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我批判(자아비판)하는 敎會(교회) 위해 革新(혁신) · 前進(전진) 기틀 만든 公議會(공의회)
敎理變更(교리변경) 없이 聖書神學(성서신학)에 重點(중점) 둬
現代(현대)理解(이해) · 適應(적응)에 全力(전력)
制度(제도) · 機構(기구) 改編(개편)에 敢果(감과)한 措處(조처)
多樣性(다양성) 안에 一致追求(일치추구)
「삐에따」를 뉴욕港口(항구) 「自由女神(자유여신)」像(상)과 交換(교환)?
매듭 짓는 第(제)4會期(회기)
8個(개) 議案(의안) 다룰터
공의회 평론가들은 제2차 「바티깐」 공의회 제3회기를 2천년의 교회 역사상 가장 큰 성과를 거둔 회의였다고 논평한다. 이제 그 치밀하고도 강력한 회의진행과 가끔 외부세계까지도 함께 기장과 흥분으로 휩쓸어갔던 제3회기 10주간의 공의회 활약상을 회고하여 볼 때 우리는 이같은 평가가 객관성에 가까움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공의회 성과는 반포된 헌장 혹은 율령만으로써 측정될 것이 아니다. 토론에 있어 발표된 교부들의 견해 혹은 회의장 안팎에서 맺어진 접촉을 통한 서로의 의견교환 등 역시 이에 적지않는 영향을 주었고 교회가 무엇인지 반성 · 검토하는데 강력히 작용하였다.
■ 回顧
미국에서 지어낸 이야기이긴 하지만 「바티깐」과 북미합중국 사이에는 지금 「뉴욕」국제박람회에 전시되어 있는 미케란젤로의 「삐에따」상(像)과 역시 「뉴욕」항(港)에 서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교환하기로 약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의여신상을 「베드루」광장에 옮겨 세우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물론 하나의 「유모어」에 불과하다. 그러나 오늘 공의회를 통해 조성되어가고 있는 교회안의 정신분위기를 해학한 이야기다.
공의회가 진전되어감에 따라 이 공의회를 처음 소집한 요안 23세가 제창한 「아죠르나엔토」(교회현대화)의 문제는 주교들 사이에 하나의 새로운 정신운동으로 싹트고 자라고 번져갔다. 교부들은 자기들의 견해를 자유스러이 발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적지 않은 교부들 주장은 얼마전까지도 들어볼 수 없던 혁신적인 것이었다. 벨기 「나뮬」의 앙드레 샤뮈 주교는 공의회에서 지배적인 이같은 정신동향을 논평하여 『이제 교회는 현대세계에 대한 그의 사명을 각성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같은 생각은 공의회 밖에서도 돌고 있는 일반적인 사상이다.
여러가지 문제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어 가는 중 공의회는 인종차별, 산아제한, 인구문제, 세계빈곤, 사회정의, 핵무기, 세계평화 등 오늘의 세계의 가장 긴급하고도 지극히 어려운 문제들을 과감히 취급하였다.
부제제도의 복구, 특히 결혼한 남자에게도 이 성직을 수여할 수 있다고 결의한 것, 역시 교회가 현대세계 안에 그 사명을 어떻게 수행해 가야할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임과 동시에 그에 따라 어떠한 혁신이 교회자체 안에 이루어져야 할 것인지 그 일면을 말해주는 것일 것이다. 부제직의 복구는 직접 간접으로 교회내의 평신도의 지위와 역할의 향상과도 관계된다. 주지의 사실과 같이 이번 공의회 회기동안에는 두 사람의 평신도 대표(NCWC의 제임스 노리스씨와 가톨릭 노동자운동의 페트릭 키간씨)가 공의회 총회 석상에서 발언하였으며 이와같은 일은 분명 획기적인 오랜 전통의 가톨릭교회 역사의 전환점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동시 이전에는 「타부」와도 같던 문제들이 공공연히 논의될 뿐 아니라 구체적인 방안까지 거의 세워져가고 있는 것이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성청행정기구(CURIA)의 국제화이며 이같은 성청기구 개편에 대한 교황 바오로 6세의 방침은 공의회 교부들의 대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지난 11월중순 불란서의 러페브르 추기경, 미국의 마이여 추기경 등 일선 교구 사목을 맡고 있는 분들이 그 자리를 유지한 채 성청 검사성성(檢邪聖省) 요직에 임명된 것은 성청기구 개편의 첫 단계를 뜻하면서 동시에 장차는 성청기구 역시 교회의 현대적인 요청에 맞게끔 사목(司牧) 위주로 개편되어야 함을 시사하는 것일 것이다.
동시에 공의회에서는 교황청 외교활동에 유능한 평신도를 등용함으로 이를 현대화시킴이 논의되었다. 이런 면에서도 교회는 교회가 단지 성직자 위주의 교회가 아님을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하고 또 그렇게 발전되어감이 필연적인 추세일 것이다. 상당수의 주교들은 교회는 예씩기타에 있어 묵은 전통이 잔재처럼 보이는 허식(虛飾)은 오늘 특히 강조되는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가 돼야한다는 정신에 배치된다고 말하면서 이같은 것을 폐지해야 한다는 강력한 제의를 하였다.
오늘 이 시간에 점차로 부각(浮刻)되어가고 있는 교회의 새로운 모습은 공의회 여러 의안에 표현되어 있는 정신적 동향의 반영이기도 하다. 예컨데 다음 제4회기에 다시 상정토의될 계시의안에는 호교적인 동기보다도 성서적 정신이 우세하고 있으며 이 성서적 정신은 또한 성서연구에 있어서의 보다 더 큰 자유를 증진(增進)시키고 있다. 이 의안에서와 같이 다른 공의회 의안에 있어서는 문제를 교리신학적 이론으로서 다루는 과거의 방법을 될 수 있는대로 피하고 있다. 그 대신에 성서신학적인 고려가 괄목할 만큼 앞서있다. 불란서 「벨당」의 삐엘 봐이용 주교의 말을 빌리면 「무류권에 대한 교리적인 정의는」이제까지의 신학으로서는 『부분적이요 단편적인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문제는 앞으로 보다 더 성서신학적인 빛에 의하여 설명돼야 할 것이다.』
교리는 물론 과거의 교리정의에 있어 어떤 오류를 범한 것은 아니다. 교황 바오로 6세를 비롯하여 현대신학의 권위있는 학자들이 이미 여러가지 기회에 표명한 바와 같이 오늘 혁신되어 가고 있는 교회와 그 정신동향을 교리의 변경을 목적하고 있는 것 같이 해석하면 이는 큰 오해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과거의 교리정의가 그것으로 그 교리가 말하는 계시진리의 무한히 깊은 현의(玄義)를 완전무결하게 설명한 것 같이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베아 추기경이 어느 기회에 말한 바와 같이 마치 작은 손전기로 어두움에 싸인 대지(大地)를 비추고서 그 불빛 아래 보이는 점만을 가리켜 그 현실의 전부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천주의 진리는 인간지력으로서는 다 알아낼 수 없는 신비이다.
이와같은 견해에서 카나다의 에밀 레제 추기경 이태리 「볼롱냐」의 쟈꼬모 렐까르 추기경 같은 이들은 신학교 교육에 있어 「스콜라」학적 체계에 의한 철학 신학만이 독점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현재 사상조류에도 충분한 고려가 부여돼야 하며 특히 장차 신자들 위에 교회와 사회안에 지도적인 역할을 맡게될 사제들의 양성에 있어 이같은 고려가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런 요청과 함께 현대문화와 과학에 대한 새로운 아무런 편견에 지배됨이 없는 태도를 교부들 중 상당수가 권장하였으며 그들은 현대문명과 과학을 오히려 복음진리 선포의 새로운 방법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있어 오늘 무엇보다도 요청되는 것은 교회가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이를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레제 추기경은 「스콜라」철학적인 중세와의 대화가 현대와의 대화가 될 수는 없다고 단언하였다.
이러한 교회의 내적 생명에 대한 주저없는 근본적인 종합진단을 벨기의 레도 쉬넨스 추기경은 한마디로 표현하여 이는 교회가 자아비판을 토대로 하여 진행시키고 있는 대대적인 집소제(掃除)라고 말하였으며 이 절정을 이룬 것은 우리는 교회일치율령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교회일치율령은 참으로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토대로 하여 그리스도교 교파상호관계를 세우게 될 새로운 세대를 기록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 율령의 자연적인 결과로서 다음회기에는 비그리스도교인에 대한 선언문과 함께 종교자유선언문이 공의회 통과를 보게될 것이다.
교회일치율령은 우선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정신면에 있어 과거의 그것과는 아주 다른 것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를 분열의 비극에로 이끈데는 가톨릭교회 역시 그 책임을 분담해야 하고 더 나아가 이에 따르는 죄과에 대하여 「갈려진 형제들」에게 용서를 청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현대세계에 대하여서나 갈려진 교파들에 대해서나 이미 심판하는 교회가 아니다.
교회는 어느때보다도 이 공의회에 있어 그리스도 심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고, 세계를 구하기 위해 오셨다는 진리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프로테스탄 교파들까지도 처음으로 교회로서 인정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은 정연한, 신학적 이론이 서있는 것 같지는 않다. 교회와 제교회(諸敎會)의 문제는 가톨릭뿐 아니라 「프로테스탄리즘」에서도 앞으로 더 큰 연구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일치율령은 비록 불완전하다 할지라도 이 교회들이 가진 신앙안에 종도들의 신앙전통이 계속되고 있음을 인정함과 동시 그 때문에 이 교회들 안에도 구원의 은총이 역사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물론 가톨릭교회는 그렇다고, 가톨릭교회만이 순수한 의미의 종도로부터 전래(傳來)되어 오는 교회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을 신학적으로 더 깊이 밝혀가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개념이 훨씬 더 넓어졌음은 사실이다.
갈려진 형제들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재래적인 태도에 더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옴은 동방교회와이 관계에 있어서다.
물론 과거에 있어서도 이 교회의 교리와 전례가 단지 가톨릭교회의 그것과 내용적으로 가장 가까울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같음을 인정해왔다. 그러나 그것을 공의회와 같은 가톨릭 교회의 전체주교회의에서 공식으로 인정하게 된 것은 참으로 획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제 교회는 가톨릭신자가 정교회의 성사를 받고 정교회의 미사에 참여함을 단지 가(可)하다고 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권장할 일이라고까지 천명하였다. 그리하여 교회는 획일적인 교회일치의 태도를 지양하고 참되이 「다양성 안의 일치」라는 교회이 보편성을 명실공히 이룩해가고 있다.
■ 展望
공의회는 지금까지의 3차의 회기를 통하여 중요한 의제들을 처리해왔다.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제까지의 성과만으로도 과거 어느 공의회도 따를 수 없는 큰 업적을 이루었다. 그러나 공의회는 그 수다한 의제들을 물샐틈 없이 모두 다룬 것은 아니다. 아직도 많은 의안들이 남아있으며 제4회기는 어쩌면 제3회기에 못지 않게 꽉짜인 회기가 될 것이다. 교부들 중에는 이때문에 제5회기가 필요할 것이라고까지 예언한 이들이 있다. 그러나 교황 바오로 6세는 제3회기 폐막식전에서 행한 공식담화에서 제4회기로써 제2차 「바티깐」공의회가 완결될 것이라고 언명하였다.
제4회기에 다시 상정토의될 의제들은 기보한대로 계시의안, 소위 제13회 의안으로 알려진 현대세계에 있어서의 교회, 평신도안, 포교안, 수도회안, 사제안, 신학교안, 교육안 등이다. 이 가운데서 포교안 사제안은 이 중간 휴회기간에 근본적으로 재작성돼야할 의안들이며 기타는 부분적인 수정을 요하는 것이다.
신학적인 가장 큰 난문제가 될 의안은 이미 제3회기 혹은 그 이전의 회기 중에서도 그러하였던 것과 같이 계시의안일 것이다. 동시에 세계빈곤, 인구문제, 산아제한, 핵무기, 전쟁 및 평화 등이 현대세계의 화급한 문제들을 취급하고 있는 제13의안도 「토픽」에 들어감은 말할 것도 없다. 이같이 아직도 산적한 문제들이 공의회 전도에 남아있다. 그러나 이미 한 논술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공의회는 앞선 3차회기를 통하여 그 바탕을 튼튼히 놓았다.
뿐만 아니라 공의회가 지향하는 교회의 현대화=「아죠르나멘토」는 이젠 부정할 수 없는 하나의 현실이 되어있다. 비록 공의회석상에서 발표된 많은 적극적인 견해와 쇄신된 사상들이 지금 이시간까지 구체적인 의결로써 표시되진 않았다 할지라도 교회 전체의 생활면에 있어서는 묵과할 수 없는 능동적인 정신운동으로 전개되어 가고 있다. 우리는 적어도 밀씨가 헛되이 노변(路邊)에 뿌려지진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렐가로 추기경은 이미 반포된 전례헌장, 교회헌장, 교회일치율령이 3대 공의회 율령을 서로 분리시킬 수 없는 삼위일체(三位一體)적인 것으로 표현하였다. 과연 이 세 공의회 율령은 교회쇄신을 위한 공의회 「프로그람」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 다른 모든 문제 즉 공의회 의제는 실은 이 세 율령에 입각해 있는 것이고 여기서 연역 발전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이 교회헌장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 교회헌장 내의 주교공동성교회읜 오늘의 우리의 예칙과 기대를 훨씬 초월하는 새로운 전망으로의 문을 여는 것이 될 것이며 내일의 교회는 이것을 바탕으로 「다이나믹」한 발전의 계기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날 세계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이 교회가 인류역사의 운명을 어깨위에 지고 가고 있음을 인식케 될 것이다. 【NC=本社 編輯室 綜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