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74) 구오봐디스 ②
발행일1964-11-29 [제448호, 4면]
그 후도 나는 진호에게는 감추고 「미스터」 강과 교제를 계속했다. 진호는 저녁에 가정교사 자리를 얻어 가게 되어 다섯시와 여섯시 사이에 짧은 짬이 있을 뿐이었다.
그 시간에 「미스터」 강과 만날 약속이 겹치면,
『구오봐디스?』 하고, 자문했다.
양심의 대답은 진호한테 가라 하는데, 막상 몸은 「미스터」 강 한테로 갔다.
자가용과 음식과 「드라이브」, 이 세가지가 빚어내는 분위기가 나를 잡아 끌었다.
또한가지의 그의 어리숙한 점이 내 비위에 안기었다.
두번째 만나던 날 저녁, 첫번째와 같이 저녁식사를 같이하고, 한시간쯤 「드라이브」를 하였는데.
『「미스」양이 좋아하는 것은 무어야요?』
하고 그가 다정히 물었다.
나는 간단히
『케잌~』
하고 대답했다. 이때 그는 곧 운전수에게 유명한 XX당 양과자점 앞으로 가자고 일렀다.
「케잌」을 사줄라나 하고 따라 들어갔더니 천원이나 하는 「케잌」을 마치 십원주고 석간신문이나 사듯이 날름 사서 들려주었다.
『좋아하는 것 있거든 무어든지 말만해요. 지리산 봉우리의 솔방울도 딸라아면 따다줄테니까!』
「미스터」 강은 눈알을 궁굴리며 말했다.
집에 돌아와서 생각하니 그가 나한테 솔깃한건만 같았다. 처음에는 그 생선 눈깔같은 두눈이 싫더니 친절을 베풀려고 애를 쓰는 그가 차츰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에게서 팔목시계를 하나 얻어 해야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으나, 맞대놓고 사달라는 말은 하기가 싫어 내딴에는 연극을 꾸미었다.
그날 「미스터」 강은 자기의 사무실도 알겸 다섯시 반에 XX「빌딩」 삼층에 있는 사무실로 와 달라고 했다.
나는 싸구려 영화와 「뮤직홀」에서 하루해를 보내고 내 시계로서는 정각 다섯시반에 그의 사무소로 찾아갔다. 그 시계는 본래 고물을 싸게 산건데, 가다가 쉬고 쉬었다가는 또 가기 때문에 삼십분 혹은 한시간, 때로는 오정 「싸이렌」이 날 때, 열시를 가리키는 일도 있었다.
「빌딩」 옆의 시계방 표준시간은 여섯이 이십분을 가리키고 있었으니, 오십분은 지각한 것이었다. 「뮤직 홀」을 나올 적에 내 시계가 이미 그만큼 느리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일부러 정확한 시계를 표준하지 않았다.
사무실 「또어」를 「노크」하니
『들어오시요!』
하는 귀익은 「미스터」 강의 쉰 목소리가 들렸다.
「또어」를 열고 들어서니 전화가 놓인 큰 「테불」 앞에 머리 위로 밎어 나오는 회전 의자에 깊숙이 기대앉은 「미스터」 강의 얼굴이 바른편에 보였다. 그밖에도 책상들이 대여섯 있는데 사원은 이미 퇴근했는지 없고 문턱에 열칠팔세 되는 남자사환 학생이 앉아 있었다. 「미스터」 강의 책상 위에는 무언지 서류같은 것이 잔뜩 늘어 놓여있었다.
『늦었구려! 볼일이라도 있었오?』
「미스터」 강은 회전의자에서 고개를 들며 빙긋이 웃고 있었다.
『지금 정각 다섯시반인데요?』
나는 옆의 소파에 앉으며 내 시계를 태연스러이 보았다.
『여섯시 삼십분이 지난걸!』
하며 「미스터」 강은 큼직한 팔목시계까 달린 왼손을 내 앞으로 뻗어 보이며 보라고 한다. 나는 일부러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고
『아마 내 시계는 다섯시 반인데?』
하고 능청을 부렸다.
「미스터」 강은 시간이 늦은데 대해서는 그 이상 별 말이 없고, 딴 애기를 했다.
『좀 더 큰 사무실로 옮겨야겠는데…』
하며, 책상위의 서류들을 정리했다.
내가 보기에는 스무평 가량 되는 꽤 넓은 사무실이었다.
그 다음날은 종로의 어느 다방에서 여섯시에 그와 만날 약속을 하였는데, 역시 알면서 사십분쯤 늦게 도착했다. 이때도 그는 조금도 기색을 나쁘게 안가졌다.
『고물상에나 시집보내야 할 시계구먼』
하고 웃기만 했다.
나는 그 때 상당히 마음이 유한 사람으로 보았다. 그는 곧 다방 전화로 늘 타고 다니던 자가용을 불렀다.
차에 오르자 나는 남산으로 가자고 했다.
서울 장안을 눈아래로 내려다 보며 땅거미진 남산허리를 돌아갈 적에 팔목 시계를 끌러 「찝」차 창밖으로 내 던졌다.
『아니, 무얼 던졌소?』
그가 묻는다.
『시계요.』
『아니, 왜?』
그는 눈이 땡그래진다.
『두번이나 시간을 못지키게 한 그런 시계 두었다 무엇해요. 「미스터」 강은 속으로 나를 퍽 욕했을거 아니냐요?』
정색하며 말했다.
『그래도 시계를 그렇게 버리면 되오?』
그는 시계가 떨어진 남산 기슭 숲을 돌아다 보았다.
『여태 잘가던 시계가 갑자기 그러지 않어요. 그런 시계는 나는 견질 수가 없어요. 성미가 이상하죠?』
나는 웃었다.
『이봐, 운전수, XX백화점으로 가요?』
잠시 후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도 이럴때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미지요, 빈 팔목을 보고 그냥 있다니요, 당장 사야지?』
백화점에 들어서자 그는 한오천원짜리 시계를 사고 싶은데, 현금 가지고 나온 것이 없다 하며 이천오백원짜리 시계를 사서 나에게 주었다.
그날밤 집에 돌아와서 잠자리에서 그 시계를 두 손아귀에 움켜 쥐고 요리보고 저리보며 웃음이 나와 못견디었다.
그후 어느날 낮에 명동거리를 지나가다가 한 양품점 「쇼윈도」에 맘에 드는 「핑크」색 「세타」가 있었다.
그날 저녁에 「미스터」 강과 「데이트」를 했을 때 명동을 산책하자고 그 양품점 앞으로 끌고갔다.
『잠깐 저 「세타」 좀 구경하고요?』
나는 우연히 발견한 듯이 진열장 속을 들여다 보았다.
『저런 「세타」 나한테 어울릴까요?』
마치 그의 판단을 기다리는 듯이 물었다.
『어울리겠는데요.』
이렇게 말하자 그는 덥석 덥석 안에 들어가더니 천오백원을 주고 그 「세타」를 샀다. 나는 자기의 꾀에 속으로 혓바닥을 내밀었으며, 한편으로는 그만큼 진호의 그림자가 희미해 지기도 했다.
이 두개의 선물을 본 양부는 매우 좋아했다. 양부는 과거 어느때보다 나에게 친절했다.
『진호하고는 절대 만나지 마라!』
양부는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