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76) 구오봐디스 ④
발행일1964-12-13 [제450호, 6면]
차는 미도파 앞에 닿았다. 그가 먼저 내리고 나중에 나는 내렸는데 차옆을 떠나지 않고 운전수에게 그가 뭐라고 하나 귀를 기울였다.
『그럼, 그간 수고했소!』
「미스터」강이 이렇게 말하고 돌아서자 운전수는 무엇인가 섭섭한 듯한 표정을 하며 차머리를 돌렸다.
우리 앞을 스치고 조선 「호텔」쪽으로 사라지는 차의 「남바」를 나는 유심히 보았다. 「자8 7908」이었다.
『저 자가용 「찝」 얼마주고 사셨어요?』
나는 은근히 그 자가용에 대해서 미심한 점을 느껴 물었다.
『삼십오만원 주었지요. 「찝」차는 타기가 불편해서 세나라자가용으로 바꿀테야요, 새나라가 좋겠죠!』
「미스터」강은 담배를 꺼나 「라비타」 불을 켜며 이렇게 말하다가, 갑자기 표정이 굳어졌다. 급기야 고개를 숙이더니 내팔을 잡아끌며 오던 길로 발길을 돌린다. 그는 걸음을 재제 놓았다. 명동 입구앞에서 을지로쪽으로 내려갈 적에,
『여보 강씨! 강씨!』하고 소리치는 부인네의 목소리가 뒤에서 났다. 이순간 「미스터」강의 얼굴이 아차하고 난처해진다.
그러나 다음 순간 「미스터」강은 태연한 얼굴로 가슴을 펴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고, 난 누구시라고, 아주머니시군요. 잘 만났읍니다. 그러지 않아도 몇번 되올라고 했는데. 당최 바빠서 못찾아갔읍니다. 별고 없으십니까?』
『여보시우, 어쩌면 사람이 그처럼 신용이 없소? 사무실에 가면 이사했다 하고, 공장에 가면 문이 닫쳐 있으니 어찌된 일이요?』
부인은 한복에 「코트」를 입은 사십쯤 되어보이는 나이인데 눈에는 날카로운 감정이 서리어있다.
『지금요 … 공장을 새로 지으려고 XX에 삼천평의 대지를 사놓았어요, 사무실은 종로의 XX「빌딩」이 증축을 하고 있는데 그 오층에 계약을 해두었읍니다. 그래서 피차 서로 연락이 잘 안된 것입니다. 아주머니에게 보내드릴 것은 사원을 시켜 댁으로 전하라고 일렀는데 못받으셨나요?』
『아니, 언제 누구를 시켜 보냈단 말야요?』
부인의 태도는 냉정했다.
『한 일주일됩니다. 아니, 그 자식이 아주머니댁에 전하지 않고 딴데에다 전했나? 그녀석을 불러 야단을 좀 쳐야겠군! 아주머니, 내일이라도 곧 보내드리죠!』
「미스터」강은 사과하는 표정과 뽐내는 표정이 야릇하게 뒤섞이면서 찡그렸다 웃었다 하면서 말했다.
『이젠 당신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 안듣겨요. 길에서 얘기 할 수 없으니 저 건너 아무데나 다방에라도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그럼, 그러실까요….』
「미스터」강은 부인의 표정에 비해서는 매우 태연했다.
『「미스」양 같이 가십시다.…』
그는 아직히 나를 꼬드겼다.
부인과 「미스터」강의 관계가 궁금한 대로 나는 그의 뒤를 따라 한길을 건너 증권회사와 다방들이 조롱 조롱 있는 상공부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아래 윗층이 다방인 한 건물로 들어갔는데 아래층 다방에 나를 있으라 하고, 부인하고 강은 이층다방으로 올라갔다.
「미스터」강이 나타난 것은 한 삼십분 후였다.
그의 걸굴에는 구름 한점 없었고, 그 다방 안에서 자기만한 사람은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시덕거리며 입구 가까이 앉은 내앞으로 오더니 이내 나가자고 한다.
『그 부인네 누구야요?』
다방을 나서면서 물었다.
『저어, 사원의 부인인데, 그 사원이 월급을 집에는 안가지고 들어가는지라 직접 집으로 보내달라고 하는거죠….』
「미스터」강은 이내 딴 얘기를 끄집어 냈다.
『조선 「호텔」에 내가 만날 외국사람도 있고 차맛이 거기가 제일 나으니까 글로 갑시다!』 하며 미도파쪽으로 다시 간다.
가는 도중 그의 말의 앞뒤가 안맞는 것을 나는 생각했다.
사원의 부인이 사장을 보고 강씨 강씨 하고 가볍게 부르는 것도 우스웠고, 월급 봉투 땜에 험악한 얼굴로 사장을 쏘아보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K신문사 앞에서 갑자기 발걸음을 돌린 것도 그 부인과 마주치는 것을 피하려고 한 것이 분명한데 내 예측에는 아마도 빚쟁이가 아닌가 싶었다. 공장 앞에 남녀 빚쟁이가 여럿 서있더라는 양부의 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미스터」강이 으리으리한 조선 「호텔」 현관을 자기집이나 들어가듯이 손쉽게 들어가는 것을 보니, 금방 나의 의심이 헛된 것 같기만도 하다. 그는 옷맡기는데서 「코트」를 맡기고서 성큼성큼 융단이 깔린 긴복도를 깊숙히 들어간다. 조심 조심 그의 뒤를 따라갔다. 다방은 온실같이 유리로 둘러싸여 있고, 저편은 정원이었다.
그는 「커피」를 시키고 나를 위해서는 「아이스크림」과 「케익」을 주문했다.
잠시후 그는 미국사람을 만나고 오겠다고 하면서 다방을 나갓다. 한 십분후에 그는 매우 밝은 낯으로 돌아왔다.
『미국 회사와 지금 계약이 되었어요!』
의자에 안자마자 들뜬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한다.
『무슨 계약인가요?』
남은 「케익」 한토막을 마자 입에 넣으며 물었다.
『미국인 기술자들 우리 공장에 보내주기로 했죠. 그리고 제품은 동남아 일대에 있는 그네들 회사지점에서 팔아주기로 했어요, 지금 삼천평 대지에 공장짓는 걸로는 작겠는데? …핫핫…』
「미스터」강은 혼자 신이나서 웃었다. 나는 이때 그의 얼굴의 음영을 자세히 보았다. 만약 사진으로 눈동자만 찍어본다면, 그 표정은 침울하기만 했을 것이었다.
그가 아까 우리집에 와서 말할 때의 공장대지는 이천평이었었다.
나는 그 숫자를 분명히 외우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일천평이 늘었고, 그뿐만 아니라, 사무실은 충무로 XX「빌딩」이라고 하던 것이 그것도 차를 타고 오는 사이에, 부인네에게 말할 때는 종로로 장소가 변했던 것이었다.
『앞으로 「홍콩」이나 미국은 아침밥 먹듯이 왔다갔다 하게 될텐데, 「미스」양은 나하고 같이 다닙시다!』
「미스터」강은 다소곳이 말한다. 만약, 그런 얘기가 여느 다방에서 나왔다면 나는 믿지를 않았을 것이다.
조선 「호텔」이라는 일류 「호텔」도 차 한잔 마시러 들어갈 수 있다는 간단한 사실을 나는 미쳐 몰랐었다.
그는 충무로 쪽으로 나를 데리고 오더니 이번에는 S「호텔」로 성큼 들어선다.
『이 「호텔」이 임시 사무실 겸 연락쳐야요!』
하며, 그는 이층으로 올라가더니, 복도에 섰던 「보이」에게 열쇠를 받아 바른쪽 구석방문을 연다.
깨끗한 「더불 벳트」에 「쇼파」 의자가 있고 욕실까지 붙은 호화로운 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