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동묘지터 위에 죽어가는 산 사람
오색의 불빛이 휘황하고 성탄절 선물들이 범람하는 성탄절 기쁨에 소외(疎外)된 곳이 있다.
석냥곽 같이 단조로운 단층 「시멘트」집이 가파른 산언덕을 따라 나란히 놓여져 있다. 옛날 공동묘지였던 이 터는 수없이 백골을 추려냈는데도 아직도 땅을 파면 가다금 썩은 누더기와 임자없는 백골이 드러난다고 한다. 이 잔해를 한데 모아 묻은 자리에 시꺼멓게 썩은 널(棺) 조각을 세워놓았다. 거기 희미하게 이들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
『오늘은 너 내일은 나』.
윤기 하나 없는 타박한 사무실 안에는 목자가 양을 부르는 노랗게 퇴색된 성화가 걸려있다. 수인사를 마치고 「벤치」에 앉기도 전에 보퉁이를 낀 한 곱추 할머니가 들어선다. 혀꼬부라진 장황한 애소를 들어놓는다.
이렇게 찾아드는 떠돌이가 하루 평균 13명, 게중에 조금이라도 연고자가 있거나 노동 능력이 있으면 수용하지 않는다.
여기는 1천여명 무의탁 부랑(浮浪)민 수용소다. 고아 고노(孤老) 불구자 정신병자 결핵환자를 비롯해 각가지 질환자와 더러는 육신이 멀정한 실의(失意)병 청장년도 섞여있다.
■ 보리밥 덩이 기다리는 무료한 패잔병들
▲제1동(棟)-아득한 옛적부터 거기와 머문 패잔병대 같은 노인들이 양쪽 벽을 의지하여 맥없이 늘어 앉아있다. 무료한 몸짓이 연쇄적으로 파동치는 긴 정체된 대열 속에 군데 군데 푸른 담배연기가 오른다. 박꽃처럼 백발이 흐드러진 할아버지 앞에가 먹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잿빛 눈을 들어 우물우물 말은 입에 넣고 표정으로 무언가를 호소하더니 이내 붉어지는 눈자위에 눈물이 가득히 고인다.
요장(寮長)의 말로는 하루 4합 보리밥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고 진종일 할 일은 없고 언제나 양에 덜차는 아쉬운 끼니의 번복뿐이니 식욕에 대한 집착이 생겨 사실 배는 점점 더 고파진다는 것이다. 침구는 일인용 모포가 두사람 앞에 한장, 더러 입소할 때 가지고 온 이들도 있지만 많은 깡마른 노구들이 맨바닥에 이불없이 누워 긴 겨울밤을 지세운다. 80세 이상 11명, 70세 이상 60명, 그 이하가 70여명이다.
■여기 孤軍奮鬪하는 병든 羊들이 있다.
▲제5동은 결핵환자실, 여기가 이곳의 천주교 본거지다. 등사판에다 십이단을 긁고 있었다. 이렇게 전교까지 한다. 외부에다 몇번 호소했으나 여기서 미사한번 드릴 수 없었다. 프로테스탄의 빈번한 방문을 부러워했다. 토요일마다 분도회 수녀들이 와서 교리를 가르친다. 18세에 인민군으로 나와 포로수용서에서 석방되었다는 얼굴이 노랗게 뜬 한 청년은 10년전 도마란 본으로 영명세했고 영성체 한지는 까마득하다. 고향 떠난지 14년간의 고독과 굶주림과 병고의 세월 속에서도 그의 티없는 커다란 눈엔 오히려 집떠나 오던 때의 그 소년의 슬픈 잔영이 깃들여 있는듯 했다. 시종 말이 없는 그에게 할말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1개월분 1인당 20원의 「아이나」가 시료의 전부, 역시 부족한 보리밥과 콩나물 소금국이다. 결핵환자는 현재 103명, 1개월 사망율은 4.5명이다.
■ 고사리손이 인생에 지쳤다고…
▲여환자동-어제 저녁 각혈했다는 젊은 여인이 부시시 일어나 앉는다. 가족을 무르니 목이 꽉 메인다. 남편은 죽고 아이 하나는 행방불명이란다. 17세의 안나양만은 또록 또록 이야기한다. 여덟살부터 고아원으로 전전, 남의집살이에 하고달퍼 작년에 여기와 단체 X레이 결과 여환자실로 옮겼다.
■ 보리밥통 둘러싸고 까마귀떼 아귀다퉈
▲소년동에선 마침 점심식사가 한창이다. 커다란 나무통 속 보리밥에서 김이 무럭무럭 오른다. 다섯살에서 열댓살짜리 까마귀떼같이 모여앉아 먹기에 열중이다. 한50명 가량은 그릇이 빌때까지 동료들의 밥먹는 것을 너머다 보고 대기중이다. 갑자기 입구쪽에서 『손님이 오신다』고 소리친다. 거기 너댓이 벌겋게 언 얼굴로 우둘우둘 떨면서 붙들려왔다. 큰놈이 다짜고짜 이 풀죽은 손님들을 한데씩 갈긴다. 『이새끼 왜 또 도망갔어』 소년은 눈물이 비오듯 흐느껴 울면서 홍천다리밑에 있는 아버지가 발이 썩어드는데 제가 안가면 굶어죽는다는 것이다. 고참은 『이새끼 피세(거짓말) 놓치말아』고 또 한번 칠 기세다. 이들에겐 떨고 굶주릴 망정 언제나 거리의 자유가 좋다.
■ 인간자세가 모욕적으로 이즈러진 群像
▲방문을 열자 악취가 확 끼친다. 86세난 머리가 파뿌리 같은 노파가 턱이 땅에 붙도록 꼬꾸리고 앉아있다. 『할머니 여기 언제 왔읍니까?』 『언제고 뭐고 춥구마 묻닫으소』
옆에 앉아있던 여인이 소리를 지른다.
악취의 출처는 검정수건으로 동여맨 그 여인의 아이머리만큼이나 큰 진물이 번저 나온 턱의 종기였다. 머리를 박박 깎은 미친 여인은 무릎에 턱을 얹고 히죽이 웃고 있다.
그 옆에 정신박약의 벙어리가 얼굴이 터지도록 부은 너댓살난 어린것을 옆에 꼭 붙이고 앉아있다.
불의의 충격으로 인간 자세가 모욕적으로 이즈러지는 순간, 그러한 극한(極限) 상황이 그대로 고정된 형상이 바로 이런 것일까.
■ 찬바람 나는 망각지대는 대구의 ○번지
▲마지막 문을 열었다. 비교적 정돈된 방에 안노인네 여나뭇이 둘러앉아있다. 사무실서 본 곱추할매가 구면이라고 나와 반기며 이불을 부탁한다. 『할마씬 가만 앉았으소. 천지도 모리고 와서 이케샀노!』 아직 기운이 많아보이는 중늙인이가 그녀를 가로 막으며 하는 말이다. 말쑥하게 도사려 입은 한 노파는 『여러분 은혜 감사합니다. 우리같은 죄인을 이렇게 평안히 먹여주시고 입혀주시니…』 묻지 않아도 그녀는 프로테스탄 신자일 것이다.
목불인견의 여기 응달의 인생은 아직도 한이 없고 보다 더한 것이 남아있지만 말이란 이토록 절실한 실존 앞에선 차라리 죄스러운 것이 아닐까? 여긴 대구시립희망원, 핏빛 저녁 노을을 등지고 땅거미에 질린 흰언덕길을 내리면 멀리 도심의 찬란한 불빛이 눈물처럼 어린다. 문득 여기 주소를 잊은 것이 생각난다. 저 아래 세상엔 「크리스마스」가 온다해도 돌아갈 길 없는 어둡고 찬바람이는 이 망각의 지대는 그냥 어떤 산 ○번지면 그만 아닌가.
李丹媛 本社記者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