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가톨릭신자도 성경을 읽는 경향이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기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직도 프로테스탄 신자와 대담을 해본 사람이면 가톨릭신자의 성경지식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곤 한다. 그러기에 어느 프로테스탄이 가톨릭신자 가정을 방문하여 성경이 있느냐고 물은 즉 공과책을 가지고 나오더라는 이 창피스러운 「넌센스」가 이상할 것 조차 없겠다. 그처럼 가톨릭은 성경독서를 교리나 신심서적 속에서 권고할분 실제로는 아직도 성경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리라.
聖經讀書現況
그렇다면 실제적으로 가톨릭신자의 성경독서 경향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아래에 드러난 현상은 가톨릭대학 종교사회학회가 1964년도 7월부터 8월에 실시한 신자생활의 여론조사 결과이다.
대상자 2천명중 응답자 693명의 반응이 나온 일반신자 실태조사와 전국학련(全國學聯) 부산대회 대표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64년 7월 26-31일 실시) 및 가톨릭계 고등학교의 가톨릭학생조사(64년 5월-8월 실시)에서 나타난 현상을 비교해가면서 분석비판해 보기로 한다.
■ 20$ 넘지 못한 聖書讀書熱
제1도에 분석도시한 바와 같이 일반신자의 신약성서 독파자(讀破者)는 23.5%밖에 되지 못한다. 남자 30.6%에 비해 여자는 17.0%밖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응답빈도가 한국 가톨릭신자의 총체적인 평균비율로 생각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는데 더욱 실망이 커질 뿐이다. 왜냐하면 신자 실태조사에 응답한 이중 거의 40%가 어떤 부분의 가톨릭활동 단체에 참여하고 있는 열심한 부류의 대상자였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현상은 성경보유자 비율에서도 동일한 비판을 해야 되겠지만 여하는 사도직에 참여하고 있는 신자들조차도 성경과 친숙치 못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래도 성경을 읽을 수 있고 독서 양도 남달리 많을 고등학교 학생들의 응답현황도 별 수 없다. 즉 성서독파자가 11.1%밖에 되지못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대학생들의 경향을 살펴보자.
사복음 독파자가 남자 53.9% 여자 42.9%로서 합계 49.5%의 응답빈도를 나타내고 있다. 물론 일반 교우보다 그리고 고등학생보다 훨씬 높은 비율을 나타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학생이요 또한 가톨릭운동의 선봉에 나선 전국대의원들이라는데 문제는 달라지는 것이다. 여하튼 학생 대표들도 50% 이상 성경을 읽지 못했으니 일반학생들의 비율도 짐작이 갈만하다. 이 사실들은 이미 먼 옛날부터 지니고 내려온 드러나지 않았던 가톨릭의 적신호였던 것이다.
■ 聖經 꼭 읽어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가톨릭은 성경을 꼭 읽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나온다. 성경독서가 문답과 같이 교회입문에 필수조건이 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신앙생활에서 체험하고 있듯이 성경을 읽지 않았다고 신자의 윤리생활이나 예전적 성사에 참여못할바도 아니며, 평신도사도직 참여를 못할바도 아니다. 성경이외에라도 우리는 교회의 일반서적과 친근해질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상 교회는 성경보다 먼저 있었고 모든 예전은 성경으로 짜여있으며 또한 성경을 모르고도 훌륭한 신앙고백을 한 이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는 역사적으로 볼 때 무궤도한 성경독서에서 오는 피해를 체험한 교회는 때때로 어떤 선의의 우려에서 제한마저 가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읽을 필요가 없는 것일까? 우선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응답자 자신들이 간접적인 반대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즉 신앙생활에 기도서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응답한 자는 불과 16.5%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질문이 요구하는 응답이 반드시 성경을 필요로 한다는 태도라고는 전적으로 믿을 수 없겠으나 질문의 차서가 성경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기에 성경독서의 필요성도 간접적으로 표시하고 있다. 다음 질문에선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신부의 강론__으므로 복음성경 읽는 것은 그리 중대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느냐의 질문에 아니라고 응답한자가 75.9%나 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크리스챤들에게는 극히 초보적인 문제에 속하리라. 프로테스탄과 같이 신경질적으로 성경을 파고들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들처럼 자기 멋대로의 해석을 가하고 도취하는 따위의 성경독서 태도도 용납되어질 수 없다. 교도권을 가진 교회가 있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가톨릭 측에선 여유있게 안심하고 읽을 수가 있는 것이다.
■ 啓示眞理의 源泉 聖經과 聖傳
교리신학의 간략한 대집성인 문답도 이 진리의 원천에서 나왔다. 그러기에 진리의 원천과 대면하는 것은 흔히 딱딱한 교리문답에서 상실된 종교적 정서와 신비를 가져다준다. 계시된 글을 읽는 자는 적어도 신의 영감을 받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예전이나 믿음을 통해 이미 성경이나 성전의 산 전통 속에 살면서도 계시의 원천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대할 때 흔히 대하기 힘든 부분이 바로 성전인 것이다. 이는 방대한 고문서 속에 간직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와 얼마든지 친밀해 질 수 있다. 아니 친밀해져야 한다. 메마른 신앙의 유산에 신적인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 성경을 외야하는 것이다. 의무 이행에 턱걸이하는 메마르고 인색한 신앙에서 탈피하여 사랑으로 치솟는 윤택한 믿음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 하겠다. 작은 꽃 예수의 영해 데레사 성녀가 난해한 신심서적에서가 아니라 바로 단순한 복음성경에서 성덕의 신비를 찾았다는 것은 오리혀 당연한 일인 것이다.
■ 聖經과 信仰生活
흔히 가톨릭신자들 보다는 프로테스탄 신자들 간의 대화가 훨씬 더 복음적인 것을 느낀다.
그 이유는 어디 있을까? 물론 유창한 개인기도의 훈련에서 오는 익숙한 화술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무심히 넘겨버릴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경을 가톨릭보다는 열심히 읽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번 「바티깐」 공의회 제3회기에서 「마인쓰」의 폴크 주교는 성경은 진리의 원천일 뿐 아니라 천주와 인간의 인격적인 대화이며 신앙은 다만 지적 행위가 아니고 천주께 대한 전인적(全人的), 봉헌임을 강조하였다. 그렇다. 성경속에서는 성령을 통한 천주와의 인격적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들의 복음적 대화의 비결은 바로 이점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 가톨릭진리의 옹호자인 가톨릭의 자녀들은 바로 그 전리와의 대화가 왜 이다지도 서투를까?
어떤 이는 가톨릭의 예전은 복음적이기 때문에 성경독서가 그다지 중요치 않다고 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에전이 복음적이라는 것과 복음적인 믿음이 민중에 스며들어야 한다는 것과는 문제가 달라진다. 지난 날의 예쩐이 민중의 대화를 복음화시키기까지에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예전개혁의 촛점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느냐- 그렇다면 예전이 개혁되니까 복음은 읽을 필요가 없을까? 어불성설이다.
준주성범 네째매 11장에 보면 『당신은 연약한 내게 성체를 영신과 육신의 양식으로 주시고 또 당신 말씀을 내발의 등불로 두셨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바로 천주의 말씀을 읽는 것이야말로(성경봉독) 영혼의 양식인 성체를 영하는 것과 거의 동등한 비중에서 그 중대성을 강조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교회, 믿음이 발전은 입체적이어야 한다.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는데 있다. 또 하나의 생생한 천주와의 인격적 대화를 거부해야 한다는 심정은 근본적으로 비그리스챤적이다. 복음성경은 읽어야 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나라의 교우들의 독서현황은 복음성경을 한번 읽어본 자가 30%도 안된다. 50%나 되는 복음성경을 한번도 읽어보지 못한 학생대의원들이 통합의 광장 프로테스탄과의 대화의 광장에 나갔다는 것은 지극히 유감된 일중의 하나이겠다. 다음은 왜 이렇게도 가톨릭이 복음과 떨어져야 했던가 그 이유의 일부를 살펴보겠다.
親熟할 수 없는 理由
■ 聖經과 親熟한 者
웬만큼 교양있는 이는 자기가 숭배하는 특정한 인물의 전기나 서적쯤은 서가에 꽂아놓기 마련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마음의 샘터」는 서가에 꽂혀있어도 복음성경이 없는 가톨릭가정은 드물지 않게 눈에 띄었다. 인간적인 숭배의 도를 넘어서 자기가 신앙하는 그 분의 전기도 되며 교훈서도 되는 성서 한권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성경을 가지고 있는 자는 일반신자가 42.8% 고등학생이 46% 대학생이 72%이었다. 이 현상에서 성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난다. 성경을 가끔 읽는다고 응답한 이는 36.2%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반신자의 경우) 그러나 이 비율지수에서도 어쩔 수 없는 에누리를 강요당한다. 일반신자의 비율은 총체적인 가톨릭인구의 비율이 못되기 때문이다. 우선 가톨릭에서 출판한 복음성경 발행부수가(신약성서) 이 비율을 허용치 않는다. 그리고 응답자의 40%가 평신도 사도직에 참여하는 열심한 사람들이라는 것도 고려에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 푸대접 받는 聖書
일반신자의 입장이 아닌 학생들의 경우를 보자. 대학생의 경우 72%는 꽤 많은 숫자임에 틀임없다. 그렇다고 28%나 차지하는 비보유자의 비율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학생대표에 있어서 이런 정도라면 일반신자나 고등학교 학생에서 나타난 현상은 결코 이상할 바도 아니겠다. 그들의 서가에는 많은 전문서적들이 꽂혀있으리라. 시중의 일반 잡지도 수두룩할지 모른다. 문답과 기도서 정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복음성경은 없다. 이렇게 푸대접 받아야 할 것이 성경일까? 물론 성경만 있다고 성경을 읽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마저 없으면 어느때고 메아리칠 주님의 부르심에 가장 쉽사리 응답할 수 있는 기회는 아깝게도 번번히 놓치는 셈이 된다. 일반 지성인이면 비록 비크리스챤이라도 성경 한번은 본다고 한다. 왜냐하면 서구문화의 숱한 영향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는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최소한도 기독교문화의 발상원천인 성서는 한번 보야아 한다는 데서 그렇다고 한다. 하물며 믿음마저 가진 크리스챤의 입장에서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말이다. 서가를 장식하기 위해서라도 성경 한권쯤은 꽂아놓는 것이 오늘날의 유행이 아닌가.
■ 80年間 겨우 5萬 發行
그러나 이처럼 가톨릭이 복음과 친밀치 못한 이유는 있다.
첫째, 가톨릭에서 발행한 성경부수는 신자들의 수요에 충족시킬 만한 숫자가 되지 못한다. 복음출판 현황수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국 가톨릭에서 발행한 총 부수는 발행부수가 확실한 부수가 2만4천부 발행미상판 부수를 1만5천부로 추산한다 해도 4만부를 넘고 있지 못하며 이 조사에 나타난 연도 이전의 발행부수를 1만부로 추산한다 해도 5만부가 넘지 못할 것이다. (이상은 가톨릭 출판사에 조사의뢰한 보고 숫자이다). 그러하다면 현 한국의 가톨릭 인구 63만명에 비례하면 약 8% 정도 밖에 되지 못하며 12중에 복음성경 한권꼴이 된다. 그러므로 질문서에 나타난 42.8%는 성경 보유 가능자(어린이 혹은 문맹을 제외한) 간의 비율로 계산한다 하더라도 실제 비율은 훨씬 떨어질 것이다. 이처럼 복음성서 보급이 되어있지 않고서야 어찌 신자들로 하여금 복음과 친군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 遙遠한 出版布敎 疎忽한 讀書啓蒙
이상과 같이 가톨릭 인구에 대한 10%도 못되는 성경발행 부수를 가지고서는 성경을 통한 복음화는 요원한 장래에나 기대될 성질의 것이다.
둘째, 또 한가지의 이유를 든다면 가톨릭에선 복음을 읽도록 자극을 주지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JOC나 레지오 마리에 등 평신자 사도직 전체에서는 연구도 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신부의 강론을 통해서도 그리 강조되고 있지 않다. 각 지방의 교회사정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으나 6.7%의 교우들이 어떤 기회를 통해서든지 복음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조받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와같은 내면적인 이유가 성경과 가톨릭이 멀어진 원인으로 본다.
세째는 가톨릭 신자들의 빈곤, 이에 따르는 시간의 부족도 들 수 있으나 이는 그리 큰 이유는 못되리라 믿는다.
■ 結論
복음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만인에게 말씀하신 천주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한 양식에 지나지 않으므로 성경 지상주의의 프로테스탄의 정책을 답습할 필요는 없다. 사실상 지나치게 과잉 난발하는 프로테스탄의 성경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성경의 존엄성을 상실할 염려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가톨릭의 성경발행실태는 확실히 반성할 점이다. 그리고 아무리 성경을 읽는 것이 하나의 방법론에 불과하다고 하여도 현대사조의 추세에 동떨어져도 안된다 또한 성서를 아무리 다량으로 발행해도 신자들이 이를 구입치 않을 때 다시말하면 성경구독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든가 이 필요성의 인식을 교회가 적극적으로 시키지 않을 때 수요와 공급의 「발란스」가 맞지를 않아 결코 성경발행부수가 올라갈 수 없다. 가톨릭의 성서발행부수가 낮은 원인도 바로 이점에 있겠다.
성경은 읽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제의를 시도해 본다.
첫째, 교회는 교우들이 성경과 친밀해 지도록 적극적인 계몽을 해야한다.
둘째, 좀더 구체적으로 교회는 성경과 친밀해 질 수 있는 기회와 방법을 제기해 주어야 한다.
세째, 그 결과로 나타나는 상승하는 수요에 원활한 공급을 하도록 성경발행부수를 높여야 한다.
네째, 성경은 보다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도록 발행해야 한다.
이 길만이 현금 멀어진 성경과의 거리를 단축시키는 첩경이 될 것이다.
(文責在 李鉉益)
가톨릭大學(대학) 宗敎學會(종교학회) 提供(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