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향] 4월
발행일1965-03-28 [제464호, 2면]
■ 일반 의향
모든 이가 교회사업에 수도자의 중요성을 이해 할 수 있도록…
제2차 「바티깐」 공의회 제3회기 전부터 수도자들의 문제와 교회에 있어서의 그들의 위치를 취급 해왔다. 바르건 그르건 다만 수도원의 문제에서 뿐만아니라 수도원에 있는 수도자들에게 주어지는 교육이나 현대 세계의 이해와 접촉의 더 근본적인 문제에서 많은 「아죠르나멘도」(적응성)가 우리 시대에 요구된다는 것을 많은 이가 드러나게 느끼고 있는 형편이다. 수도회에 대하여 비판이 없지 않다. 밖에서는 수도생활이 비겁자의 도피소 세속에서 불어오는 큰 바람을 막는 피난처라고 한다. 신부들도 같은 비판을 할 수 있다. 『수도자는 청빈서원을 발하고 재속 신부들과 평신도는 그것을 지킨다』는 농도 있다.
어떤 때 호화로운 수도원에 대한 비판은 『요안세자가 와서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유데아인들이 「부마했다」하고 예수는 와서 먹고 또 마시매 저들이 「이 사람이 먹기를 탐하고 술을 즐기며 세리들과 사귄다」』고 지적한 그리스도로부터의 반영에서 생긴다.
명확히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균형이요 현실이다. 수도자와 교구신부 및 평신자가 서로의 부족을 볼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이가 필요로 하는 「아죠르나멘드」를 위해 다 같이 일할 수 있는 균형과 현실을 찾을 것이다.
■ 전교지 의향
아프리카의 사제들이 그들의 말과 표양으로 그들의 백성을 전보다 더 가까이 그리스도께 끌어 당길 수 있도록…
우리는 신부들과 학생을 위해 가끔 기구한다. 예컨대 이달의 전교지방 기구 의향처럼 우리는 전체로 본 천주의 백성을 위해 가끔 기한다. 그러나 이달의 우리의 일반 기도 의향은 수도자에게 집중된다. 『우리 모든 이가 교회의 사업에서 수도회의 중요성이 이해되기를』하신 성하의 말씀대로 이 기도에서 수도 생활이 바르게 이해되고 존중시되도록 빌자.
1840년 3명의 아프리카 신부가 있었고 1940년에 3백명, 1950년에 2천5백명이 있었다는 사실은 아프리카가 정치적 및 사회적 의식에서 뿐만아니라 종교적인 의식에도 놀랄만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산 증거이다.
민족주의와 신생국가의 흥분된 분위기 속에서 분명히 많은 교회의 장래는 강한 교육을 받은 아프리카 성직자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달 기도는 아프리카 신부들을 위해 바쳐진다. 그리하여 그들이 아프리카인들을 천주의 나라로 이끌 수 있는 생활한 「메시지」를 발견 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아프리카의 교회는 구라마만큼 오래 된다. 그리고 전에는 지금보다 비교해서 더 큰 바 있었다. 많은 아프리카신부 가운데 성 치브리아노, 성 아오스딩 등 교회박사 중 일급에 속하는 분들도 있다. 「로마」 박해와 그 후의 야만침입의 종결 후 있었던 발전이 마멜호의 정복과 점령으로 삽시간에 끊어져 버렸다. 그러나 완전하고 방법적인 전교사업이 19세기까지 참으로 진행되지 아니했다. 1840년, 3명의 세네갈 신부의 서품이 현대의 첫 아프리카 사제였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과거 5년 동안 특히 급속적으로 발전이 있었다.
현재 아프리카에서 신부 한분이 만명의 신자를 책임지고 있으며 가톨릭 인구는 전체 인구에 비해 10분지1밖에 안된다. 아직 80% 즉 만명의 선교사가 아프리카에 전교하고 있다. 신부 수가 아직 적음에 비해 할일은 많다. 아프리카 교회의 당면문제는 확장과 적응의 두 가지 문제이다. 아프리카에서의 많은 신생국가에서 그 본 위치를 발견해야 할 교회에 매우 필요한 문제이다.
인간적으로 말해서 아프리카의 교회의 장래는 그들 주교들과 신부들의 열성과 시대의 회의와 움직임을 이해하는데 달려 있다. 왜냐하면 오늘의 발전은 앞으로 교회를 지지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위치에 두는 장래를 결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안에서 또 공의회에서 아프리카의 주교들과 신부들은 그들의 큰 책임을 각성하고 있다. 그들이 우리의 관심과 기도의 지원을 얻어야 할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