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님에게 - 池學淳 神父
형님 이제 또다시 성탄이 돌아왔읍니다. 이렇게 형님과 헤어져서 열네번째의 성탄을 맞이하고 보니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래 형님 그간 약하신 몸에 별고나 없으십니까? 왜 그런지 형님이 그 오랜 세월동안에 무사하셨을 것 같지 않는 생각이 듭니다.
성탄때면 눈길위로 제가 손목을 잡고 성당에 다리고 가던 큰 조카 돈보스꼬도 이제는 스물다섯살이군요. 그리고 그 동생 알벨도도 스물세살이지요.
참으로 옛 사람들의 말 같이 세월은 흐르고 인간은 변합니다. 그애들은 지금 공산군에 끌려가 고생이나 하고 있지 않읍니까?
6·25 사변때 공산군에 끌려갔던 동생 조카들은 그후 무슨 소식이나 있읍니까?
그리고 큰누님은 큰조카가 공산도배에게 학살된 후에 실신상태에 계시더니 그후 어떻게 되셨읍니까. 그 불러보는 이름마다 눈물이 서립니다.
지금은 만상이 잠들어가는 고요한 밤중 열한시반입니다. 벽에 걸린 십자가를 바라보며 이 편지를 쓰노라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릴 뿐입니다.
고상을 쳐다보며 『주여 언제나 저들을 붉은마수에서 건져주시렵니까』하고 소리를 질러보아도 그저 밤은 정막할 뿐입니다.
형님! 형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여기서 이렇게 잘 살으니까 형님네를 잊어버리고 지내는 때가 너무 많습니다.
고향에 붉은 벽돌성당이 선하게 눈앞에 떠오르면 지금 그집은 무엇에 쓰여질까 무척 궁금합니다. 그리곤 이제는 볼 수 없는 교우들의 정다운 모습들이 둘씩 셋씩 반찍이는 별처럼 가슴에 스며듭니다. 지상에 평화를 가져오시는 예수 영해여! 『오! 예수 영해여 금년에는 꼭 당신 손에 드신 평화의 횃불을 힘차게 밝히사, 이 지상에서 허위와 불의의 모든 세력을 물리치시고 저38선 이북에 얽매인 우리 형제들에게도 인간의 참다운 권리를 주소서. 그리고 당신의 영광을 세상에 외칠 수 있는 행복을 주소서.
나도 나의 미약한 모든 힘을 당신께 합하야 바치겠나이다. 구유에 누워서도 전는ㅇ하신 당신! 어린아기일지라도 만왕의 왕이신 당신! 무엇이 부족하여 못하시나이까.』
그저 부꾸럽기만 합니다. 형님 이것이 복바쳐 오르는 나의 기도입니다. 기약없이 만날 날을 고대하며 형님 안녕.
■ 以北敎友들에게 - 周美
오직 이세상에 살아있는 기쁨이 있다면 좀 더 뜨거운 마음으로 천주님을 사랑할 수 있었을 때인데…. 이러한 교우들의 기쁨을 송두리채 빼앗고 말았던 공산치하의 독재는 날이 갈수록 더해가고 있는 것 같애요. 천주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슨 짓인들 못하겠읍니까? 온갖 서러움을 참아가면서 무거운 십자가를 않고 묵묵히 메고 가는 이북교우들의 모습이 눈앞에 훤합니다.
이제 장림시기는 지나고 즐거운 성탄을 우리는 맞이했읍니다. 허지만 가슴이 서늘해오는 것은 역시 여러분을 잊지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사참례 한번 하지 못하고 답답한 속에서 세월을 보내야 했던 여러분의 딱한 사정을 생각할 때 성탄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눈물이 한없이 솟구칩니다.
성탄노래가 이렇게 내 마음을 슬프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옛날에 상상도 못했어요. 당신들이 잠시도 쉬지않고 목이 메도록 그리웁게 부르고 있을 예수 아기! 그 예수 아기의 탄생을 우리는 이렇게 성당에서 볼 수 있는데 당신들은 입밖에 내지도 못하고. 잠간동안 공산정권이 물러섰을때 여러분을 찾아간 신부님을 붙들고 감격에 넘쳐 흐느껴 울어 물바다를 만들었던 어떤 학교 강당에서 당신들은 목말라 기다린 어린애 같이 서로 다투어 고해성사를 청하였던 그 눈물겨운 광경이 이제는 언제 다시 당신들을 찾을 수 있겠는지….
세월은 아무런 주저함 없이 잘 흐르고 있어요.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고 흰 눈이 날리면 성탄절은 해마다 우리를 찾아오는군요. 우리는 비록 고향을 잃었지만 마음만 있다면 천주님을 좀 더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기쁨을 가진답니다 꿈에도 못잊고 그리워하는 영신적인 아버지를 우리는 이곳 저곳에서 대할 수 있답니다.
우리는 이제 한데 모여앉아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를 수가 있답니다. 여러분들이 숨막히는 생활 속에서 지치지 말고 잘 참아주기를 우리는 예수아기 앞에 꿇어 앉아 빌고 있답니다. 세상에 왔다가 무엇을 얻고 가겠는지, 매일 눈물로 상본도 안장 없이 오직 별빛만을 우러러 보면서 성탄절에 흐느끼고 있을 당신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아파옵니다. 당신들을 잊지 모샇ㄹ 때 우리의 성탄노래는 즐거움 그것만으로 가득차지 않는군교. 서로 기구합시다. (隨筆家)
■ 북녘겨레에게 - 金允桂
머리를 들고 당신들이 사는 북녘 하늘을 바라보면 역시 이쪽과 똑같이 맑고 푸른 하늘입니다.
그러나 남녘 우리들의 가슴에 안겨지는 거리감은 아득하기만 하고, 눈을 감으면 당신들의 그 참담한 생활, 지친 모습 긜고 그늘진 얼굴들이 자꾸 안막(眼膜)에 어른거립니다.
온 겨레가 그토록 갈망하였던 해방이 가져다준 어처구니 없는 선물, 분단(分斷)의 악몽이 몇해만에 6·25의 전화위복으로 가시어 버리는가 했더니 다시 장장 166「마일」에 걸친 철조망이 이땅의 허리를 겹겹이 얽어놓은지도 어언 십년이 넘었읍니다. 흔히 말하듯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문자를 뇌어보기조차 역겨운 비운(悲運)의 세월이 흐르면서,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은 왔읍니다.
이제 남한에서는 성탄절이 정말 모든 국민이 반기는 명절이 되었읍니다. 안믿는 이들도, 믿는 이들과 함께 마음껏 기쁨과 자유와 평화를 구가(謳歌)합니다. 하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구세주 예수의 탄생은 참으로 「만민이 즐거워 할 소식」이요 또 해마다의 「크리스마스」는 단지 이를 기념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세주의 내림을 새로이 현실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있읍니다. 『세상 마칠 때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있노라』 우리 겨레가 예로부터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낮익혀 불러온 이름이 있읍니다. 그것은 「하느님」입니다. 부르면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되어온 거룩한 이름입니다. 성탄절을 맞아 여느때보다 더욱 정성되이 불러봅시다. 우리가 그분을 찾아야만 그분은 당신의 외아들을 우리에게 보내 주십니다.
그리하여 오시는 구세주 예수는 우리 보다 북녘의 당시들과 더 가까이 계실 것이 확실합니다.
당신들은 바로 그분의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순례도상에 있으니 말입니다.
하느님을 믿으시고, 하느님의아들이신 그리스도가 당신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굳게 믿으십시오.
믿음에서 행동이 비롯하고, 행동이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 바랄만한 결과는 빵보다도 자유보다도 더 값진 것입니다.
성탄절이 선물을 보냅니다. 그것은 당신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입니다. 서로 기도함으로써 당신들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그리고 천주성부 안에 하나가 될 수 있읍니다. 『엠마누엘이여, 어서 오시어 북녘 하늘 아래 빛과 은총의 이슬을 뿌리시고 당신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는 동포들에게 믿음과 힘을 주소서. 그리고 우리의 기구를 가상히 여기시는 날 이 땅을 가로지른 저 철조망을 끊어 주시고 겨레가 하나되어 평화의 축가를 부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