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週(금주)의 聖人(성인)]「다마스고」의 성 요안
(증거자, 학자 3월 27일)
발행일1965-03-28 [제464호, 2면]
▲요안은 먼저 「다마스고] 시장이었다. 관상생활에 끌려 수도원으로 들어갔으나 교회 안에 신자들의 공경을 위해 모셔둔 성화와 성상 파괴를 명한 네오 이사우리오 황제와 붓과 말로 싸우기 위해 가끔 수도원에서 외출한 바 있다. 그는 8세기 중엽에 죽었다. 복음과 초입경과 제헌경영 성체경은 이 성인의 전설을 기억케하는 것이다. 모함을 입어 고소되어 그는 오른손이 짤리는 형을 받았다.
그러나 이 손이 기적적으로 발견되었고 성모의 전달로 완쾌되었다. 축문들은 신자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교회에서 언제나 허가한 성화 성상의 공경의 정당성을 암시한다.
▲성 요안 가비스드라노(증거자 3월 8일)
성 요안은 법률 공부를 한 후 먼저 「페루사」의 시장이 되었고 그의 가난한자와 불쌍한자에 대한 사랑으로 유명했다. 그는 30세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들어갔고 그의 일생은 그때부터 이태리 독일 오지리 파란 헝가리 등지에 끊임없이 두루 다니면서 설교가로서의 일을 했다.
그때 신자들이 갈려져 있었다. 「플로랑스」의 공의회(1438~1445)에서 성 요안은 교회일치를 재현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 쏟았다. 「콘스탄티노풀」에서 오는 무술만의 침입이 항가리와 그 외 중구라파를위협했을 때 많은 기적이 동반한 그의 설교는 토이기군대의 행진을(1456년 7월 14일) 「벨그라드」 앞에서 멈추게 한 신자들의 용기에 힘을 주었다. 그는 그 후 몇 달 후 즉 1456년 10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이날의 미사 「텍스트」는 요안이 천주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 일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십자가의 설교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