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人間(인간)]
그리스도의 초청에 쉽게 참가할 수 있는 길
발행일1964-12-20 [제451호, 4면]
『임금이 그 종들을 보내어 잔치에 청한 자들을 불렀으되 오기를 싫어하는지라』(마테오 22-3) 여기 청함을 받고 오기를 거부하는 이들은 유데아인들 입니다. 예수께서는 친히 또는 당신 제자들을 시켜 유데아인들에게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왔고 천국이 임박했음을 누누이 말씀했고 어떤때는 눈물로까지 호소하셨지만 그들은 그리스도를 급기야는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읍니다. 이렇게 한 유데아인들이 애처롭기만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계시면서 시시각각으로 우리에게 호소하시고 우리를 당신 성부의 나라로 초치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도 그 옛날의 유데아인들처럼 그리스도의 이 은은하고 강한 호소를 뿌리치고 있지나 않으신지? 우리가 그리스도의 간곡한 초청을 묵살해 버리는 가장 일반적인 이유는 우리 정신이 너무도 속세의 시정에 사로잡혀 있는 그것입니다.
유데아인들이 그 당시 늘어 놓던 핑계도 특별한 것은 아니었읍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정신이 너무도 빈틈없이 속세의 하잘것 없는 사정에 골몰하는 것을 한탄 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들도 잡담하느라고 많은 시간을 허비하면서 가장 존귀한 영혼사정이나 예수님의 호소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위에 독특한 계획을 갖고 계시며 우리 각자를 신성하고 절묘한 성인들로 만드시려 무진 애를 쓰시고 계십니다.
『논밭을 샀으니, 경작할 소를 샀으니 아내를 맞아 들였으니』하는 유데아인들의 핑계가 우리 자신들의 입에서도 새나오고 있지나 않은지? 유데아인들도 그리스도의 초청을 정면으로 거부하지는 못했읍니다.
특수하게 하는 일 없이 속세에 사로잡혀서 왔다 갔다할 뿐이었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초청을 얼마간 존중하면서도 이 애용하지 못하고 자신들을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읍니다. 딱잘라 거부하지 못하고 얼마간의 기간을 달라고 하는 눈치를 보이고 있었읍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약한자의 생활이며 아마도 지금 우리 각자의 생활이 아니겠읍니까? 그리스도게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영생이라』고 외치시지만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잡념과 하찮은 사정에 사로잡혀 그리스도의 말씀의 깊이를 깩닫지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이 말씀을 들을려고조 하지 않고 있읍니다. 우리 각자는 좀 더 깊이 반성해야 하겠읍니다. 우리 자신도 이대로 가다가는 유데아인들처럼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지나 않을지?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각자가 이 사회안에 갖고 있는 직업을 포가하라고는 하시지 않습니다. 단지 요구하시는 것은 이 직업을 천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이 사회에 힘차게 이바지하는 마음으로 더욱 더 열성과 양심과 정의를 발휘해서 실천해 달라는 그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천국도 이 사회나 직장을 등짐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 사회를 미화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성화함으로써만 얻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사업을 천주님의 말씀과 우리의 신자적 양심에 준해서 한다는 것은 바로 신자된 사람들의 사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