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십칠팔년전 어느 겨울 언니를 따라 깊은 눈속의 어두운 새벽길을 간 일이 있다. 그때 우리집은 교외(郊外)에 있어서 시내까지는 약 5리길을 걸어 나가야만 되었다. 이윽고 우리는 시내에 들어와 아직도 문이 굳게 잠긴 교교한 시가지를 거쳐 어느 커다란 철책문을 들어섰다. 거기엔 바람도 없이 동화속 살아있는 나목(裸果)과도 같은 겨울 가지에서 눈꽃이 소리없이 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아득한 꿈길같은 설경(雪景)을 헤매다가 문득 어느 커다란 동굴 앞에 이르렀다. 나는 너무나 황홀하고 감격해서 차라리 어이가 없었다. 어둡고 음산하여 찬바람이 몰려 나오는 듯한 그 속에 푸른 옷자락을 날리며 한 여인이 높이 외로이 서있지 않는가. 나는 주머니에 손을 꽂은채 넋없이 그녀를 치어다 보았다. 이것이 내가 가톨릭을 본 최초의 요지경 같은 신비한 정경이다. 그후 난 프로테스탄 학교에 다녔다. 이것은 전혀 가정적인 인연이었지만 한때는 예배당에도 열심히 다녔다. 그러나 항상 나의 마음 한구석엔 최초의 그 성모동굴의 깊은 인상을 씻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차라리 종교적인 동경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신비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소녀적인 꿈이었을게다.
그후 어떤 인연으로 가톨릭 교회와 퍽 가까운 거리에서 수년 동안을 지내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그렇게 아득한 길도 아닌 그 동굴 앞에 어떤땐 캄캄한 겨울밤 혹은 눈오는 밤 혹은 환한 대낮에도 몇번이고 가보았다. 물론 그땐 최초의 그 눈나린 새벽의 나의 어린 시절이 꿈의 「베일」은 완전히 걷혀 있었지만-.
나의 이 기나긴 배회를 슬퍼하지만 그러나 지금도 그 슬픔은 결코 다 가시지 않았음을 고백 않을 수 없다. 아직도 「야곱의 우물」에 물길러 가는 「사마리아」의 여인처럼 가슴엔 시중에서 시달린 삶에 대한 각가지의 울분과 회포가 서려 있는 듯 하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그 이방의 여인은 틀림없이 그 샘터로 가는 흐젓한 길에서 혼자 고독과 회한에 울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너무나 오랜 회귀(回歸)에 성급히 나의 고삐를 조으지 않으신 그 넓으신 여러 도량에 감사하고(이 얼마나 한 오만인가!) 또 이 방자한 양의 고삐를 촐라 맬듯이 다가오기에 잔뜩 도사려버틴 양을 뜻밖에 그늦은 고삐 마저 끌러 주심으로써 오히려 이제는 허는 수 없이 내발로 그에게로 돌아가게 하신 그 목자에겐 감격할 뿐이다. 이번 성탄과 함께 이제 영세하다. (아직 모든 성사 이전이다) 지금 과연 내 가슴에 환희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 누구의 말처럼 진흙속에 빠져 어쩔 수 없이 하늘을 향해 뻗고 있는 그 간절한 손길을 보라! 외롭고 슬플때면 우물가로 가는 여인, 예수, 그 은총의 죄녀에게 물을 달라 하셨다. 나도 그럴때면 빈 물동이를 이고 「사마리아」의 「야곱의 우물」가로 가리라. 오주의 이러한 음성을 듣는 날까지 『내가 주는 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영 목마르지 아닐 것이니 대저 내가 주는 바 물은 그 사람에게 샘을 이루어 영원히 사는데까지 솟아 흐르리라』(요왕 4,13)
李 다시아나(64년 12월 24일 영세 예정 隨筆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