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77) 구오봐디스 ⑤
발행일1964-12-20 [제451호, 4면]
「쇼파」에 앉으면서 방안을 두루 살펴보니, 사무실 다운 분위기도 전혀 없었다.
『여기를 사무실로 쓰고 있나요?』
나는 물었다.
『임시로 쓰고 있죠! 목욕 안하시겠소?』
「미스터」강은 욕실 「도어」를 코끝으로 가리키며 빙긋이 웃는다.
『……』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를 말씀히 바라보았다.
『바는 바깥에 나갔다가 올테니 목욕하시구려…』
「미스터」강은 이렇게 말하며 담배 한대를 피워 문다.
『사무원은 어디 있어요?』
『사무원? 나혼자 쓰는 연럭처죠, 밤에 늦으면 여기서 자기도 하죠 …요즘은 서양사람들하고 교제를 많이 하기 땜에 이 「호텔」에다 연락처를 정했죠. 미국 가거든 이것보다 백배는 좋은 근사한 「호텔」에 들어 삽시다!』
「미스터」 강은 내 옆에 바싹와서 앉으며 마치 자기와 나 사이에 결혼 속이 된 것 같이 말한다.
이때 나는 방바닥에 떨어진 종이 쪽지에 시선이 갔다. 손바닥만한 「사이즈」를 둘로 접은 것인데 무슨 영수증 같았다. 「미스터」강에게 일러줄까 하다가 일부러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그 종이를 몰래 보고싶은 생각이 든다.
「미스터」 강의 입김이 좀더 가까워지는 듯 하길래 벌떡 「쇼파」에서 일어났다.
『나 목욕할테니까 나가계세요!』
하며 탁자위에 있는 열쇠를 집었다.
『음 좋지 목욕하셔…』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얼핏 나갈 생각을 않고 반쯤 된 담배를 재떨이에 끄고 새 담배를 다시 꺼낸다.
『어서 나가 있으세요.』
나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미스」양과 나 사이에 뭐 그런걸 꺼려할꺼야 없지 않아…』
「미스터」강은 다정한 듯이 말한다.
『나가 계셔…』
나는 그의 등을 밀어 「도어」밖으로 내보내고 쇠를 잠았다.
『얼마쯤 후에 올까요?』
밖에서 「미스터」강이 「노크」 하면서 묻는다.
『삼십분쯤 후에요!』
나는 바닥에 떨어진 종이쪽지부터 집어 보았다. 그것은 예상한대로 영수증이었다. 액면은 3만원인데, 그 옆에 쓰인 단서(但書)를 읽어보니 자가용차를 한달 빌리는 전세값이었다. 기간을 보니, 바로 오늘 오후 다섯시까지로 되어있었다.
문득 아까 「찦」차 운전수와 「미스터」강이 주고받던 말이 생각났다.
『전세차를 빌려가지고 제 차인척 했구나?』
나는 비로소 그의 술책을 알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3만원 전세차를 미끼로 하여 그는 여러사람한테서 돈을 꾸어썼던 것이다.
나는 당장 문을 열고 뛰어나가 양부에게 그가 협잡군인 것을 알릴까 하다가, 다시 생각했다.
모르는 척하고 그의 호주머니에서 양부가 투자한 육만원을 끄집어 내야겠다고 맘먹었다.
「도어」에는 쇠가 잠겨져 있었으므로 안심하고 목욕탕에 들어가서 천천히 목욕을 하면서 그 궁리를 했다.
막 옷을 입을 때 「노크」소리가 났다.
나는 열어주지 않고 완전히 의복을 갖췄을 적에 「도어」를 열었다.
『강선생 이리와서 꿇앉으세요?』
그를 「쇼파」에다 앉히고 나도 그 옆에 앉았다.
그는 내가 저를 좋아 그러는 줄로 알고 싱긋이 웃으며 이런 말을 한다.
『내가 말이야 「미스」양만은 굉장히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있어. 정말이야! 서울서 제일가는 부잣집 맞며느리보다도 잘살게 해줄테야.』
그의 말은 꼭 연속방송극에 나오는 성우의 억양을 띠고 있었는데 코먹은 소리인지라 어찌 들으면 여자가 넘어가게 알맞는 소박성을 띠우고 있었다.
(요자식아, 너 같은 건달한테 넘어갈 나순인줄 아느냐?)
나는 속으로 비웃으며 겉으로는 그를 우러러 보는척 했다.
그늬 손이 내 손등에 살며시 닿는다.
나는 그의 손을 다정스럽게 붙들며 말했다.
『난 정말 「미스터」강 같은 남성을 만난 것을 나의 큰 행복으로 생각해요.』
나도 성우의 「톤」으로 응했다.
『나는 매난에 드는 여자라고는 하나도 없었는데 「미스」양만은 내맘에 쏙 들었소. 정말이지 결혼하자는데는 귀가 아프도록 많았지만 「미스」양을 안 뒤에는 돌아보지도 않았다면 그만이지?』
「요런 멀쩡한 도둑녀석…」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으나, 나는 어디까지나 그보다 한술 더 뜨는 연극을 진행시켰다.
『우리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미스터」강은 아직 잘 모르실꺼야?』
『왜 잘 알아요! 그 양반은 신사죠. 그래서 내가 그분의 돈을 우리 회사에 투자하도록 권한거죠. 딴 사람들은 투자하고 싶어 애를 쓰지만 다 거절했죠. 정말이요』
『「미스터」강이 특별히 우리 아버지를 생각하고 계신줄 알아요. 그러길래 다달이 육십 「푸로」씩 이익 배당을 하신다고 하셨겠지 뭐아요』
『정말이야요. 나는 양선생을 도우겠다는 진심에서 그렇게 한거죠.』
『근데, 좀더 아버지를 도와주시는 의미에서 삼백만원 가량 더 투자할 수 없을까요?』
『아니, 아버지가 그만한 돈이 있나요?』
「미스터」강의 눈이 방울만하게 커진다.
『우리 아버지는 땅이 있는데 남 앞에서는 있단 말을 안하는 사라이야. 또 집도 몇채 있는데 일부러 가난한 척 해요.』
『난 그런줄 몰랐군요.』
『괴짜죠. 근데 지금 가진 땅이 4백평짜리인데 그 자리에 판자집이 들어앉았지 뭐에요.』
『그거쯤이야 내가 쫓아내지, 걱정마시우, 어디죠! 그 땅이!』
나는 미리 그 땅의 소재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두었기 때문에 서슴치 않고 대답했다.
『XX동 교회 근방에 있는 공진데 지금 거기 지어진 판자집이 다섯채 있어요. 철거비용으로 하나 앞에 만5천원씩을 내라고 하잖아요?』
『그까짓거 내지 않아도 내가 쫓지요. 염려마세요?』
『벌써 경찰입회하에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했거든요.』
『어리석은 약속을 하였군!』
『그래서 지금 7만5천원만 있으면 당장 그 땅을 팔 수 있어요. 삼백만원에 사겠다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거든요.
그래서, 아버지가 투자한 6만원과 만5천원만 빌릴 수 없겠느냐고 그래요!』
『그렇다면… 그거 문제없죠. 어디 그 땅을 한번 가서 볼까요?』
『네에 가십시다.』
「미스터」강은 돈 얘기가 솔깃하여, 딴 생각은 차치하고 서두러 「호텔」을 나섰다. 나는 그를 데리고 내가 말한대로 XX교회 근방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에는 실지로 그런 공지가 있었고 임자는 강숙이 아버지였다. 강숙이 한테서 언젠가 그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에 솔박 고대로 옮긴 것이었다.
「미스터」강은 그곳에 오자 그 근방을 눈여겨 보더니,
『좋소!』2
하고 정담을 한다.
그는 곧 아버지를 만나겠다고 하는 걸 밤이 되어야 들어 오실거니 밤에 들르라고 일르고서 헤어졌다.
그 길로 집에 돌아와서 양부에게 사실을 이야기 했더니 양부는 화가 머리 끝까지 올랐다.
『그놈이 그런 협잡꾼인줄 몰랐구나! 오기만 해라!』
『아버지, 그런 내색하면 돈 육만원 못찾아요!』
『그래 네 말이 근사하다. 요놈 와 보아라…』
『제가 말한대로 말을 맞춰야해요…』
『오냐 염려마라…』
밤9시쯤 「미스터」강은 「하이야」를 타고 산동리에 왔다.
양부와 나는 약속한대로 시침을 떼고 그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