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88) 虛實(허실) ⑪
발행일1965-03-14 [제462호, 4면]
그 후 보름 동안 승우는 한번도 명동에 나타나지를 않았다. 그간 이틀씩, 혹은 사흘씩 근 열흘 간은 궂은 비가 계속되어 구두닦이 직업은 억망이었다.
몹시 내리는 날은 집에서 쉬었지만 개일 듯 하면 나갔다. 개인 뒤에는 구두닦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러나 사실은 그곳보다는 승우가 혹시 찾아올까 하는 기대를 안고 보슬비 나리는 저녁에도 우두커니 양장점 추녀 끝에 웅크리고 앉았었다.
『부모 보다는 본인의 의사가 결정권을 가졌지요!』
하던 승우의 말을 한가닥 희망의 줄로 삼고 있었었다. 날 궂은 날의 구두닦이 직업은 질벅거리는 장모양 을씨년스럽고 초라하다.
신문에는 마침한 비라고 하며 농부들이 반가와 하는 모습이 났다.
우산 장수들도 연일의 비로 신바람이 나서 「비닐」우산을 한아름 안고 뛰어다닌다. 가만히 보니 구두닦이 하던 아이들이 구두목판은 어디다 동댕이치고 우산들을 들고 다녔다.
(나도 우산 장사를 할까?)
그러나 어디서 우산을 사들이는지도 몰랐다. 뿐만아니라, 우산을 들고 거리를 헤매기는 한층 꼴이 민망하게 느껴진다.
(구두닦이 꼴은 그것보다 나은가?)
하기야, 그게 그건데 구두닦이는 이미 되어버린 꼴이고, 우산장수는 새 골이라 그 새로운 꼴로 자신을 던지기가 귀찮다. 나는 몇 날을 화려한 양장점 「원도우」에 등을 대고 초라한 제 꼴과는 정반대로 아름다운 꿈에 잠겨 있었다.
승우가 자가용을 몰고 와서 나를 태워간다. 반대하던 부모도 드디어 꺽이고, 우리는 맘놓고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융단이 깔린 승우네 양실 응접실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며 명곡을 감상하고, 내일의 설계를 주고받는다.
승우의 얼굴은 어떤 딴 부잣집 아들로 변한다. 아무라도 좋았다.
나를 사랑하고, 으젓한 집이 있고, 돈이있으면 된다.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물질적인 조건이 갖춰있으면 그만 이다.
달콤한 공상은, 깨고 나면 한층 씁슬한 현실 속으로 나를 몰아넣었다. 나는 갑자기 어느 때보다 우울해졌다. 비오는 날 비를 맞으며 정처없이 가고 싶은 허황된 맘이 들어 일부러 「버스」도 안타고 비가 몹시 쏟아지는 저녁 집까지 걸어 돌아온 일도 있다.
『아니, 비를 쫄딱 맞았구나? 「비닐」우산이라도 사 쓰지 않구서.』
양부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나를 보고 상을 찡그리며 나무란다.
『그러다가 감기나 들면 어떻게 허니?』
양부는 화를 내며 소리친다.
좀 더 그의 말이 상냥했으면 나는 울번했을 텐데, 무뚝뚝한 그의 말에 무럭 반발심만 치밀어 짐짓 감기가 몹시들어 폐염이나 되어 죽어버렸으면 싶었다.
젖은 머리를 일부러 잘 닦지도 않고 잠자리에 들어갔건만, 이튿날 아침 눈을 떠보니 들라는 감기는 들지도 않고, 몸은 팽팽했다.
밝은 초여름의 햇볕이 파아란 하늘에서 비치고 있다.
푸른 하늘과 햇볕은 다시 나의 마음에 용기를 주었다.
구두 목판을 들고 움막촌을 나섰다.
며칠 동안은 딴 잡념이 들 사이가 없도록 바빴다. 먼지 묻은 남자 구두를 반짝거리도록 닦기에 해가 뜨고 해가 저물었다.
『내 청춘이 이렇게 소모되고 흘러가도 괜찮을까?』
저녁이 되면 기분은 다시 우울해질 때가 많았다.
그러던 하루, 승우와 만난지 한 달은 더 되던 날 저녁 무렵 갑자기 또 비가 쏟아졌다. 「비닐 우산을 하나 사려구 마침 한 가게를 갔더니 우산이 굉장히 많고,
(우산 도매합니다)
하고 써 붙여있었다.
값을 물어보니 한 개 팔면 오원은 남았다. 망설이다가 우산을 열 개 받았다. 우산 사라는 소리가 좀처럼 나오지가 않아 우산 없이 가는 사람이나 추녀 끝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사람 쪽에 가서 사라고 내밀었다.
그래도 다섯 개를 금시 팔았다.
그 다음부터는 우산 사라고 외쳤다.
첫마디가 어려웠지 다음부터는 술술 나왔다. 세 개를 금방 팔고 남은 것은 두 개였다. 하나는 내가 쓰고 있었으니 팔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우산 사세요! 우산!』」
나 같은 여자의 우산 장수가 없기에 사람들은 유심히 쳐다보았다. 보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고 증권회사 있는 골목에서 급히 한 길로 뛰어 나오던 찰나, 골목으로 접어든 「찦」 차와 마주쳤다.
나는 급히 피하다가 길에 나자빠지고 말았다. 사람들이 우우 몰려 들었다. 선 듯 보기에는 치인 것 같았다.
내 자신도 치었나 싶어 정신을 가다듬어, 몸을 살피니 별 이상은 느끼지를 않았다.
혼자 몸을 반쯤 일으켰을 때,
『「미스」양 아니요?』
하는 귀익은 소리가 났다. 보니 승우였다.
바로 승우의 차였었다.
꿈이 아닌가 하고 살며시 무릎을 꼬집어보았다.
승우는 병원에 가자고 나를 차에 태운다.
아프지도 않았으나 어딘지 아픈 표정을 하고 차에 탔다.
B외과 병원에 갔더니 이렇다 할 표면 상의 상처는 없으나 「쇼크」를 받았을 것이라고 한다.
나는 「쇼크」를 받은 것 같이 어지럽고 멍하다고 말했다. 「액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하며 「액스레이」실로 데리고 갔다. 옷을 벗기가 싫어서 뛰어나와 버렸다.
『혹시 모르니 찍어보세요. 부끄러워 마시구.』
승우는 걱정스러이 말했다.
『싫어요.』
어안이 벙벙해서 바라보는 간호원과 의사를 뒤로 병원을 나와버렸다. 승우가 따라왔다.
『정말 괜찮아요?』
나를 차에 태우며 묻는다.
『괜찮은게 아니라 속이 상해요.』
『속이 상하다니요?』
『차에 치어죽고 싶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았으니 말이야요?』
나는 문득 이런 거짓말을 하고 승우의 얼굴 표정을 엿보았다.
『내 찬줄 알구, 뛰어들었어?』
『그러문요.』
나는 성난 듯이 말했다.
『………』
승우는 한 오분동안 아무말이 없었다. 승우는 운전대에 앉지 않고 나와함께 뒤에 앉았었다. 그는 운전수에게 들리지 않게 가만 가만히 속삭였다.
『내 마음은 「미스」양에게 지금도 있어 그러나, 사정이 그렇게 못됐어!』
『자기 의사가 제일이라고 하셨죠?』
『………』
승우는 또 말이 없이 난처한 표정이다.
『이대로 마음만 흔들어 놓고 딴 여자와 결혼해 보세요? 죽어 버릴 테야!』
일부러 운전수 귀에 들리라고 커다랗게 말했다.
승우의 표정은 점점 침울해졌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남에게 고민을 준자는 고민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집 앞까지 바라다 주고 갈적에 승우는 내 앞에 와서 속삭였다.
『쓸데없는 생각은 먹지 말아요. 내일 낮 두시에 ×× 다방에서 만납시다…』
그 다방은 그와 「데이트」하던 곳이었다.
그의 차가 언덕 아래에 사라질 때 까지 나는 서서 바라보았다.
(그의 부모가 찬성해 주었으면…)
이런 희망을 또 한번 가져 보았다.
그러나 어딘지 그런 생각을 가진 나 자신이 떳떳하지 못한 듯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