말이 적합치 않은데 그는 힘을 주어 말하고 있었다. 교양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어리숙하고 순진하게도 보인다.
『결혼 상대는 물론 있으시겠죠?』
나는 곧장 떠보았다.
『부자집에서 결혼하자는 말은 쓰레기 차올 때, 쓰레기통 모여들듯 하지만, 맘에 들지 않아서 다 퇴짜를 놓았지요! 사실입니다.』
『홋홋홋…….』
나는 쓰레기차에 비교한 것이 우스워 입에 손을 막고 쏟아지는 웃음을 막았다.
『왜 웃으세요?』
「미스터」강은 흰자위 눈을 뜨고 바라본다.
『퇴짜 맞은 부자집 딸들의 꼴이 통쾌해서 웃은거야요!』
이렇게 둘러댔더니, 그도 나 모양 소리를 내어 웃었다. 나는 이 어리숙한 사나이를 내 장중에 넣고 휘둘러 볼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