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깐市 12월 23일 AP 同和 通信 本社 綜合】 교종 바오로 6세는 지난 23일 관례적인 성탄 「메시지」를 반포하고 무력으로써가 아니라 정의와 진정한 이해에 입각한 현상으로 분쟁을 해결하여 세계의 평화를 건설하도록 호소했다. 2천여어(語)에 달하는 이 성탄 「메시지」에서 교종은 성탄의 신비가 뜻하는 것이 천주와 인간의 내적 결합에 있음을 밝히고 이같은 결합을 바탕으로 만민이 강생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주께 귀일하도록 기원했다.
교종의 평화 호소에는 구체적인 명시는 없었으나 월남사태를 지적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다음은 교종 성탄 「메시지」의 요약이다.
■ 聖誕의 意義
성탄은 신(神)과 인간의 위대하고 역사적인 해후(邂逅)이었다.
우리는 신의 인류와의 이 만남이 단지 외적이요 지나쳐버리는 접촉 이상의 것이었음을 알고있다. 그것은 다음 아닌 천주성(天主性)과 인성(人性)의 결합이었고… 무한하고 영원한 위격(位格)의 천주의 말씀은 인성을 취하사 동정 마리아의 정결한 모태에 잉태되어 참 천주시요 동시에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오셨다. 그는 천주성을 버리심 없이 인간으로 태어나셨고 살으시고 가르치시고 고난을 받아 죽으셨으며 또한 부활하셨다. 그러나 인간이 되심으로써 우리중의 하나가 되셨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성탄은 바로 이같은 만남의 기억을 새롭게 하는 것이며 이 천주성과 인성의 만남은 끊임없이 계속돼야 한다.
나의 이 생각은 지난 여러해 동안 우리가 가졌던 제2차 「바티깐」공의회에 있어 그리스도 안에 천주와 인간의 만남이 어떤의미로 성취되었다고 되새겨보는 데 있어 더욱 강화되고 있다.
과연 공의회는 일종의 만남이었으며 그것은 교회가 그 자체와 다시 대면하고 또한 세계와 대면하는 두가지 의미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교회는 그러한 반성을 통해 교회 자체뿐만 아니라 교회가 모시고 있는 그리스도와 해후(邂逅)했고 천주의 말씀과 그의 성의(聖意)에 충실히 추종함으로써 교회는 다시 한번 천주의 성신에 물들고 그의 가르침에 도취하여 스스로 고양(高揚)됨을 깊이 깨달았으며 교회내부에서 생동하는 천주의 정신과 교회의 입술로 향하여 새로이 용출하는 그의 복음 · 그리고 교회 자체 및 세계를 위해 복음전파를 참신하게 할 필요성을 교회는 절감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교회는 젊음을 되찾고 교회가 재생됨을 체험하였다.
■ 世界와 對話하는 敎會
이제 교회는 세계와 대면하고 있다. 공의회의 이같은 모습은 누구에게나 명백하며 교회는 현대세계에 __ 인간과 대화하기 위해 그 자체로부터 뛰쳐나왔다.
그래서 교회는 세계대부분의 인류가 지닌 날로 격증(激增)하는 소망을 심사숙고 했으며 그 소망중의 하나는 굶주리는 세계가 더욱 필요로 하는 육체적 영신적 양식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감싸안아주는 사목적 사랑에서 공의회의 지배적 분위기는 잃어버린 양을 찾기전에는 결코 평화를 얻을 수 없는 목자의 모습에 깊이 고취된 것이었다.
오늘날의 교회는 자체를 숨기지 않고 「매스 메디아」를 통하여 자체의 일을 세상에 즐거이 알린다.
■ 敎會 一致 努力
뿐만 아니라 공의회를 통해 수세기동안 일어난 적이 없었고 또 영원히 일어날 것 같지 않았든 한 __ 해후를 마련하였으니 교회는 갈라진 형제들을 겸손되이 그리고 충심으로 초청하고 찢어진 일치안 의복을 최소한 인간적인 면과 가장 기본적인 면에서 수선하려고 진력했다.
상호가 지닌 지식과 존경과 신임을 촉진시켜 대화를 개시하는데 박차를 가했다.
교회의 소망은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초청에 응하여 「유엔」을 방문하고 각국대표들과 만났다.
그것은 역사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번 공의회의 제1차적 목적을 표현했음이 확실하며 전세계 만민에게 우의(友誼)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인간을 찾아나서는 것이 평화의 전달자인 교회가 당면한 첫째 과업이다.
■ 平和의 「메시지」
부활한 그리스도는 『너희에게 평화가 있어지이다.』고 하셨고 평화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진 첫인사였다. 그러므로 세계속에 놓여있는 교회의 위치에서 세계에다 평화를 부여하고 촉진시키며 교도(敎導)하는 것이 교회가 공헌할 수 있는 첫째 가업이다. 평화는 어느 사회에서도 가장 최고의 선(善)이며 그것은 정의와 자유아 질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 또한 그것은 인간생활에 있어서 그외 다른 모든 가치에로 향한 길을 열어준다. 바로 이 순간에 우리는 평화 그 자체가 좋은 것이라는 이유뿐만 아니라 오늘날 그와같이 거룩한 평화가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 때문에도 평화를 위한 새로운 호소를 제의하는 바이다. 지금 세계는 뿌리깊은 국수주의(國粹主義)적 풍조로 말미암아 제2차 세계대전의 슬픈 체험이 빚어낸 새로운 책동과 파괴하고 지배하려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손을 맞잡고 대두하고 있다.
그래서 오직 가공할 무기만이 평화에 대한 보장이 되고 말았다.
형제들이여! 만인에게 향한 크리스마스이 평화 「메시지」에 부디 귀를 기울이라! 그리하여 모든 사태의 진전을 검토하고 그릇된 길을 걷고 있는지 잠시 발길을 멈추고 생각해 볼 것이다. 참된 지혜는 평화 속에 있으며 참된 평화는 사랑의 유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리사욕(私利私慾)이나 개인의 야심에 좌우되는 한계내에서 평화를 사랑하는 태도와 음험한 책략이나 계획적인 난동(亂動)에 호소하는 수단으로 다른 사람의 평화를 교란시키는 처사와 이웃국가에 압력을 가하여 방어무장을 불가피하게 해서는 결코 안된다.
■ 協商으로 紛爭 解決해야
또한 질서와 우의(友誼)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당하고 진지한 협상을 벌여야 한다.
평화는 이기주의나 투쟁 혹은 국가적 우위(優位)에다 근거를 둔 부당한 「이데올로기」가 과감하게 정정(訂正)됨으로써 확립되는 것이다. 인간관계는 힘이나 무력 혹은 경제적 우위(優位)나 문명발달의 정도에 의해서 결정되어서는 안되며 전인류가 다같이 유일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속에 있다는 보다 고차적인 동등읙 ㅐ념과 연대적인 개념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서로 용서하고 재출발하자!
■ 世界에 奉仕하는 敎會
교회는 무한한 가치가 있는 보물, 즉 진리와 구원이란 보물을 지니는 방법을 알고있다. 바로 이 보물이 교회로 항여금 여러분과 접촉하도록 고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어떤 자만심에서나 혹은 특권을 얻기 위하여 여러분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여러분의 문화와 여러분이 이룩한 발전이 지닌 거대한 가치를 기꺼이 인식하고 고무하며 축복하고 있다.
또한 교회는 권세나 부(富)에 대하여 아무런 야심이 없다.
교회가 요구하는 바는 교회의 내적 신앙을 위한 자유와 그 신앙을 외적으로 증거할 자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