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上聖路巡禮(지상성로순례)] 십자가의 길은 생명의 길
천주가 인간안에 인간이 천주안에 하나로 못박혀
발행일1965-03-28 [제464호, 3면]
■ 제11처 예수 십자가에 못박히다
주여! 이제 당신은 수족(手足)을 펴고 아득한 하늘을 우러러 십자가위에 누웠읍니다 당신 소원의 십자가, 성부 마련하시고 그의 뜻이 이루어질 이 제단위에 순결한 제물의 고양(羔羊) 이 되어 겸손되이 누웠읍니다.
마지막 남은 목숨을 아낌없이 바치기 위해서입니다.
피 한방울도 남김없이 세상을 위해 흘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주여, 당신의 죽음은 너무나 처참합니다. 형리(刑吏)들은 무자비하게 당신을 못박습니다.
『쾅!쾅!』 지옥의 심연까지 울려 퍼질 저 둔탁한 망치소리! 쇠못은 사정없이, 고통으로 경련을 일으키는 당신 손발을 꿰뚫었습니다. 선혈(鮮血)이 샘솟듯 흘러내립니다! 우리 죄를 씻고 온땅을 새롭게하는 생명의 피가 넘쳐 내립니다.
주여 어찌 당신은 이렇게까지 처절한 제물이 되서야만 하였읍니까. 당신목숨과 피를 바쳐까지 우리를 살리시려는 것입니까?
주여, 당신 모친이 참혹히 우십니다. 우둔한 마음도 슬피 통곡치 않을수 없읍니다.
당신의 죽으심이 너무나 처참 하여서입니다. 우리의 죄가 진정 망극하여서 입니다. 성부여! 의노를 푸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 아드님의 이 처절한 고통을 굽어 보사 우리 죄를 용서하소서!
여기 천주께서 인간안에 인간이 천주안에 하나로 못박혔다. 이 지극한 사랑의 일치화합(一致和合)! 천주님이 사랑때문에 인간에게 희생되셨고 인간이 이 사랑에 보답하는 제물(祭物)로 천주께 바쳐졌다.
그리스도교는 결코 고통(苦痛)을 찬미하는 종교(宗敎)는 아니다. 그러나 분명 고통에 의미를 주는 교(敎)이다. 그것은 결국 사랑이다. 『천주께서 나를 위해 먼저 고통을 받으셨다. 그렇다면 나 어찌 천주를 위해 내 고통을 바칠수 없으랴!』 여기에 그리스도교의 의미가 있다. 사실이 보다 더 큰 사랑의 교류(交流), 이 보다 더 고귀한 신학이 따로있을 수 없다.
주여!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여! 당신의 이 지극한 고통의 원인된 나를 용서하소서! 당신과 함께 나를 못박게하여 주소서! 매일 매시간 매순간에 주어진 나의 십자가에 나를 온전히 못 박게 하소서!
■ 제12처 예수십자가에 죽으시다
주여, 이제 당신은 허공에 드높이 매달렸읍니다. 사지(四肢)를 찢어내는 죽음의 고통이 서서히 그러나 정확히 당신 심장으로 몰려듭니다.
그러나 주여, 이 극한 상황에서까지 당신은 어쩌면 당신을 못박고 희롱하는 원수들까지 사랑하실수 있읍니까? 『성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대개 저들이 그 행하는 바를 아지 못함이니다』(루까 23장 34절)
주여, 당신의 사랑은 너무나 깊고 너무나 크옵니다.
어찌하여 『이(齒)를 이로, 눈(眼)을 눈으로』 갚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하늘로부터 불칼을 내려치게 하시지 않습니까?
주여, 나와 나의 형제들을 용서하소서! 당신을 이렇게 참혹히 죽게하는 우리 죄를 용서하소서!
당신 고난의 십자가 아래 성모님과 사랑하시는 제자 요왕이 슬피울며 서있읍니다.
그러나 당신은 어머니를 제자에게 모친으로 의탁하시고 제자를 어머니께 당신을 대(代)하는 아들로 맡기심으로(요왕 19장 23~27절) 그들을 오히려 위로해 주셨읍니다. 당신 스스로를 위해서는 가장 가까운 이 두사람의 사랑과 위로마저 끊으셨읍니다.
만인을 자기와 같이 사랑하면서 아무도 자기를 위해서 남기지 않는 이 철저한 희생, 주여, 너무나 가혹한 일이옵니다.
홀로가 되시기 위해서 입니까? 홀몸에 인류 전체의 죄를 지시고 혼자서 정부의 의노앞에 나아가기위해서입니까?
진정 아무도 이시간에 당신을 도울수는 없습니다. 당신 아닌 어느 누구도 지극히 의로우신 성부대전에 우리를 대변할수는 없읍니다.
그러나 주여! 이 죄는 우리의죄 나의 죄가 아닙니까?
어찌하여 당신이 모든 책임을 지시는 것입니까?
당신의 죄목(罪目)은 사랑, 남을 위해 온전히 당신을 바치시는 그 사랑뿐입니다.
너무나 지나치게 끝없이 사랑하신 것이 당신의 죄입니다.
주여, 웬일입니까? 당신 위에 어두움이 깊이 내려쌓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삽박다니!』
『내 천주여! 내 천주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마테오 27장 16절)
주여! 성부마저 당신을 버리셨읍니까? 당신을 홀로 이 참혹한 죽음안에 내버리셨읍니까?
아! 이 절망! 하늘과 땅, 온 천지가 암흑의 심연으로 무너져 내리는 이 처절한 운명!
주여! 이제 당신은 누구에게도 버림받았읍니다.
그 엄하신 심판대앞에, 전 인류의 영생과 영벌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이 심판대 앞에 당신을 대변할자 아무도 없읍니다.
아담에서 비롯하여 세말에 이르는 모든 인간의 죄악과 저주를 지고, 그 보속의 죽음 앞에 당신은 홀로 외로이 서있어야 합니다. 순간이 억겁(億劫)으로 통하는 이 임종의 고통 가운데 주여 당신은 세시간, 아니 이 세상이 마치는 날까지 버려져있읍니다.
그러나 주여! 당신의 사랑이 모든것을 참아가십니다. 성부께 대한 사랑과 우리를 마지막까지 남김없이 구하시려는 그 일념에 당신은 모든 고통을 지탱하십니다. 이 사랑이 당신 심장의 마지막 숨결까지 불태워갑니다. 타들어가는 촛불처럼 당신 목숨은 시시각각으로 조여 듭니다.
『마쳤다』(요왕 19장 30절)
앗! 하늘이 찢어지는 이 외마디 부르짖음!
마쳤다. 모든것은 끝났다. 태양이 떨어지고 암흑이 천지에 찼다. 그리스도는 죽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승리의 환호였다.
선(善)과 악(惡)의 생사를 가리는 전투가 끝나고 구속사업이 완성되었다.
주여, 당신은 이기셨읍니다. 죄악과 죽음을 쳐 이기셨읍니다. 영원하고 절대적인 승리, 새생명, 새인류, 새역사가 여기 당신의 죽음에서부터 탄생하였읍니다. 새로운 태양이 솟아오릅니다. 영원과 시간을 가로막는 장벽이 무너졌읍니다. 인종과 계급을 가르는 불의(不義)의 장막이 찢어졌읍니다. 삶이 의미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썪을 육신이 죽고 영원한 불멸의 생명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주여 쉬소서! 당신의 사명이 이루어졌습니다.
『성부여 내 영혼을 네 손에 맡기나이다』(루까 23장 46절)
주여,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여! 나로 하여금 당신을 위해 죽게 하소서! 온 세상을 위해 죽게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과 함께 나와 나의 형제들이 영원히 살게 하소서! 밀씨가 땅에 떨어져 썪으면 많은 결실을 맺게 된다.(요왕 12장 24‧25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