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한해가 가고 새해는 왔다. 지난 일년이 정리도 채 없고 새해에 대한 뚜렷한 구상도 없는데 세월은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흘러라고 만다.
대기권외(大氣圈外)로 인공유성을 쏘아올려 「랑데뷰」에 성공시킨 과학의 힘도 지나가는 세월을 발묶어 놓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신(神)의 죽음을 선언하고 인간자율(自律)의 절대성(絶對性)을 선포한지가 언제일인가? 그런데도 인간은 아직 이 시간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시 어느 제왕(帝王)의 권세가 『태양아, 걸음을 멈춰라!』 『달아, 섯거라!』고 명령할 수 있겠는가?
하기야 세월이 흐르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한대도 어쩌면 그 이상의 고역이 없을런지 알 수 없다.
지난 일년만해도 그렇다. 연중행사같이 치르는 가뭄과 홍수 춘궁은 차치하고라도 이나라 사회의 암인 정치 경제 사회이 부정부패 정쟁(政爭)과 파패(派爭) 그것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겪어야 하는 사회혼란과 시련을 계속 감내하고 싶은 생각은 아무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 사실 많은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더라도 세우러이 이같이 일분일초의 에누리도 없이 흘러가고 마는데는 어쩐지 기쁨보다는 허전함이 앞서고 그 공허함은 해를 바꾸면서 더욱 절박해진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무력과 시공(時空)의 제약성(制約性)을 절감치 않을 수 없다. 현대적 허무주의, 무신론자들의 주장대로 이것이 인간 실존의 전부이라면 사실 인생이란 너무나 덧없고 삶이란 실로 무의미하다 아니할 수 없다. 가난과 온갖 고통중에 애써 살 필요는 어디 있는가 싶고 참되고 귀한 것이란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다. 선악의 구별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사랑을 주고 받음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도시 인생 전부가 허무이고 남는 것은 이 허무 앞에서의 절망뿐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신(神)의 존재도 불멸(不滅)의 영혼도 부정했을 때의 말이다.
영원한 생명자체인 신(神)_과 인간안에 불멸의 영혼이 있음을 긍정할 때에는 인생관은 전혀 달라진다. 인생 전부가 의미를 갖게된다.
과연 인생은 현세인생은 짧다. 시공(時空)에 제약돼있다. 그러나 인생은 결코 허무한 것이 아니다. 천주의 모습을 따라 만들어진 인간이요, 불멸의 영혼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이같은 인생의 가치를 가르쳐준 이가 그리스도이다. 그는 인간의 가치를 온세상 위에 드높여 주셨다. 인간을 구하기 위해 그는 천주이시면서 인성(人性)을 취하여 현세에 강생하셨고 그를 위해 죽으셨다. 니체의 말과는 다른 뜻으로 인간을 위해 신(神)은 죽었다. 신(神)이 죽음을 사양치 않을 만큼 인간의 가치가 큰 것임을 증명하였다.
그리하여 부활하심으로 인간의 모든 삶을 그 실존자체를 의미로써 가득 채워주셨다. 파스칼의 말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의 고통과 죽음마저도 가치와 의미를 갖게되었다.
새해아침에 우리는 세월의 무상(無常)과 인간이 무력만을 느끼고 있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느낌에서 인간의 삶과 존재 전부가 조물주이신 신(神)에 완전히 의존해 있음을,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더욱 깊이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새해의 삶의 설계도를 이 인식과 신앙안에 세워야 한다.
극히 기본적인 이야기 같고 신자이면은 누구나 다 알고있는 사실 같지만 실은 이 기본진리를 우리가 다시 한번 숙고한다는 것이 해를 바꾸는 이 시가에 무엇보다도 필요할 것만 같다. 왜냐하면 이 기본진리 안에 비록 현세 인생이 가난과 고난에 가득차 있더라도 우리는 삶의 희망과 빛을 다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때는 1966년, 오늘부터 특별기도 성년이 시작된다. 이 기도성년중에 우리가 특별히 기원하고 실천해야 할 일도 다른 것이 아니다. 말로만의 신앙이 아니고 생활로써 천주께 살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스스로를 성화시키고 사회를 또한 정화해가는 것이다. 이것이 제2차 「바티깐」 공의회가 의도한 목적 전부였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아침에 무엇보다도 앞서 올해에는 참되이 그리스도 안에 살게되기를 기원해 마지 않는다. 동시에 우리의 생활과 전성교회가 내적으로 쇄신되고 드디어는 만민이 그리싀도에게 귀일(歸一)하게 되기를 기원해 마지 않는다.
병오(丙午)년은 을사(乙巳)년과는 달리 그리스도를 중심한 해가 되게하자!
그의 사랑의 복음으로 이나라 사회를 내적으로 구원해 가는 해가 되게하자!
社長 金壽煥 神父