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上聖路巡禮(지상성로순례)] 십자가의 길은 생명의 길
주여 죄의 사슬에 얽힌 나로 하여금 내죄를 먼저 아파울게 하소서
발행일1965-03-14 [제462호, 3면]
■ 제7처 예수 기력이 핍진하사 두번째 엎더 지시다
주께서 다시 엎더지셨다. 억지로나마 주를 잠시 도왔던 시몬 마저 어느새 도망치고 없다. 십자가의 온 무게가 주님홀로의 어깨만을 내리 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주를 다시 엎더지게 한 것은 형틀의 무게 만이었을까? 그 육신의 극심한 피로만이었을까? 아니다. 그것은 보다 더 우리들의 죄악 때문이었다. 나와 너, 우리 모두의 죄, 배은망덕, 불신, 그것들에서 결과된 온 세상의 불행과 비참이 주를 기진케 하고 다시 쓰러지게 하였다.
주여 나는 다시 떨어졌읍니다. 이젠 한 자국도 더 옮길 수 없습니다. 그 종착점까진 끝내 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 면전에 서기조차 이젠 두렵고 부끄럽습니다.
나도 힘껏 싸웠읍니다. 내 옆에 당신이 지켜 서 계시고 나를 알뜰히 보살피심도 알았읍니다.
그러나 유혹이 삽시간에 폭풍우 처럼 휘몰아쳐왔을 때-모든 것은 그 일순의 일이었읍니다. 나는 당신을 외면했고, 같은 순간 이 구렁텅이에 떨어졌읍니다. 짓밟힌 사랑, 당신은 저의 배신의 칼을 맞고 비탄에 쓰러졌읍니다.
주여 지금의 이 침묵은 너무나도 무겁습니다. 폭퐁우는 어쩌면 올 때 와도 같이 그렇게 갑자기 무너진 것입니까? 번개가 비수처럼 칠혹의 밤을 찢고 꺼졌을 때 수치와 자학에 젖어 나는 빈손에 죄만을 움켜잡고 퍼질고 앉은 자신의 철저한 모습을 발견했읍니다.
이 시간-눈도 귀도없이 체읍에 저도 시원치 않을 이 시간에, 주여, 죽음과 같이 무거운 이 정적이 너무 나도 두렵습니다.
나의 죄, 이것을 나는 보화같이 얻지 못해 애타했읍니다. 사지(四肢)를 뻗쳐 기를 쓰고 잡으려 했읍니다. 손끝에 닿자마자 그것은 몸도 마음도 한꺼번에 나를 불태워 버렸읍니다. 그러나 이제 빛갈도 냄새도 맞도없는 이 죄악에 나는 환멸과 참을 수 없는 구토를 느낄 뿐입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는 일, 거래(去來)는 이미 끝났읍니다. 내가 그 대가로 치른 값을 쥔 유혹자는 어느새 바람과 같이 사라지고 없읍니다.
아! 주여, 내 소유로 남은 것이 무엇입니까?
이 죄 뿐입니다. 그러나 죄는 나보다도 더 힘껏 나를 제손아귀에 움켜잡고 있읍니다. 거미줄에 걸린 하루살이와 같이 나는 완전히 그의 포로, 그의 노예가 돼 있읍니다.
주여! 당신의 그 눈이 무섭습니다. 너무나도 맑고 깊고 사랑에 가득찬 눈이기에 나는 오히려 두려움에 떨지않을 수 없읍니다. 그렇게 응시하지 마옵소서! 헐벗고 찟어지고 더럽혀진 나를 그렇게 자꾸만 보지마옵소서!
이제 다시 아무것도 주께 약속할 수 없읍니다.
아무것도 나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당신의 무한히 큰 사랑과 인자에 의지할뿐이 옵니다.
주여 나를 죄의 사슬에서 풀어주소서. 이 구렁에서 건져주소서! 나의 모든 나약과 죄와 가난을 지고 다시 일어서신 당신을 따라, 이 고난의 길, 이 생명의 길을 나도 같이 계속하겠나이다.
■ 제8처 예수 「예루살렘」 성의 부녀를 안위하시다
부녀들이 통곡체읍하며 예수를 따라 오거늘 예수 그 부녀들을 돌아보시며 이르시되 『예수살렘 부녀들아! 너희는 나를 위하여 울지말고 오직 너희와 및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하시더라. (루까 23장 27-28절)
주여 예루살렘의 부녀들은 당신을 보고 슬피 울지않을 수 없읍니다. 당신 모습이 너무나 처참하고 당신의 말로(末路)가 너무나 비극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당신을 사모하였읍니다.
당신의 거룩한 말씀을 듣고 당신의 수 없는 기적을 본 그들은 당신을 위대한 선지자로서 숭배하였던 것입니다. 당신이야 말로 그들과 그들의 자손들을 이민족(異民族)의 압박에서 해방시키고 이스라엘 왕국을 이 지상에 이룩해줄 구원자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꿈과 기대는 무참히 깨어졌읍니다.
그들의 희망이던 당신이 죽음의 언도를 받고 고양처럼 가련히 형장으로 끌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여, 예루살렘의 부녀들은 정녕 비탄에 지지않을 수 없읍니다.
그러나 주여, 이 부녀들은 당신이 누구신지를 진정 모릅니다. 따라서 당신이 왜 십자가를 지고가시는지, 당신 수난의 참된 원인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들의 온 세상의 죄 때문임을 모릅니다. 우리 죄가, 우리의 배은망덕이, 우리의 불신이, 당신 수난의 원인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당신은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먼저 울라!』하셨읍니다.
사랑의 주 예수‧그리스도여! 당신 사랑은 정말 그지 없이 크옵니다.
당신은 그 지극한 고통 중에도 먼저 남을 생각하십니다. 우리의 참된 회두와 구원의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주여 나로 하여금 당신 수난의 원인이된 내 죄를 먼저 울게 하소서!
누구보다 앞서 나 자신이 한 죄인임을 알게 하소서!
나는 지금껏 남과 사회와 세상만을 탓하고 원망하였읍니다.
남들의 죄, 사회와 정치의 부폐가, 저를 이렇게 불행하게 만드는 것 같이 비난하였읍니다.
나 자신이 죄인이며 내 과오와 비정이 남을 괴롭힌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읍니다. 무엇보다도 당신 수난의 원인이되고 그 죽음의 고초를 더욱 재촉한 것이 나였다는 것을 잊고 있었읍니다.
주여 나로하여금 보게하소서! 죄에 물든 스스로의 모습을 진실히 보게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