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議會(공의회)가 提示(제시)한 길로… 刷新(쇄신)되는 敎會(교회)들 ②
「刷新度(쇄신도)」 公議會(공의회)가 促進(촉진)
英國的(영국적) 保守思想(보수사상) 漸次克服(점차극복)하고
一般社會(일반사회)의 對敎會觀(대교회관)들도 好轉(호전)
발행일1965-04-18 [제467호, 2면]
■ 英國
【NC 特信】 요한 23세 교황자신 및 그가 소집하고 그 정신을 불어넣은 제2차 「바티깐」 공의회로 인해 영국의 「가톨리시즘」은 불과 수년동안에 놀랄만큼 변화되었다. 교회내의 변화, 나라안에 있어서의 그 달라진 모습과 위치는 20년전 그것에 비해 전혀 알아볼수 없을 정도이다.
이같은 변화의 가장 크고 뛰어난 이유는 아마도 먼저 요안교황자신과 다음으로 공의회가 가톨릭교회에 대해서 보다 비가톨릭인들에게 끼친 영향일 것이다. 그결과 교회를 인정하는 풍조가일고 교회에 대한 태도는 돌연히 친전하게 되었다.
가톨릭은 고(故) 존‧케네디 대통령과 그의 가족이 이곳에서 향유하는 인기(人氣)로써 큰 덕을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조차 「가톨리즘」은 유행과 같이 되었다.
현대 「메스·콤」 시대에 있어 이것은 가톨릭을 위해서나 비가톨릭을 위해서나 대단한 일이다. 불신(不信), 의혹, 강한 자의식(自意識) 같은것은 사라졌다.
정치가, 신문 「라디오」 등은 가톨릭교회가 비록 대단히 완만하게 커가고 있다 할지라도 가장 힘차게 조직된 종교세력이며 그의 묵은 내향적(內向的) 사고방식 무기력한 태도를 탈피하고 사회생활 전 면에 영향력을 미쳐가고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가톨릭신자들의 반응은 처음에는 완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바티깐」 공의회결의를 실천에 옮김과‧더불어 그 보조(步調)는 점차로 빨라졌다.
여기에 적지않게 이바지한 이는 「웨스트민스터」 교구 대주교 죤·히난 추기경이다.
영국의 가톨릭교회 십자수는 약 5백만이며 총인구의 10분의 1 정도이다. 대부분은 노동계급에 속하고 또한 상당수는 아일랜드와 구라파로부터 이주해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혼종혼(混宗婚) 등의 결과로 학계(學界), 예술계, 정치, 경제계 및 기타 직업부면에 있어 출중한 인물들을 계차로 많이 배출시켜 가고 있다. 극소수에 불과하긴하나 종교개혁시대에 지하운동을 하던 귀족들의 후손으로서 영국 상류사회에 속하는 가톨릭도 있다.
이곳 교회는 적어 도 외관상으로 전형적으로 영국적이다.
보수적이요, 종교개혁 때부터의 순교전통에 충실하며 동시에 내향적(內向的)이다.
토지 기타 상당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나 가톨릭학교의 현대 교육지설 구비는 힘에 겨운 부채를 지고 있다.
신자들은 변화를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또 호기(好機)어용에도 퍽 느린태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변모는 50년전에 가톨릭신자로서는 알아보지못할 만큼 진전돼있다.
요안교황이 창도한 교회쇄신은 이제 막 시작돼있다. 사실참된 쇄신의 시작은 지난 장림절부터라고도 할수 있으며 그것은 영국주교단이 점차 사라져 가는 전형적인 보수세력의 반대를 물리치고 미사와 성사 집행에 영어사용을 도입함으로써 이다.
이제 순(純) 「라띤」어 미사 봉헌은 드문일이 되었다. 교구는 따라 형편이 다르긴하나 아직 주일창미사를 「라띤」어로 드리고 있는 소수지구의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교구에서는 영어사용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평일의 본당미사까지도 많은 지방에서는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와 그 이웃 「브렌트우드」 두 교구에서만 주일미사 한대를 완전히 「라띤」어로 바치도록 규정하였다.
이같이하여 변화로의 보조(步調)는 지난 장림절부터 급진하였다. 요안 교황이 교회일치운동에 박차를 가한 이래 비가톨릭교회들 및 유태인들과의 우호관계는 공적으로 장려돼왔다.
수개월전부터 히난 추기경은 공직(公職) 혹은 사회적인 이유로 비가톨릭 교회예배에 참석한 경우에는 이를 쉽게 허락하였다. 또한 프로테스탄에서 발간한 성경중 신빙할만한것이면 읽을수있게 허락되었다.
교회당국은 신학교 교육의 현대화를 착수하였다. 지난 3월 「옥스포드샤이어」의 「하이트롭」에 있는 예수의 「콜레지」에 대학을 설치하여 성적자와 평신자가 다같이 그곳에서 신학 및 철학박사학위를 딸수 있게끔 만들었다.
평신자들의 교회생활 참여 역시 현저히 증가돼있다. 많은 지방교회에 있어 사무적인것은 광신도들이 이미 맡고 있다. 또한 위로 대주교를 비롯하여 아래로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지방자치 및 사회생활면에 있어 비가톨릭과 협력한다는 것은 관례(慣例) 같이 되었다. 각교파 합동회합등이 승인돼있고 합동순례등도 조직하고 있다.
요안 교황과 제2차 「바티깐」 공의회를 통해 영국의 가톨릭교회는 개종자는 아니 지만 주위에 많은 벗을 얻었다. 그와동시에 새로운 인기에 따르는 자연스러운 반발로써 원수도 만들었다. 이들은 주로 비그리스도교인들이며, 교회가 잘되는 것을 싫어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이런 자들은 현재로서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가장 자극적인것은 「바티깐」 공의회의 공개토론이 결과적으로 교회비판을 장려한것도 되어 과거와 같이 반가톨릭적인 혹평과는 다르나 저명하고 지성적인 가톨릭성직자 평신자중에서 인간이 만든 교회구조 안에서 볼수있는 약점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신학적으로 불확실한 문제들로부터 시작하여 현실적 교회재정문제에 이르기까지가 가차없이 논평한다.
프로테스탄들은 언제나 혼종혼(混宗婚), 핵전쟁(核戰爭), 산아제한등에 관한 교회교리를 비판할수 있었다. 이제 처음으로 가톨릭중에서 이같은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있게 되었다. 예컨대 전(前) 인도 「봄베이」 대주교였으며 지금은 「런던」에 살고있는 예수회출신 토마스‧로벨스 대주교, 전(前) 「가톨릭 헤랄드」 신문 주필이었던 미카엘‧딜라·베마엘씨 같은 이들은 최근 문제의 책 「로마적(的)」 가톨리시즘에 대한 이의(異議)」라는 것을 통해 교회교리를 비판한 가톨릭지성인들의, 지도적인물들이다. 또 이미 미국에서 출판된 르벨스 대주교의 산아제한에 대한 가톨릭 입장을 비판한 책이 미구에 이곳에서도 발간될 것이다. 가톨릭 주간지 「타블렐」은 「시리즈」로써 「비판대상이 되고있는 교회의 전통신앙」이라는 제목하에 신부들과 평신자들의 여기관한 전해를 신고 있다.
영국 가톨릭 신자들은 새로운 종교시대를 지향하는 이같은 변화 중의 어떤것에 대해서는 몹시 침해한다. 대부분은 처음엔 순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다가 그후 차차 이에 대하여 감사하게 된다.
그러나 과거의 분명하고 안으로 결속돼있던 가톨릭생활양식의 소실 (消失)은 어떤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아직도 혼란은 늘 있다. 앞으로 더 악화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교회당국자는 『이런 것은 다 성숙히 박두해있다는 점이다』고 말하였다. 영국의 가톨릭교회는 요안 교황과 「바티깐] 공의회에 의해 그 위망(威望)을 크게 얻었고 무엇보다도 자신(自信)을 얻었다.
또 장차 더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