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92) 過去(과거)와 現在(현재) ④
발행일1965-04-11 [제466호, 4면]
한달 두달 시간은 흘렀다. 전에는 시간이 휘리바람 모양 다를 어디론지 태워가는 건만 같더니 이제는 목적지를 향하여 달리는 기차 에 탄듯하다. 진호가 입대한 것이 이른 봄, 지금은 나무잎이 낙엽 지기 시작한 중추계절, 반년 이상이 지났었다.
『남은 시간은 일년 팔개월!』
나는 손꼽아보았다.
그동안 나의 생활 겉모양은 별로 변화가 없었다. 굳이 말한다면 어여쁜 처녀 구두닦이의 소문이 널리 퍼져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이 늘어 수입이 많아 졌고, 밤의 과외공부도 틀이잡히고 생도는 둘이 더 늘어 네명이되었으니 그 수입도 불었다. 과외 선생으로서의 평판은 전보다 훨씬 좋았다.
한동안은 나의 과거를 수소문하는 소리도 들었는데 요즘은 아무도 그런 얘기를 안 했다.
발음이 좋고, 열을들여 알기쉽게 잘 가르친다고 한다.
전에는 둔하게만 보이던 아이들에게 열을 들여 사랑의 마음으로 가르쳤었다.
나는 일찌기 남을 사랑할줄은 몰랐다. 귀여운 아이를 보아도 귀엽다고 머리로 생각했을뿐 맘으로 사랑을 느껴보지를 못했다. 남에게 나눠줄 사람이 나에게는 없었다. 진호라는 목표가 생기고부터는 사랑의 샘이 나의 가슴에 샘솟고 있었다.
나는 그 샘을 어린학생들에게 골고루 나눠줄 수가 있었다.
아이들은 퍽 나를 따르고, 내가 밉게 보던 순식이란 아이는 집에 서 얻은 빵이나 「캰디」를 호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와서 살짝 내 손에 쥐어주기도 했다.
과외시간은 단순히 몇 천원의 돈벌이를 하기 위한 인내를 요하는 시간이 아니라, 즐겁고 보람있는 시간으로 느껴졌다.
양부에 대해서도 나는 조금 달라졌다. 속에 깊이 맺혔던 반발심이 누그러졌다.
하루는 구두딱이를 마치고 저녁 무렵에 집에 돌아오니, 이웃집 노인과 함께 양부는 마당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출입구 쪽으로 등을 대고 섰던 양부는 내가 들어서는 것도 모르고 그의 입버릇인 공치사를 늘어놓고 있었다.
『딸하나 있는것을 구두닦이로 내 보내는 이 애비의 심정은 칼로 난도질을 하는것같이 아픕니다. 저만한 인물에 「바」 같은데 나가면 한달에 오륙만원 쯤 벌어오기는 엿먹기죠. 그러나 아무리 돈이 좋기로 그런데는 안내 보냅니다. 그것이 지금 세상에 무슨 허물이냐고 아까말씀을 하셨는데 딴사람은 허물로 알지 않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견딜 수 없이 부끄러운 일이지요. …』
이웃집 노인은 고개를 끄덕끄덕 하며 듣고 있다.
나는 모르는척 하고 양부의 뒤를 지나 이내 부엌으로 들어가서 저녁준비를 서둘렀다.
양부의 말은 계속되었다.
『… 내가 병들지 않았으면 내 귀여운을 딸을 거리에 구두 딱이로 내 보낼 사람입니까? 절대 못하지요. 나가지 말라고 그처럼 입이 쓰도록 일렀건만 지가 우겨서 나간답니다. 옛날에 삼십원 하던 좋은 가죽가방이 있는데 그것도 내가 나순이 주었읍니다. 옛날 돈 삼십원이면 지금돈 삼만원이지요. 철따라 「쉐타」며 「스카트」며 늘 새것으로 사입ㅆ지요! 음식도 감기들가봐 늘 따뜻한 고기국을 떨어뜨리지 않고 먹였지요. 이웃에서는 내가 박정하느니 딸과 애비가 어떠니 뜬소문들을 퍼뜨리는 모양입니다만 그럴리 없지요.』
『나순이가 왔소…』
노인의 이말에 양부는 조금 당황한 기색으로 부엌을 돌아보았다.
『…인기척도 없이 언제왔니?』
전과 같으면 그러한 양부의 사실에 반발심을 느끼고 내 표정은 굳어졌을 것인데 짐짓 나는 부드럽게 응했다.
『아버지 시장하시지 않으세요? 곧 저녁 해 드릴께요』
양부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입에서 그처럼 부드러운 반응이 보일줄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 이었다.
『아니, 나보다 네가 시장 하겠다. 이제는 과외선생 수입도 전보다 배나 되었으니 그까짓 구두닦이는 그만두도록 해라』
양부의 말도 부드러웠다.
『아버지 제 걱정은 마시고 병이나 빨리 나으세요.』
나는 서투른 휘파람 불며 쌀을 씻어 연탄불에 올려놓았다.
양부에게 나 자신을 말 할때, 언제나 「나」라고 했지 「저」라는 고은말은 쓰지 않았었다. 이날은 피하지않고 그말이 선듯 나왔다.
나는 내 마음에 출렁거리는 사랑의 샘을 양부에게도 나눠주고 싶 있었다. 좋은 아버지였다고 선전에 애쓰는 양부가 전에는 밉더니, 그것이 지금은 측은해 보였다. 그것 하나로서도 그가 나의 친아버지가 아님을 새삼 느꼈다. 친부모 같으면 그런 공치사는 안할 것이었다. 나쁜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을 변명하려고 애쓰는 양부의 말은 그만큼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애쓰고 있는 것으로도 느낄 수 있고 있었다.
양부에 대한 이러한 나의 생각은 훨씬 그와 가깝게 해주었다.
『「미스」양은 처음때 보다 참 명랑해 졌어!』
양장점 「마담」도 나를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딴은 요즘의 나의 생활 주변은 밝았다. 내 마음은 어둡지 않았다.
그것이 내 얼굴에 나타난 모양이었다.
나는 「마담」에게 입대한 진호의 이야기도 했다. 그만큼 「마담」과도 가까워 졌었다. 그리고 「마담」은 양장점에 오는 손님들에게 구두를 닦으라고 권하여 내 수입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러던 하루, 나에게는 뜻하지 않은 행운이 닥쳐왔다.
언젠가 「마담」 소개로 지긋한 나이의 양장한 중년부인이 「하이힐」을 닦은 일이 있는데 그 부인과 함께 키가 후리한 신사가 와서 구두를 닦겠다고 한다. 구두를 닦는 동안, 신사는 나에게 말했다.
『영문 「타이프」도 한다면서?』
『네에』
『그런 능력이 있으면서 구두닦이 하기는 아깝지 않아!』
『영문 「타이프 치는 사람이 저 하나뿐인가요. 제 차례는 좀처럼 안 오길래 구두닦이를 시작했어요. 이래 뵈두 여사무원 보다 수입이 많은걸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옆에 섰던 부인은 호의가 깃들인 표정으로 자기 남편을 돌아보았다.
『밤에는 중학생 영어 과외공부 선생님이라면서?』
『네에 저학년 아이들이에요.』
『영문 「타이피스트」로 우리 회사에 취직해 볼 생각 없어?』
『괜히 농담 마세요.』
나는 별로 상대를 안 했다.
지금까지 그런 수작을 걸어온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어떤자는 그런말을 미끼로 나를 이용하려고 들었고 또는 노골적으로 유혹할의사가 눈시울에 번득이기도 했다.
『농담이 아니야, 월급은 육천원 쯤될거야…』
점잖은 말투며, 내외가 같이온 것이며 나에게 대한 호의 것이 엿보였다.
『감사합니다. 지켜보시고 잘 못하거든 그만두라고 하세요.』
나는 기쁨에 가득차서 말했다.
『거기에 두기는 너무도 아깝지 않아요? 구두닦이를 하는 용기도 자랑스럽고, 구김살 없는 그 얼굴 표정을 보고는 그냥 버려두기가 아까와 한 내맘도 아시겠지요』
부인은 내 얼굴과 남편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신사도 동갑인 듯한 따스한 표정을 했다.
나는 다음날부터 그 신사의 회사에 나가기로 되었다. 계약도 하고 외국 무역을 하는 회사라 한다.
「마담」은 자기일 같이 기뻐하며
『이젠, 명랑한 사순의 얼굴을 못보게 되어 섭섭하다.』
하며 진정 섭섭한 표정을 했다.
이날밤 나는 이불속에서 다음과 같이 그날의 일기를 썼다.
(세상이 찬것이 아니라, 내가 찰때 세상은 나에게 찼다. 내가 따스한 표정을 가지니, 세상도 나에게 따스한 얼굴로 대해 주었다. 내가 노려보았을 때는 세상도 나를 얕잡아 보았다.)
나는 내 마음 속에 진호의 미소를 느꼈다.
그는 나와 떨어져 있으나 그의 마음은 내 마음속에 가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