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93) 過去(과거)와 現在(현재) ⑤
발행일1965-04-18 [제467호, 4면]
이튿날 새벽, 이불을 박차고 나는 일어났다. 아침잠이 많은 나지만 온몸에 생기가 확 돌았다.
마당에 나와 보니 산마루 너머로 동천에서 붉은 햇빛이 넘실넘실 올라오고 있었다.
이 아침 햇살은 가슴의 모세관 속까지 스며드는 듯 했다.
밀폐된 암실같던 과거의 내 가슴의 문이 활짝 열린건만 같다.
그 육중한 문을 열어준것은 다시 말할것도 없이 진호였다.
그러나 어딘지 아직 활짝 열리지 못한 어두운 한구석이 남아있었다. 그 그늘에 까지 오늘은 빛이 든건만 같다.
아침이면 매일 들고 나가던 구두닦이 함이 쪽마루밑에 있는것을 나는 흘끗 보았다. 오늘부터는 그것을 들고 나가지않아도 된다. 말쑥한 차림을 하고 「하이힐」을 신고 나설 생각을 하니 기뻤다.
오랫동안 그리던 직장, 그 직장에 나는 나갈수 있게된 것이다.
양부도 부시시 눈을 뜨고 일어나서 밖에 나왔다. 불편한 몸으로 아침밥 짓는 것을 거들겠다고, 두부는 자기가 사오겠다고 하며 나섰다.
출근시간은 아홉시인데, 일곱시 사십분쯤 집을 나섰다.
양부는 마당에 서서 배웅하고 있었다.
『일을 착실히 해라!』
양부는 쉰목소리로 뒤에서 소리친다.
나는 미소로써 돌아보았다.
양부의 버릇인 찌푸린 그 얼굴도 눈에 거슬리지가 않았다.
언덕을 내려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동안 나는 비로소 남과 같은 생활의 대열에 끼었다는 긍지가 생겼다.
회사는 ×× 「빌딩」의 삼층인데 이십칸쯤되는 사무실이 두개 사장실이 따로 있었다. 남녀사원이 이십여명이나 되었고 총무과의 키가 작달막한 삼십가량의 박이라는 사람의 인도로 인사를 다녔다.
댓명되는 여직원들은 동료가 하나 더 생겼다는 기쁜 표정으로 나를 대해주었고 젊은 남자사원들은 호기심이 섞인 친절한 시선으로 인사를 받았다.
그중에 얼굴이 넓적하고 어딘지 토박하게 생긴 사원이 하나 구석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그는 파고다 담배를 피우면서 인사를 받는 태도가 거만했다. 나는 사십오도 각도로 머리를 숙였는데 그는 고개를 끄덕했을 뿐이었다. 나이가 지긋하다면 모르되 아직 이십대로 보이는 젊은 남자길래 무척 반발심이 생겼다.
(아마,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뽑내는 건지도 모르지?)
혼자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정해진 내 자리에 앉았다. 내 자리는 그 얼굴 넓적한 남자와 마주 바라보이는 이켠 구석이었다.
멀리서 보니 그 얼굴은 꼭 빈대떡을 연상케 했다.
최초로 일거리를 들고온 것은 인사할때 인도역을 하던 꼬마씨였다. 그는 용무만 말하지않고 싹싹하게 회사의 분위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였다.
『절대 출근시간에 지각하지 마세요. 미국식으로 지각세번하면 면직이에요. 무섭지요. 그러나 일 잘하는 사원은 월급이 금방금방 올라가요. 그리고 이 회사의 남자직원 절반은 총각이야요. 나는 총각이 아니니 혹시 나를 좋아하시지는 마세요.』
『그럼 저는 회사 그만 둘까봐요?…』
나도 그의 농담에 응했다.
『「미스터」박께서 이미 총각이 아니시라면 저는 실망인걸요!』
『앗핫핫…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내가 총각이라도 「미스」양이 설마돌아나 보겠어요? 핫핫핫핫… 분한데요!』
「미스터」 꼬마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그래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총각중에 「넘버원」을 가르쳐 드릴께, 저 구석에 앉은 「미스터」 윤!』
그건바로 [미스터」 빈대떡이었다.
나는 새삼스레 빈대떡을 자세히 보았다. 빤질하게 기름을 잔뜩 발라서 「올빽」으로 덤긴 머리와, 울긋불긋 화려한 「넥타이」가, 검으작한 얼굴에 조화가 되지않고, 촌뜨기가 멋부리는 건만 같이 보였다.
점심시간에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먹고 복도에 바람쏘이려 나갔더니 「미스터」 빈대떡이 두 여사무원과 「미스터 꼬마에 둘러싸여 무엇인가 신나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지나가면서 흘끗 들으니 경마 얘기 같았다. 나는 모르는척 하고 저편 창가에 가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으니까, 「미스터」 꼬마가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한다.
웃기만 하고 나는 가지를 않았다.
여사무원들과는 어울리고 싶었으나 「미스터」 빈대떡이 싫었다.
「얼굴과 소양은 촌스러워도 머리가 좋은가?」
이런 짐작을 하며 이따금 그 쪽을 바라보자니, 딴 남자 사원들도 그쪽에 물려 들었다. 모두 「미스터」 빈대먹을 받드는 듯한 태도 였다.
그 이튿날 아침 「미스터」 빈대떡이 「타이프」 거리를 가지고 왔었다.
글씨는 반듯하지 못했고 쉬운 단어의 「스펠」이 틀린것도 두개나 있었다.
『머리도 좋지 않은것같은데 뭘 보고 모두 저 사람에게 야단일까?』
나는 의문을 느꼈다.
며칠후 그날은 토요일이라 세시쯤 일이 끝났는데 밖에 나오니, 새나라 자가용이 대기하고 있었다.
사장이 타고 갈 차려니 했더니
「미스터」 빈대떡이 운전대에 앉고 그 옆에는 똥똥한 여사무원이 앉고 뒤에는 「미스터」 꼬마와 또한 여사무원이 타고 있었다.
『「미스」양-』
빈대떡은 운전대에서 나를 보자 소리를 질렀다.
『어디까지 가셔? 타세요!』
나는 회사찬줄 알고 뒷자리에 끼어탔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빈대떡이 운전대에 있는 거울을 움직여 나와 시선을 닿게 하고 말을 건다.
『우리 지금 교외로 「드라이브」를 가는데, 「미스」양도 같이 갑시다.』
『……』
하고 「미스터」 꼬마가 싹싹하게 권한다.
『회사에서 소풍가라고 차를 내주나요?』
나는 물었다.
『이 차는 「미스터」 윤의 개인차야요…』
『어마, 그래요.』
나는 빈대떡이 인기가 있는 까닭을 비로소 알았다.
『…「미스터」 윤은 부자야요. 지금 이 회사는 견습으로 와있는거고, 조금 있으면 자기 아버지 회사의 부사장으로 갈사람 이죠!』
「미스터」 빈대떡은 운전대의 거울속에서 나의 얼굴빛을 엿보고 있었다.
차가 동대문밖을 지날때 나는 차를 세워 달라고하며 내렸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내 자신이 달라진 것을 느꼈다. 전과 같으면 그대로 소풍을 따라 갔을 나다.
물론 나의 머리에는 진호의 얼굴이 가득차 있었다.
옷은 잘 못 입었지만 진호의 모습이 「미스터」 빈대떡 보다는 훨씬 세련되어 보였었다.
그날 저녁 과외 공부를 시키려 갈려고 집을 나섰을때 새나라 자가용이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