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90) 過去(과거)와 現在(현재) ②
발행일1965-03-28 [제464호, 4면]
승우와 그렇게 헤어진 내 기분이 조금도 무겁지 않고 오히려 무엇인가 짐 하나를 던진것같이 가쁜한 것은 무엇 때문인지 몰랐다.
내 마음 속에는 어떤것이 자리를 잡고 있는 듯했다.
생활에 급급했던 내가 돈을 박찰수 있었던 탓인지도 몰랐다.
전의 나 같으면, 승우가 준 그 수표를 「백」 속에 넣었을 것이었다.
돈 속에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느끼고 있던 나는 그돈이 비록 나에게 수치스런 것이라도 상관하지 않았었다.
나는 내 자신의 이러한 내부의 변화를 스스로 발견하며, 그것이 어쩐지 흐뭇했다. 내가 얻은 하나의 힘을 느꼈다.
그리고 내 마음의 광장에는 진호의 얼굴이 과거 어느때 보다도 커다랗게 확대경속의 인물모양 비치었다. 모든 이성, 모든 사람의 얼굴 대신 진호 하나만의 얼굴이 무한히 그리운 영상이되어 나를 감싼다.
나는 다리를 절룩거리는 진호를 마치 한개의 대용품 같은 위치에 두고 있었다. 좀더 결혼조건이 나은 남성이 나타나면 진호의 존재는 금방 잊었다.
그렇다고 진호는 조금도 질투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지도 않았고 나무라지도 않았다.
진호의 조금 성난듯한 그 표정과 쓸쓸해 보이던 입가의 웃음이 내머리에서 교착했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이해하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진호가 새삼스러이 나의 눈에 잡힌다.
그에게는 나를 변명 할 필요도 없고 잘보이려고 허식할 필요도 없었다. 있는 그대로 알고 있고, 있는 그대로서 그는 사랑이 담긴 시선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진실한 사랑이란 그런것이 아닐까?)
나는 마치 목마른 나그네 길에서 맑은 샘물을 발견하듯 했다.
그 길로 진호네 집으로 달려갔다. 진호는 과외 공부 시키려 나가고 집에 없었다. 과외수업 하는 집을 알 그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와의 대화는 이분 이상 끌수가 없었다.
『과외수업 언제 끝나죠?』
『두시간 후에.』
『오늘만 빨리 끝내고 나하고 얘기 할수 없을까요?』
『………』
진호는 지긋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으로 내 마음을 읽고 있었다.
『…진호씨 하고 둘이서 천천히 걸으면서 얘기하고 싶은 밤이야요.』
『열시에 끝나거든 납시다… 아이들의 공부를 희생할수는 없으니깐!』
『그럼 열시에 이집 문깐에 오겠어요.』
나는 일단 집에 돌아와서 시간을 맞춰 집을 나섰다.
양부는 밤늦게 어딜 가느냐고 의심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적당히 거짓말을 하고 나왔다.
『승우씨와는 어떻게 되었어요?』
진호는 한참 걷다가 나를 보지않고 물었다.
『흐지부지 됐어요. 승우씨의 얘기는 하지 말고 우리 둘의 얘기만 하십시다』
나는 이렇게 말하며 진호에게 매달리듯이 팔을 끼었다.
진호는 조금 놀란듯이 어쩔줄을 모른다.
『내 마음의 벗은 진호씨 한사람뿐이야』
나는 어둠속에 반짝 이는 주택지의 불빛을 바라보며 나로서는 조용히 말했다.
『「미스」양을 이해해 줄만한 사람이 나절만한데, 왜 그리 쉽지 않을까? 장래의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아끼며 위로하는 듯한 말이었다.
그는 나에게 어디까지 나 오빠 같은 사랑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의 마음이 금했다.
『이젠 억만장자의 아들이 「프로포즈」 한데도 난 흥미가 떨어졌어요.』
『……왜?』
진호는 어둠 속에서 내 표정을 살폈다.
『진호씨는 누구보다도 나를 잘아시지않아?……』
우리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흐르고 돌바닥 길을 걷는 두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나는 「미스」양을 이해해. 「미스」양의 걸어온 길도 잘알아! 「미스」양에게 잘못이 있었다면 그것은 환경의 죄야. 그렇다고 자신을 아무렇게나 내 던지면 안되요. 나는 어제 우연히 어딜갔다오다가 산길을 걸었더니 돌틈에 들국화가 탐스럽게 핀걸 보았어! 한줌 밖에 안되는 메마른 돌틈의 모래흙에 뿌리 의지하고 핀 그 꽃을 보고 놀랐어, 나는 온실이나, 혹은 기름진 장에서 잘핀 꽃보다 그 국화 한송이가 무엇보다도 갸륵해보였어요… 내말뜻 아시겠어요?』
『……』
나는 대답대신 그가 말한 돌틈에 핀 꽃을 머리에 그리고 있었다.
『… 그 꽃은 개물에 핀것은 아닐거야, 좁은 돌틈에서 피어나려고 무진 애를 썼을거야.
몇번이나 시들번 한 고비를 넘어 천신만고해서 꽃을 피운것이 아닐까? 나는 시물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데 식물은 꽃을 피울때는 온힘을 다한다고 했어요.』
『나는 그들의 들국화만도 못하죠?』
조그맣게 입속에서 나는 중얼거렸다.
『「미스」양은 전에 비하면 훌륭해! 많이 달라졌어?』
『라진것 없어요. 다만 조금 달라졌다면 돈 있는 곳에 인생의 빛이 있다는 생각은 좀 바뀌어졌어요.』
『내가 「미스」양을 칭찬하고 싶은 점은 딴 사람이 못하는 용단성이 있는것… 「미스」양만한 나이와 용모와 교양을 가진 여성이 감히 거리의 구두닦이로 나시겠어? 「미스」양은 그것을 했어!』
『그것은 「빠」에 나가서 돈을 많이 벌어오기를 바라는 양부에 대한 하나의 반발이었을 뿐이야요.』
『아니야 단순한 반발로만 되는것이 아니야…』
『승우씨가 돈 오천원 주는거 안받고 그의 호주머니에 도로 넣어주었어요.』
나는 진호에게 칭찬 받고 싶은 마음에 말했다.
『「미스」양은… 확실히 달라지고 있어…』
『나는 지금도 내 자신을 아뭏게나 내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요. 세상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니 않으니 말이야요.』
『알아주지 않는다니?』
『나의 출생에 얽힌 과거가 나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만 같애요.』
『그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큰 방해꾼이 아닐까?』
『………』
『…주께서 주신 생명인데 왜 자신의 존재를 그늘지게 생각해요? 돌틈의 조그만 한 나무에게도, 주는 꽃을 피울 물을 주지 않았어요? 가슴을 버티고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보여 떳떳이 앞으로 나아가세요. 과거가 아무리 좋아도 오늘이 나쁘면 때가 묻는 것이며 과거가 나빠도 오늘이 좋으면 과거의 허물은 씻기어 지는거야요. 주는 내일 양식거리도 걱정말라하신 것은 어제일도 문제삼지 말고 오늘 주어진 생명의 하루를 충실히 하라는 뜻이 아닐까요?』
나는 어느듯 진호의 팔을 한층 꼭끼고 있었다.
우리는 한시간 이상이나 걸었고 행인이 뜸한 거리는 우리 둘을 위하여 조용한 듯이 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