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91) 過去(과거)와 現在(현재) ③
발행일1965-04-04 [제465호, 4면]
그날밤 진호와 헤어져서 집에 돌아오는 내 그림자는 외롭지가 않았다.
무언지 꽉 찬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 속에 허전했던 구석이 메이는것만 같았다.
그날 밤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전에는 평범하게 보이던 진호가 위대하게 보였다. 검엏게 보이던 것이 홀연 빛을 발사한 한 듯했다.
무척 오래 헤매며 찻은것이 바로 진호속에 있었던 것을 나는 신기하게 여겼다.
눈앞에 가장 가까운 곳에 나의 마음을 메워줄 사람이 있었던 것을 먼데서 헤매고 있었던 자신…
그러나 그 방황은 나에게 귀중했다.
그방황이 아니었다면 나는 진호를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진호와 더불어 걷던 두시간 동안의 흐뭇한 여운을 품안에 껴안듯 이 이불자락을 끌어안고 나는 눈을 감았다.
우리는 그 후도 매일 열시가 지나야 만났다. 양부는 열두시에 들어오는 나를 시비하기 시작했으므로 진호 널기로 한시간만 거닐기로 했다. 한시간이란 시간은 우리에게는 너무도 짧았다.
헤어질때는 아쉽기그지 없었다.
약 열흘후, 진호는 중학교 일학년생의 영어 과외공부를 알선해 주 었다. 집이 조금 멀었다.
두아이인데 칠백원씩 천사백원이었다. 일곱시부터 열시까지인데, 돌아오는 시간이 약 삼십분, 우리가 만나서 이야기 할 시간은 다시 삼십분 줄고 말았다.
천사백원의 수입으로 생활할수 없기 때문에 낮에는 구두닦이를 계속했다.
진호는 진호대로 그의 부친이 몸이 약하고 벌이를 못함으로 제 손으로 학비를 벌며, 생활비는 시장에 나가서 일수놀이하는 사람을 돕고있는 어머니의 가냘픈 수입을 보충하고 있기도 했다.
요즘에는 그 일수일이나마 없어져서 매일 매일 조금씩 벌어오던 어머니의 수입도 끊어진지가 오래였다.
그러기 때문에 진호는 몇군데의 과외공부와 번역, 필경 같은 「아르바이트」 거리도 맡아했다. 밤 열한시가 넘어서야 자기시간을 가졌고 새로 세시까지는 학과를 공부한다는 것이었다.
매일 매일 우리에게 기다려지는 것은 밤열시였다.
삼사십분간의 서로의 대화! 이것이 하루의 정점(頂点) 이었다.
구두닦이를 할때 양부의 신경질을 받는 저녁때 그리고 머리 둔한 아이에게 입어쓰도록 영어 단어 발음을 되풀이하는 그 모든 시간의 과로움도, 열시에 진호와 만남기대가 있기때문에 견디기 수월 했다.
-사람은 자기혼자로서 이땅에 살기에는 아쉬운 것이다. 진호라는 또 하나의 기둥을 내 마음에 얻었을 적에 나의 발밑은 갑자기 든든해 졌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일기에 이렇게 썼었다.
하지만 우리의 행복은 불과 한달이 못갔다.
진호는 다리 때문에 연기되었던 군대에 가게 되었다.
그의 다리는 이제 절지를 않았다.
이날의 우리의 대화는 퍽으나 안타까웠다.
『집의 생활은 그럼 어떻게 하죠?』
『나도 걱정이지만, 어떻게 되겠죠!』
『진호씨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은 나아가지 말아야 할거 아니겠어요?』
『독자는 징집을 안 당하지만 동생이 있는 까닭에 가야합니다. 남자로서 군대의 경험을 갖는것도 좋죠! 다만…』
진호는 다음말을 삼키고 비구름이 잠긴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빗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이제 이년반 동안 못만나겠군?』
『왜요, 우리는 계속해서 만날수있어요. 편지라는 것이 있지않요.』
진호는 쓸쓸해진 내마음에 웃음섞인 명랑한 표정을 보냈다.
『매일 편지 하세요 네…』
나는 힘을주어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걱정안해도 좋겠지?』
진호는 한참 걷다가 돌아보며 강한 음성으로 말했다.
『무엇 말이야요?』
『「미스」양 흔들리면 안돼…』
『……………………』
나는 그의 말뜻을 알고 미소로서, 다시한번 그의 팔과 내팔 사이에 힘을 주었다.
며칠 후에 드디어 진호는 서울을 떠나 군대에 입대하고 말았다.
그와 나란히 거닐던 ××로 한적한 거리를 혼자 그시간에 걸어보도 했다. 그와 주고 받던 대화의 귀절들을 머리속에 되새기기도 했다.
『흔들리지 않겠지?』
하던 말이 가장, 깊이 고막에 울린다.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안타까움 가운데도 나는 고독하지가 않았다. 그에게서 편지가 오면 나는 그를 만난것같이 기뻤다. 그의 편지의 내용은 군대생활에서 얻은 새로운 경험과 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차 있었다.
나는 그의 일에 대해서 걱정을 하며 답장을 보냈다. 군대일에 무관심했던 내가, 군대의 이야기가 이웃간에서 나오면 귀가 솔깃해서 들었다.
군대의 생활은 엄하고 거친다는 것이 내 가들은 소문이다. 그의 신변이 몹시 걱정이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나 나 이외 사람의 일을 이만큼 걱정한 적이 없었다. 이것이 사랑인가? 나도 구두딱이해서 번돈으로 진호가 좋아할만한 책을 사서 부쳐주고 치솔, 수건, 면도날 같은 일용품도, 사서 보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고 싶었다.
진호한테서는 돈아쉬운데 물건을 사서 부칠 생각은 말라고 하였으나 편지 문면 뒤에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그의 표정이 엿보였다. 나는 더욱 그에게 무엇인가 부쳐 주고 싶어 될수있는한 내용돈을 절약했다.
진호네 집도 가끔들려 보았는데 어머니는 소금장수를 시작하고, 아버지는 복덕방에 나간다고 하였다.
사람은 부닥치면 다 무엇이고 할수 있었다.
하루는 날이 궂어서 낮에 구두닦이일은 반나절로 그만두고 일찌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진호네 집에 들렸다. 마침 진호 어머니는 소금을 한가마니 사들여 목판에 옮기는 중인데 군복 입은 일등병 계급장을 단 군인이나 하나 마루에 앉아 있었다.
T라는 이름인 그는 어머니의 회갑이어서 휴가를 얻어 후방에 왔는데 진호의 부탁을 받고 양천의 안부를 알려고 들린 것이었다.
진호모친은 그 T에게 진호의 건강상태와 군대생활의 이모저모를 자세히 물었다.
신경질적으로 생기고 어딘지 우울한 표정이 늘 눈시울에서 떠나지 않는 T는 군대생활에 대해서 환멸과 실망된 자기의 기분을 말했다. 특히 그는 분대장 Y라는 사람을 나쁘게 얘기했다.
『우리는 제일 나쁜 분대에 끼었지요. Y는 사람이 모질고 사정이란 것이 조금도 없는 괴물딱지지요. 김진호군도 그 분대장 밑에서야 별수 없지요. Y는 인조인간 이야요.』
이말을 듣고 어머니는 몹시 걱정을 하였고 나도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며칠후 진호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이런 귀절이 있었다.
-나는 군대에와서 얻은 것이 참 많아요. 특히 우리 분대장 Y라는 사람한테서 많이 배웠어요. 그는 조그마한 규율이 생명이지요. 그러한 분대장이 있다는것을 나는 마음 든든히 생각하고 있어요.
그 분대장 덕분에 일정한 시간내에 자기맡은 책임을 완수하는 습관을 얻었어요. 처음에는 괴롭고 불가능하게 보이던 일들이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Y라는 사람을 우리 대장으로 만난것이 기뻤어요. 나는 제대된후 사회에 나갔을 때에 오늘의 이 군대에서의 단련이 좋은씨가 될것을 믿어요.-
같은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상반된 평가가 나오는것에 나는 놀랐다.
물론 진호의 말을 믿었고 진호의 관점에 찬성했다.
진호는 자기에게 필요한 정신적인 영양을 어느곳에서나 찾을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일로 진호에 대한 신뢰감은 한층 커졌으며 나도 새삼스러이 내 주변을 돌아보았다. 진호의 눈과 내 가슴의 고동이 겹치는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