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에 많이 演奏되는 「노래하는 성서」 「메씨아」는 헨델이 싸우고 좌절하고 再起하면서 그 大曲을 作曲한 것이다.』
1710년부터 1757년까지 헨델은 「론돈」에서 지냈다. 싸우고 좌절하고 재기(再起)하면서 그 우수한 대곡을 작곡한 곳이 이 「론돈」 이었다. 그간의 40년을 두 시기로 나눈다면 첫째시기는 「오페라」시기이며 둘째시기는 1738년부터 1751년까지의 「오라또리오」(聖_曲)시기이었다. 헨델은 「론돈」에서 국왕의 보호를 받아왔으나 국왕에 반감을 가진 일부 귀족들에 의해 여지없는 방해와 반목으로 경제적 타격을 받았다. 여기서 만약 그가 自信을 잃고 그 이상 작곡을 포기했다면 다음에 그가 획득한 화려한 명성은 영원히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오페라」 작곡 시기에는 고배를 마셨으나 새로 착안한 「오라또리오」 분야에서 보다 알찬 그의 최후의 승리가 약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의 나이는 53세였다.
사실 헨델의 재능은 「오라또리오」에 있고 전혀 그는 「오라또리오」를 위해 이 세상에 난 것 같았다. 헨델이라면 즉시 「오라또리오」를 연상할 만큼 많은 「오라또리오」를 작곡했다. 또 거기 대한 공헌도 컸다.
「오페라」 제작의 실패에 의한 경제적인 곤란으로 막다른 골목에 선 그에게 구원의 손을 뻗친이가 아일랜드에 있었다. 1741년 봄 그는 「다불린」의 지사의 초대를 받고 그에게 기대하고 있는 이나라 사람들에게 그의 훌륭한 재능을 증명하기 위해 「메씨아」를 작곡코자 결심했다.
사실 그것은 그의 최대 걸작이요 고금을 통해 이 「메씨아」에 필적할 수 있는 작품이 드문 「오라또리오」였다. 그는 「메씨아」에 관해 5개월간 깊이 묵상한 후 8월 22일부터 9월 14일까지의 24일간 종교적 영감과 천재의 놀라운 정열로써 이를 완성했다. 3部作에 50餘 「아리아」 「레시타티브」 합창단을 현악으로 된 全연주시간 2시간40분의 장편을 불과 24일만에 작곡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메씨아」는 음악적으로 확실히 극적인 효과가 있으나 그의 정열은 결코 근심을 잃음이 없이 다른 「오라또리오」처럼 「드라마」로서의 흥이 중심이 아니요 음악 가운데 어떤 일종의 고요가 깃들었고 어디까지나 구세주 그리스도의 일생을 그린 깊은 종교적인 감동으로 작곡되었다. 그리하여 작곡된지 2백년이 넘는 오늘날 온세상 사람들이 즐겨 듣는 성탄 시절의 음악이 된 것이다.
「다불린」市에서 헨델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어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 첫연주회는 「필하모니협회」의 주최로 자선사업을 위한 것이었는데 「론돈」에 돌아온 1750년 이후의 헨델은 또한 매년 「고야양육원」을 위해 이 작품을 연주했다.
그래서 오늘날 성탄시절의 자선연주회 관례가 생긴 것이다. 전곡은 3부로 나누어지고 친구인 찰스 제넨스가 성서에 의해 台詞를 만들었다. 지면관계상 성탄절과 관계있는 제일부만 조금 해설하기로 하자.
제일분는 세상사람들이 구세주의 내림을 고대하는 여러가지 예언이 나오는데 전체에 맑고 평화로운 기분을 조성하고 있다. 먼저 관현악으로 음산한 序曲이 시작한다. 몇개의 예언이 있은 후 『그는 레비의 후손을 순결케 하라.』의 합창이 아름다운 「푸우가」(遁走曲)형식으로 나타난다. 『한 아이가 우리 가운데 탄생하셨도다.』의 환희의 대합창이 「바이올린」의 부분과 交_해서 우아하고 힘차게 구세주의 이름을 告하는 엄숙한 느낌을 깊이 해주면서 제일부의 절정을 이룬다. 後半은 田園交響曲인 일종의 間奏曲으로 시작된다. 이것은 그 앞의 합창과는 좋은 對照를 이루고 있다. 「베들레햄」의 작은 마을에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그 밤 별이 번쩍이는 목강에 양을 수직하던 목동들에게 천사가 기쁜 소식을 전한다. 고요한 그러나 희망이 넘치는 경건한 환희의 情景을 보여주는 관현악이다.
그 가운데 피리소리가 나오는데 그것은 헨델이 이태리 「로마」를 방문했을 때 마침 성탄날 밤 시골서 온 목동이 분 피리의 기묘한 선율을 듣고 편입한 것이라 한다. 『天軍이 만유의 주를 찬양하도다.』의 「소프라노」의 「레시타티브」 다음에 『하늘에서는 천주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마음이 좋은 이에게 평화로다.』의 합창이 불려지고 다음 또 「소프라노」의 「아리아」 『시온의 딸이며 크게 기뻐하라』가 나오는데 여기서는 「바이올린」이 반주되어 『기뻐하라』란 말이 장식적으로 강조된다. 유명한 「아리아」 『주님은 목자와 같이 양을 치고』에 이어 같은 「아리아」로 『주님에게로 가리』 다음 『주님의 멍에는 달고 짐은 가벼워지리』의 합창으로 제일부가 끝난다.
여기서 제2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 가운데 나오는 「할렐루야」 대합창에 대해 말아니할 수 없다. 그가 이 「할렐루야」를 작곡하고 있을 때 시중하던 이가 방에 들어가보니 책상에 앉은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눈앞에 천주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1743년 3월 「론돈」에서 초연되었을 때 관람한 죠지 2세는 「할렐루야」 대합창이 울리자 감격해서 기립하고 경건한 묵상을 올렸고 청중도 따라서 일어섰다고 한다. 이때의 「에피소드」가 그대로 남아 지금까지도 이 「할렐루야」가 불러지면 으례히 일어서서 듣는 습관이 있다.
申相祚 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